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문학평론> 미의식, 자연, 시대상 - 洪海里의 詩 : 이영걸

洪 海 里 2005. 11. 3. 08:07
美意識·自然·時代相-洪海里의 詩/이영걸
---『投網圖』와 『花史記』를 중심으로
홍해리(洪海里)
 

                          美意識·自然·時代相-洪海里論

                                                         李永傑(시인. 한국외대 영어과 교수)

  洪海里 詩人은 寡默하면서도 社交的이고 溫柔하면서도 剛直한 면이 있다. 詩에 대해서도 별로 말이 없지만 만만치 않은 정열과 패기가 엿보인다. 그의 이름처럼 바다를 자주 등장시키지만, 화려하고 섬세한 그의 시에는 여러 가지 꽃도 자주 취급되어 있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는 「時代」라는 어휘가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審美的인 세계에서 출발한 그의 시는 이제 비판적인 성격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의 詩世界의 특성과 관심의 폭을 해명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處女詩集 『投網圖』를 上梓한 것은 1969년이었다. 「善花公主」, 「獻花歌」, 「春香」, 「俗籬山」 등의 제목이 암시하듯 동양적 아름다움이 주된 관심이었다. 허나 기법에 있어서는 西歐的 緻密性을 보여 주며, 寫像主義와 超現實主義的 방법이 援用되고 있다. 第二詩集 『花史記』는 1975年에 나왔다. 관심의 폭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초기 詩에 비해 더 堅固해지고 的確한 표현과 응축된 構造를 보여 준다. 「자귀나무頌」「藤나무 아래 서면」「法住寺 뒷뜰」같은 東洋美의 追求가 여전하지만 동시에 「벌판」「發聲練習」같은 작품에선 시대적 관심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면이고, 이 계열의 시에서는 이미지보다 육성과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
 『投網圖』의 詩篇들에 이미 洪海里씨의 詩世界의 특성이 드러나 있다. 美意識과 微視的인 이미저리가 특징을 이룬다.

    물거품 말아 올려 구름 띄우고
    바닷가운데 흔들리는 순금 한 말
                                  ㅡㅡ善花公主

과,

    물오른 초여름 나뭇가지 사이
    그리 고운 정도 없이 달은 밝아
    복사꽃 살구꽃 억겁으로 지는 밤에
    알몸으로 우는
    내 풀잎의 이슬 방울.
                                  ㅡㅡ俗籬山

과 같은 耽美的인 순간과 섬세한 표현을 보여 준다. 
 이미지의 조형과 함께 韻律에 대한 배려도 엿보인다.

    산 사이 구름 사이
    또 몇 구비
    은은한 풍경소리
    홀로 한가롭다.
                      ㅡㅡ菩薩寺 風景

와,

    五月 冬柏꽃 남갑사치마
    창포잎에 빗은 머릿결
    하늘 파르라니
    상긋한 살 내음새.
                       ㅡㅡ春香

등의 韻律은 靑鹿派 시인들을 상기시키는 전통적 가락이다. 이런 가락은 『花史記』에 와서는 덜 두드러져 있지만,

    햇빛과 바람의 南쪽에서
    冬柏은 터져 厚皮香을 나르고
                                ㅡㅡ아지랭이

와,
 
    샐비아 활활 타는 길가 주막에 
    소주병이 빨갛게 타고 있다.
                               ㅡㅡ다시 가을에 서서

등의 詩行이 보여 주듯 아주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다. 洪海里씨의 시는 환상적 이미지의 추구에도 불구하고 난해한 인상을 주지 않는데, 이것은 다분히 유창한 리듬에 관계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그의 詩作態度와 美意識의 관련은 첫 시집의 表題詩인 「投網圖」에 잘 드러나 있다.

    無時로 木船을 타고
    出港하는 나의 意識은
    칠흑같은 밤바다
    물결 따라 흔들리다가
    滿船의 부푼 기대를 깨고
    歸鄕하는 때가 많다.

