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문학평론> 時代와 비젼 - 洪海里의 詩 / 이영걸

洪 海 里 2005. 11. 3. 19:14
時代와 비젼- 洪海里의 詩/이영걸
---『우리들의 말』, 『武橋洞』을 중심으로
홍해리(洪海里)
 

                              時代와 비젼

                                                         李永傑 (시인. 한국외대 영어과 교수)
                                              Ⅰ

  洪海里씨는 1976년에 詩選集 『武橋洞』을 냈다. 제1부에는 그의 첫 시집 『投網圖』(1969년)의 작품들을, 제2부와  제3부에는 제2시집 『花史記』(1975년)의 작품들을 골라 실었고, 제4부에는 그 이후의 작품들을 실었다. 이 시선집의 해설에서 필자는 심미적인 세계에서 출발한 그의 시가 비판적인 성격으로 옮아가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花史記』이후에 쓰여진 시편들은 자주 시대상의 반영에 기울어져 비극적 인식을 제시한    다. 이미저리의 탐미적 조형과 자연의 철학적 명상을 보여주던 그의 시는 이제 주로 육성    과 진술에 의존하고 있으며……밉지 않은 요설을 구사하기도 한다. 미시적 관찰과 수줍은    시어를 사용하던 그의 시는 이제 거침없는 발성을 통해 윤리적 관심을 직설적으로 표현하    고 있다.

 이번에 내는 제4시집 『우리들의 말』(1977년)의 성격도 많이 시대상황의 반영에 기울고 있다. 우리 모두는 시대를 살고 있으며 저 나름으로 시대에 반응한다. 시대의 혼란과 충격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고 습관과 자기 보호의 방편으로 둔감하거나 무관심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사회와 시대는 외부적 현실이다. 이것이 시에 반영될 때 우리는 시인의 주체성을 만나게 된다. 그의 시점을 통해 외부적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사는 만큼 즉각적 공감과 함께 때로는 유보의 순간도 있을 수 있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시인들은 우리 시단에 많다. 현대사회의 복잡성과 부조리의 중압은 많은 시인들로 하여금 시의 사회적 효용을 의식하도록 만들고 있다. 시의 윤리성에 대한 이러한 의식은 지난 십여년간 꾸준히 강화되어 온 느낌이다. 그런데 시대상을 반영하는 시인들은 정직한 심경토로에 만족하기 쉽다. 자신의 관심과 열정에 휩싸여 의도와 작품의 간극을 놓치기 쉽다. 그러므로 시인은 자신의 관심을 잘 소화시키고 예술적 통어와 참신한 언어를 통해 독특한 환시를 제시하려 애써야 한다.
 무엇보다 시인이 경계해야 할 일은 상투적 관점과 표현이다. 동시대 시인간의 상호영향은 어느 면에서는 바람직한 일이지만 비슷한 스타일과 어휘의 선택은 시인의 독자성을 의심스럽게 만들고 설득력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독자적인 시점과 언어를 획득하려는 노력은 공동적 현실을 다루는 시인들에게 특히 요청되는 사항이다. 사회적 열정과 함께 도저한 창작의식이 병행돼야 한다.
 근년에 시대상을 다루기 시작한 洪海里씨는 과격한 언어실험을 통해 자신의 체험과 관점을 열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노력의 전반적인 성격을 살펴보기로 하자.

