시론 ·평론·시감상

시수헌(詩壽軒)

洪 海 里 2005. 11. 21. 17:57

시수헌(詩壽軒)

임 보(시인)


시수헌은 서울 북한산 골짝 우이동(牛耳洞)에 자리한 한 건물의 다락방 이름이다.
5층 옥탑에 버려둔 두어 평 남짓한 공간을 '우이동시인들'이 얻어 사랑방으로 쓰고 있다.
우이동 시인들이란 고불(古佛) 이생진(李生珍), 포우(抱牛) 채희문, 난정(蘭丁) 홍해리(洪海里)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사람이다.
우리들은 20여 년이 넘게들 우이동 골짝을 떠나지 못하고 살아온 숙맥들로서
이심전심 서로 마음들이 통했던지 87년부터 年 2회씩 <우이동시인들>이란 사화집을 묶어내고 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일러 그렇게 부르고 있다.
이틀이 멀다하고 서로를 불러 지주(詩酒)를 즐기다 보니 사랑방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던 차에 이 건물의 주인 沈 여사가 우리의 뜻을 알아 선뜻 내어준 방이다.
여럿이 지내기는 좀 협소하고 천장이 낮아 군색하기는 하지만
창을 열면 백운(白雲), 인수(仁壽), 만경(萬景)의 삼각산(三角山)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니 가히 명당이라 이를 만하다.
애초의 생각으로는 전화기 하나만 놓고 차나 마시며 단조롭게 지내려 했던 것인데
사랑방 소문이 밖으로 새나가 뜻대로 되질 않았다.
구경삼아 찾아온 이웃들이 우리들의 꼴을 보고 민망했든지 살림살이들을 한두 가지씩 갖다 놓았다.
어떤 분은 그의 고운 손때가 뭍은 정겨운 책상을, 어떤 분은 자신의 집에서 아껴 쓰던 냉장고를, 또 어떤 분은 아름다운 칠기상을, 혹은 차와 다기(茶器)를, 혹은 주과(酒果)를 이고 지고들 와서 부려놓고 가는 바람에 좁은 방이 더 비좁아졌다.
벽에는 박흥순(朴興淳) 화백이 우리들 네 사람을 기리며 그린 「우이문우도(牛耳文友圖)」와 이무원(李茂原) 사백이 우리를 노래한 족자가 결려 있다.
게다가 북이며 징 꽹과리 등 사물(四物)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이 얼마나 분에 넘치는 복된 방인가.
차를 마시며 산을 보다가 무료하면 술을 한 잔 하고, 술을 하다 흥이 오르면 북을 잡는다.


詩茶酒鼓 *佛牛蘭華 不聽騷音 不問世情 牛耳好日 勝於仙境
(시에, 차에, 술에, 북에/ 시수헌의 네 사람/
세상 소리에 귀 담고/ 세상 물정에 입 다문/
소귀골의 좋은 하루/ 신선 세상 뺨칠레라!)


부지런히 살아가는 세상 분네들이 우리 사는 꼴을 보면 필시 빈정댈 것이 뻔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 뛰고 뛰어도 부족하거늘 이 무슨 세상 물정 모르는 한량패 놀음이냐고 말이다.
하기는 그렇다.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은 세상에 이름을 얻어 응분의 대접을 받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기도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남의 눈에 띄게 사는 것을 오히려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축들도 있다.
그들은 느긋한 게으름을 피우며 남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바보스럽게 조용히 살아가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긴다.
이 양자의 생활 태도를 놓고 어느 쪽이 더 복된 삶의 방식인가를 객관적으로 판가름하기란 쉽지 않다.

허기사 우리도 술만 마시고 빈둥대며 허송세월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인지에 실을 연 40여 편씩의 작품들을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고,
매월 마지막 토요일엔 도봉도서관 강당에서 국악과 더불어 시낭송을 벌인 것이 우금 84회에 이르렀다.
또한 봄에는 시화제(詩花祭)를 가을에는 단풍시제(丹楓詩祭)를 북한산록에서 펼치면서 시와 자연 사랑의 마음을 일깨우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 하는 일도 제법 없는 바는 아닌 셈이다.
언젠가는 시수헌의 방을 좀 늘리고도 싶다.
그래서 세상의 외로운 시인들이 자주 들러 쉬어 갈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내어놓았으면 한다.

시수헌의 다락에서 건너다 본 북한산의 신록은 싱그럽기 그지없다.
뻐꾹새 소리도 은은히 골짝을 울리며 들려온다.
이 삭막한 서울에서 그래도 이러한 자연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용의 머리처럼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구쳐 오른 거대한 바위덩이 인수봉(仁壽峯)을 바라다보면서 그처럼 웅장하고 오래 남을 시들의 산실(産室)을 꿈꾸어 본다.
그래서 이 방의 이름을 감히 시수헌(詩壽軒)이라 명명한 것이다.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