로 시작되어,

    千絲萬絲의 햇살에
    잠 깨어 출렁이는 물결

과,

    珊瑚樹林의 海底
    저 아름다운 魚群의 흐름……

등의 세부를 거쳐,

    찢겨진 投網을 걷어 올리며
    닻을 내리는 나의 意識은
    찬란한 魚群의 흐름 따라
    싱싱한 生鮮의 노랫가락을 그려
    다시 投網을 드리운다
    가장 신선한 새벽 投網을!

으로 끝난다. 원색적인 분위기와 화려한 心象을 보여주는 이 시는 創作過程을 항해로 비유하고 있다. 호흡이 긴 이 시의 세부는 전체적인 짜임새에 있어 충분히 緊密하다 할 수는 없으나 매우 아름다운 구절들을 담고 있고 시에의 열정과 獻身을 매력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花史記』는 『投網圖』에 비할 때 괄목할 進境을 보여 준다. 詩語의 적확한 사용과 堅固한 輪廓은 「갯벌」한 편을 보아도 뚜렷한 사실이다.

    노을이 타는
    바닷속으로

    소를 몰고
    줄지어 들어가는

    저녁녘의
    女人들

    노을빛이 살에 오른
    바닷여인들.

세부의 과감한 생략을 통한 뚜렷한 초점 역시 『花史記』의 특징이다.

    노을빛 밴
    물풀 속
    마름이 지천으로 익고 있다.

    마름을 익힌
    물향기가
    王잠자리 날개를 물들이고 있다.
                                   ㅡㅡ늪

전체적인 緊密性을 「다시 가을에 서서」를 읽으면 확인되는 사실이다.

    샐비아 활활 타는 길가 주막에
    소주병이 빨갛게 타고 있다.
    불길 담담한 저녁 노을을
    유리컵에 담고 있는 주모는
    루비 영롱한 스칼릿 세이지 빛
    반짝이는 혀를 수없이 뱉고 있다.
    그미의 손톱이 튀어나와
    어둠이 되고 파도가 되고 있다.
    살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석류꽃처럼 피던
    그미의 은빛 넋두리가
    드디어 하늘을 날고 있다.
    이슬을 쫓는 저녁 연기도
    저문 산천의 으스름으로 섞여
    꽃잎은 천의 바다를 눈썹에 이고
    서른 하나의 파도
    허허한 내 오전의 미련을
    부르르 부르르 경련을 하게 한다.

 현실의 한 場面을 素描했을 이 작품은 풍경과 의식의 환상적 융합과 긴장된 리듬에 담긴 苛烈한 抒情을 통해 原色的인 아름다움을 얻고 있다.
 『投網圖』에서 보인 微視的인 관찰은 『花史記』에서도 자주 드러나 경이로운 순간을 보여 준다. 

    시월 상달 山茱萸 열매를 적신
    새벽 이슬도 빠알갛게 물이 들었다.
                                    ㅡㅡ새벽의 꿈

와,

    밭둑 미루나무
    물이 올라 이파리마다 눈이 부신 正午
    바람에 옆구릴 간질린
    나비 한 마리
    부산히 하늘을 털어 내리고 있었다.

    찌르륵 찌륵,
    여치가 한낮을 걸르고 있었다.
                              ㅡㅡ보리밭

같은 정확한 관찰과 섬세한 표현이 散在해 있다. 情緖의 예술적 표현은 客觀的 相關物에 의한 것임을 T·S·엘리어트가 지적하였지만 洪海里씨의 詩行들은 감성에 적셔진 이미지들을 통해 독자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表題詩 「花史記」는 꽃을 대상으로 하여 生死의 哀愁를 읊은 連作詩이다. 「投網圖」에서 다루어졌던 美와 詩作의 관련이 더 안정된 詩語와 세련된 표현을 얻고 있다. 外界와 內面을 통해 詩心을 「꽃밭」으로 설정한 후,

    혼자서 피아프게 뒤채이던 늪
    아침까지 출렁이며 울부짖는
    꽃의 바람, 드디어의 開門.