                                              Ⅱ

 이미지의 연상적 전개와 수사적 자세와 활달한 리듬이 이 시집에 실린 많은 작품들의 특징이다. 洪海里씨는 초기로부터 환상적 이미지를 추구해 왔다. 이미지간의 연상적 맥락은 이 시인의 경우 단시보다 장시에 더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낱말이 지닌 연상을 여러 상황을 통해 전개시킬 수 있는 까닭이다. 주어진 길이에 수용될 수 있는 이미지의 수는 한정될  수밖에 없고, 성공적인 시는 흔히 기본적 논리와 구체적 세부가 균형을 이룬다. 
 환상적 이미지를 통해 시대적 비젼을 제시하는 이 시집은 꽤 과젹한 언어실험을 하고 있으며 『花史記』에서 보여준 언어의 세심한 조탁으로부터의 거리를 드러내고 있다. 자발적인 인상과 역동적인 힘을 얻은 반면 분명한 논리성을 희생시키고 있다.
 「텅 빈 귀」는 언어구사에 있어 洪海里씨의 최근 경향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밤낮없이 시장기가 드는 나의 귀
  바람소리 폭포소리만 귓전을 친다.
  우리는 귀를 막고 우리는 들으려 한다
  죽은 소리는 소리가 아니다
  천 리 만 리 밖에서도 가득 차 오는
  산 소리가 하늘빛 깨치면서 
  산빛으로 물빛으로 달려가고 있다
  죽은 꽃이 떠가는 허공중으로
  목금을 찍고 있는 까치 몇 마리
  새벽녘이 그들의 광장이라면 
  사내야 눈감고 달려가는 사내야
  길이 보이느냐 죽음으로 가는 길이
  텅 빈 귀에 난 길을 타고
  달려가는 바람소리는 뜨겁다.

 모두 14행의 단시이지만 뚜렷한 논리성 대신 언어의 암시성에 의존하고 있다. 이 시에는 <나>와 <우리>와 <눈감고 달려가는 사내>가 있다. <밤낮없이 시장기가 드는 나의 귀>는 문맥상 <산 소리>, 즉 진실을 갈구하는 작중화자의 심경을 대표한다.

  우리는 귀를 막고 우리는 들으려 한다
  죽은 소리는 소리가 아니다
                                                                                
 이 구절은 어조에 의해, 진실에 대한 <우리>의 양면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귀를 막고 우리는 들으려 한다>는 단순히 <우리는 귀를 막고 들으려 한다>와는 어조상의 차이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무리한 행동의 역설적 비판에 그치지만, 전자의 경우는 듣지 않으려는 의지와 들으려는 의지의 갈등을 미묘히 나타낸다.

  천 리 만 리 밖에서도 가득 차 오는
  산 소리가 하늘빛 깨치면서
  산빛으로 물빛으로 달려가고 있다

 <가득 차 오는>은 선행하는 <텅 빈 귀>에 의미심장한 대조를 이룬다. <산 소리>가 <달려가고 있다>는 말은 진실과의 거리를 가리키며, 진실은 뒤쫓아가야 할 이상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죽음으로 가는 길>로 <눈감고 달려가는 사내>의 상징적 상황이 파악될 수 있다. 이 경우의 <죽음으로 가는 길>은 <죽은 소리는 소리가 아니다>의 경우와는 달리 적극적 가치를 지닌 죽음이다 진실을 향한 처연하고 필사적인 행위를 암시하는 까닭이다. 그러기에 작중화자는

  텅 빈 귀에 난 길을 타고
  달려가는 바람소리는 뜨겁다

라고 긍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우리에게 낱말의 암시성과 상징적 상황에 유의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유창한 리듬 자체에도 강렬한 호소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어의 암시성은 이 시집에 실린 50편의 작품 중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는 「武橋洞」연작의 특징을 이룬다. 그러나 「인수봉을 보며」, 「귀뚜라미」, 「우리들의 말」, 「그리움을 위하여」 등의 시는 이 시대를 사는 아픔과 염원을 비교적 소박한 자세와 직절한 언어로 읊고 있다. 「그리움을 위하여」는 진실한 자아의 회복과 영적 교류를 갈구하는 심경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네 속에 있는 나를
  내 속에 있는 너를
  우린 벌써 박살을 냈다.

  아득한 나의 목소리
  아득한 너의 목소리
  아득한 우리 목소리

 그러나 소외의 시대에서 시인이 꾀하는 것은 <허전한 가슴으로 피가 도는 노래>를 부르는 일이고, 그가 간절히 회상하는 바는 의미심장하게도 지나간 농촌생활의 광휘와 서정이다.