으로 進行됨으로써 詩作의 노고와 보람을 암시하고 있다. 꽃은 생명의 상징인 동시에 치열한 詩精神으로 긍정되어 있다.

    꽃은 죽어 여름을 태우고
    꿈보다 예쁜 불을 지피고 있다.

와,

    겨울 준비를 하는 사철나무
    속으로 속으로 잠을 깁는다.

등의 詩行은 外界와 內面을 竝置시킴으로써 자연과 의식의 관련을 맺어주고 있다. 「花史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詩精神의 瓷態를 寓意的으로 표현한 佳作이다.
 생명과 죽음의 문제는 「年代記」에도 다루어져 있다. 四季의 의미를 명상하며 『投網圖』에서 보여 준 美意識에 내면적 깊이를 더하고 있다.

    아침은 강물소리로 열려
    햇살은 금빛, 사태져 흐르고
    죽음을 털고 일어서
    열기를 더하는 가느란 생명,

같은 이미지와 陳述의 결합을 보여 주는 동시에,

    죽음을 앓던 고통도 허무도
    뜨거운 태양 앞에선
    한 치의 안개일 뿐.

같은 生命의 肯定을 보여 주고 凋落의 가을의 哀愁를.

    기침연습을 하는 나뭇잎파리들
    금간 한여름의 혁명

이라고 痛烈히 표현한 후,

    또다시 모든 것을 불태울 불씨만
    강물이 바다에 안기우듯
    한 줌 흙 속에 묻혀 있다.

로 끝난다. 변화해 마지않는 자연의 週期를 명상함으로써 철학적인 自然詩의 경지를 터놓고 있다. 「花史記」와 「年代記」는 세부가 긴밀히 결합되어 주제의 표현에 충분히 기여하고 있다.
 初期詩의 美意識에 內面的 깊이를 더한 『花史記』에는 또 한 가지의 새로운 方向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時代相을 도입하였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發聲練習」을 들 수 있다.

    아무도 없는 들판에
    虛空이  한 마당 허옇게 누워 있고
    어둠이 혼자서 허리를 꺾고 있다.
    소리도 못치는 허수아비가
    달빛과 꽃과 바람을 데리고
    양춤을 추고 있는 풍경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짙은 막막함 그 한가운데
    슬픔과 恨의 새가 
    가끔 입을 벌려
    發聲練習을 하고 있다.
    관절염을 앓고 있는 母國語로
    아! 아! 아! 아! 앜!
    울고 있다.

신랄한 語調와 윤리적 관심을 보여 주는 이 작품은 이미저리의 집요한 추구 대신 直情的 陳述에 의존하고 있다. 眞摯한 태도와 함께 諷刺와 諧謔을 곁들여 悲壯美를 자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悲劇的 시대상을 友誼的으로 표현한 「發聲練習」외에도,

    달빛도 외로워 춤추는 길에서
    우리는 취해서 한 쪽 귀를 자른다.
                                   ㅡㅡ달빛

와,

    죽은 입에서 귀를 주워내고
    썩은 살 속에서 눈알을 추려내고
                                  ㅡㅡ겨울 揷話

같은 凄切한 심정 吐露와 비판이 있고 「나의 食慾」에서는 감동적인 自己諷刺를 보여 준다.

    입술 언저리에 와서는
    말도 얼어붙어
    비인 空間은 비어 있을 뿐이다.
    대숲에 들어
    나의 귀는 살아
    대바람 소리만 듣는다.
    대숲 우으로 나는 까마귀 떼
    까마귀 울음을 울고 있다.
    엄동에도 얼지 않는 갈증의 바다
    純植物性 안주와 쏘주,
    女子를 앞에 놓고
    출렁출렁 출렁이고 있다.
          ---너의 輪廓이 흐려지고 있다.