  흙벽에 등을 대고 듣던
  새벽녘 선한 공기를 찍는 까치소리
  한낮 솔숲의 뻐꾸기 울음
  그믐밤 칠흑빛 소쩍새 울음

  보리 푸름 위 종달새의 밝은 봄빛과 
  삘기풀과 찔레꽃의 평화……

 이 시는 이렇게 소외와 단절의 도회생활에 농촌생활의 단순성을 대조시킴으로써 원초적 순진성을 향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도회생활의 평면에서 인간관계가 회복될 수 있겠는가의 문제는 회피되고 있는 셈이다. 단지 불만스러운 상황의 확인만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Ⅲ

 「武橋洞」연작은 「텅 빈 귀」, 「그리움을 위하여」 등에 나타난 모티프를 큰 규모로 다룬다. 「武橋洞 1」은 1976년에 나온 시선집에 수록됐었는데 필자는 이 작품을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아픔과 소외감이 직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라고 지적했었다.

  토요일밤과 북소리와 오류와 망각이여
  그대들은 언제나 빈객이다
  깊디 깊은 늪가의 수목들은 쓰러지고
  뿌리마다 뿌리채 뽑히우고 있다

 이런 부분에는 과연 직정적인 표현이 있지만, 동시에 낱말의 암시성이 매우 짙은 구절도 있다. 물, 불, 바람 등의 원소를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환상적 구성과 문명비판을 보여준다.

  빛나는 물, 빛인 물, 너 물이여
  별인 물, 달인 물, 바람인 물, 불인 물
  무의미의 물이여
  아득한 심장에 타는 불의
  찬란한 불꽃이 잠들 때까지

 문맥상 물과 불은 생명의 활력과 열정을 상징한다. 원소와 대우주와 소우주를 도취적인 리듬에 병치시킴으로써 막연한 심경이 제시돼 있지만 이후의 구절들을 통해 낱말의 다의성을 전개시켜 나간다. 낱말의 연상이 진술과 상황을 통해 윤곽을 얻는 경우와 암시적 분위기만을 조성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물과 불의 영원한 친화를 위하여
  밝음과 어둠의 평화를 위하여

같은 구절은 논리적 확실성 대신 정서적 암시성에 의지하고 있다.
 「武橋洞」은 모두 7편의 연작시이다. 한 구절에 도입된 이미지나 낱말이나 상황은 그 이후의 여러 구절에 되풀이됨으로써 의미의 맥락과 전개를 보인다.

  안개가 내린다 녀릿녀릿
  스물스물 내리는 한 떼의 어둠
  짙어가는 어둠의 골목골목으로
  가면을 쓴 수 천의 사내들
  탈에 묻힌 숱한 여자들
                     ━━「武橋洞 2」

 이 구절은 「武橋洞 1」에 나온 한 구절의 의미를 부연하고 있다.

  안개 속에서 누가 신방을 차리고
  하염없음과 입맞추고 있다.
  바다에 익사한 30대 사내들
  일어서는 손마다 별이 떨어지고
  달이 깨어지고 있다.

 두 구절을 연결시킴으로써 이 시가 도회인의 소외감과 공허한 풍속과 영적 교류를 다루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가면>과 <탈>은 도회인의 위장성과 익명성을 암시하고 <안개>는 그의 허무한 생활과 방향상실을 암시하고 있다.
 도회인의 소외감과 공허성과 방향상실을 윤리적 구조로 한 이 시는 4 원소의 상징을 근간으로 해 매우 치밀하고 복잡한 세부를 수용하고 있다. 도회풍속의 여러 양상을 역설적인 태도로 관찰하기도 하고, 환상과 사실과 진술의 대담한 병치를 통해 문명비판을 꾀하고 있다. 다음 구절은 좋은 예의 하나이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별들의 흔적없는 이별과
  이미 닫혀버린 문밖의 서두르는 구두발자국
  가슴마다 출렁이는 어두운 물결 사이
  수 천의 섬이 둥둥 떠다니고
  향그런 풀꽃들이 피어 손짓하지만
  솟았다 사라지는 낯선 섬들
  비만증을 다스리는 당당한 허세가
  텅 비어 있는 있음 위에서
  아름다움을 위하여
  스냅사진같은 정사를 위하여
  잔인한 시간의 영원을 위하여
  끝없이 두드리는 북소리 소리
                     ━━「武橋洞 2」
 
 <별들의……이별>과 <서두르는 구두발자국> 소리와 <수 천의 섬>을 병치시킴으로써 쾌락 후에 오는 슬픔과 허무와 고독을 시사하고 있다. 별과 섬은 물론 서로 유리된 도회인의 상징이다. 이런 이미지의 암시성과 함께 <당당한 허세>, <텅 비어 있는 있음> 등의 역설적인 시어로 찰나적 쾌락에 탐닉하는 공허한 도회의 풍속을 비판하고 있다.