이 경우에도 眞摯性과 諧謔性이 어울려져 있다. 文德守씨는 이 시인의 상상력에 관해 「情緖와 知性을 연결시킬 수 있는 可能性」을 지적하였지만, 근년의 시는 初期詩의 화려함과 섬세함을 계속 보여 주면서도 지성의 統禦를 받아 더욱 뚜렷한 輪廓과 절실한 語調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美意識은 자주 陶醉的인 순간을 보여 주지만 그의 관심이 시대상에 쏠릴 때에는 절박감과 重厚感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것은 溫柔한 풍모 속에 剛直한 성격을 지닌 그의 인물과도 부합되는 사실이다.
 『花史記』 이후에 쓰여진 詩語들은 자주 시대상의 반영에 기울어져 비극적 인식을 제시한다. 이미저리의 耽美的 조형과 자연의 철학적 명상을 보여 주던 그의 詩는 이제 주로 육성과 진술에 의존하고 있으며 「사내들의 마을」「武橋洞」 같은 시에서는 밉지 않은 요설을 구사하기도 한다. 微視的 관찰과 수줍은 詩語를 사용하던 그의 시는 이제 거침없는 發聲을 통해 논리적 관심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울음소리도 다 잠든
    제일 곱고 고운 꽃밭 한가운데
    텅 비어 비어 있는 자리의 사내들아
    가슴속 헐고 병든 마음 다 버리고
    눈뜨고 눈먼 자들아
    눈썹 위에 풀풀풀 내리는 꽃비 속에
    젖빛 하늘 한 자락을 차게 안아라
    빈 가슴을 스쳐 지나는 맑은 바람결
    살아 생전의 모든 죄란 죄
    다 모두어 날려 보내고
    머릿결 곱게 날리면서
    처음으로 노래라도 한 자락 불러라.
                                    ㅡㅡ첫눈

이 시는 그의 初期詩에서는 볼 수 없던 윤리적 관심을 걸걸한 肉聲에 담고 있다. 「곱고 고운」, 「텅 비어 비어 있는」, 「살아 생전」등의 反復은 이전의 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詩法인데 激昻된 심정을 修辭的인 리듬에 담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梁彩英씨는 이 시인의 시가 「神經性」을 띄고 있다고 지적하였으나 윤리적 관심을 표현한 詩篇들에서는 굵은 선과 급박한 호흡과 대담한 요설을 보여 주고 있다.

    토요일밤과 북소리와 오류와 忘却이여
    그대들은 언제나 賓客이다.
    깊디 깊은 늪가의 수목들은 쓰러지고
    뿌리마다 뿌리채 뽑히우고 있다.
    물과 불의 영원한 親和를 위하여
    밝음과 어둠의 平和를 위하여
    모래 속을 헤매어 온 너의 意味가
    오늘밤은 꿈을 꾸리라 꿈꾸는 꿈을 
    빨갛게 익은 사과 두 알이 빠개지는 꿈을.

    빛나는 물, 빛인 물, 無意味의 물인 너
    아득한 심장에 혼자서 타는 불의
    찬란한 불꽃이 죽을 때까지.
                                    ㅡㅡ武橋洞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아픔과 疎外感이 直情的으로 표현되어 있다. 「花史記」와 「年代記」에서 안정된 세계를 보여준 후 洪海里씨의 관심은 이렇게 시대상의 반영에 기울어져 있다. 당분간 이 세계에 대한 探索이 계속될 것 같지만, 그의 詩世界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으리라.
 初期詩에서는 동양적 아름다움을 寫像主義와 超現實主義의 방법으로 추구한 후 이 세계에 철학적 깊이를 더하였고, 다시 시대상에 시선을 돌려 윤리적 관심을 肉聲과 陳述에 의해 표현하고 있다. 『花史記』에 공존하고 있는 자연과 문명에의 관심이 앞으로 어떤 비례로 전개될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열렬한 詩的衝動과 언어의 부단한 실험을 통해 아름다움과 윤리적 가치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염원하며 그의 작업을 주시하기로 한다.   

                                                       『洪海里 詩選』(탐구신서 275.1983)
                                                       『武橋洞』(태광문화사.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