                                              Ⅳ

 근년에 시작된 사회적 관심을 매우 야심적으로 표현한 「武橋洞」연작은 洪海里씨의 시정에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된다. 초기로부터 닦아온 환상적 기법에 대담한 진술과 힘찬 육성을 결합시켜 현대 도회생활의 실상을 비판하고 있다. 이 시의 치밀하고 복잡한 세부는 좀 더 자세한 분석과 음미를 거쳐야 할 성격의 것이지만 전편을 몰고가는 상상력의 힘과 손쉽게 포착되는 빼어난 구절들만으로도 상당한 의의를 인정하게 된다. 연상의 자유분방함과 치밀한 세부는 때로 독자를 당황케 하겠지만 대체적으로 온건한 의미의 맥락과 설득력 있는 리듬을 지니고 있어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
 현대 영미시의 경우 도회의 실상을 다른 시인으로 에즈라 파운드와 T·S·엘리어트를 기억할 수 있다. 파운드의 「휴우 셀윈 모오벌리」는 산업주의 사회에서 예술가가 겪는 소외감과 수회를 다루었고, 엘리어트의 「荒蕪地」는 현대인의 도덕적 타락과 방향상실을 다루었다.
 「武橋洞」은 도회인의 소외감과 도덕적 타락과 방향상실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현대시의 한 전통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언어의 암시성에 있어서는 엘리어트에 가깝지만, 洪海里씨는 상황과 인물의 객관적 관찰과 사실적 소묘보다는 이미지의 환상적 처리와 의식의 흐름을 통해 현실의 단면을 중첩시키고 있다.
 「荒蕪地」와의 또 다른 차이는 엘리어트가 더 다양한 문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반면 「武橋洞」은 대체로 단일한 문체와 억양을 들려준다는 점이다. 동시에, 「荒蕪地」에는 기독교적 가치관이 저변에 깔려 있으나 「武橋洞」은 삶의 불만을 체험적인 평면에서 서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리움을 위하여」의 경우처럼 이 작품에도 적확한 진단이 있을 뿐 처방이 없는 바 이 점은 앞으로의 과제로 보인다.
 이 시집에 취급된 모티프들이 이후 어떤 양식으로 심화되고 해결될 것인지 자못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대상과 문명을 취급한 洪海里씨는 현재 전환기에 처해 있는 것 같다. 이 시집에는 초기로부터의 환상적 기법을 계속 원용해 사회적 관심을 취급한 「武橋洞」 이외에도 이미 지적했듯이 심경을 비교적 직정적으로 토로한 비판적 성격의 시들이 있다. 또 종전의 관심의 계속인 자연과 일상사를 다룬 시편들도 많이 있는데 그중 「빛나는 계절」은 특히 인상적이다.
 이 글에서는 주로 암시성이 짙은 실험적 시편들을 해설했지만 여기에도 진술과 육성의 가능성이 탐색되었음을 보았다. 그런데 언어의 암시성과 진술의 직절성을 균형 있고 조화된 구조 속에 담는 일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우리는 이 방향으로의 계속적인 노력을 洪海里씨에게 기대한다. 審美·自然·時代에 대한 관심은 한 시점에서 비례의 차이를 보이면서도 공시적일 수 있다. 이 시집에서도 그 가능성이 암시돼 있다. 이런 관심들이 차후 어떻게 조화되고 융합될 것인지는 흥미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英美詩와 韓國詩』(문학예술사. 1981)
                           『洪海里 詩選』(탐구신서 275. 1983)
                           『우리들의 말』(삼보문화사.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