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시> 쓴맛에 대하여

洪 海 里 2005. 11. 26. 07:01

쓴맛에 대하여


洪 海 里



사람들은 단 것을 좋아하지만

맛의 근본은 쓴맛일시

혀끝으로 촐랑대는 단맛에 빠진 요즘

세상일이 다 그렇다

혀끝으로 시작하고 그것으로 끝내면서

그곳에서 놀고 있다

단맛이란 맛있다는 말과 동의어지만

어찌 단맛이 맛의 전부일까

삶의 은근한 맛은, 아니 멋은,

느낄 때까지의 시간이 길고

또 오래 남아 없어지지 않는

쓴맛에 있음이 아니랴

단맛이 단맛을 내기 위해서는

쓴맛이 근저에 있어야 하는 것을

고진감래가 감진감래,

아니 감진고래로

이제는 옛말이 되어 버렸고

속담으로나 남아 있는 표현이 되었지만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싫어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지

어찌 젊은이들만의 일일까만

더위먹어 헛헛하고 헛배 부를 때

밥맛을 일깨우고 기운 차리게 하는

한 대접의 익모초, 그 초록빛 하늘,

학질에 걸려 덜덜 떠는 한여름

몇 알의 금계랍은 또 어떤가

쓸개에서 쓴 물이 빠지면

쓸개 빠진 놈이 되어 버리는 법

어느 새벽에 잠깨어 쓴맛을 기리며

나의 쓸개를 더듬어 보나니

입 안에 단 물이 가득 고이네.


- 시집 난초밭 일궈 놓고(1994, 동천사)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청주 가는 길  (0) 2005.11.26
<시> 다시 보길도에서  (0) 2005.11.26
<시> 단순한 기쁨  (0) 2005.11.26
<시> 양파는 없다  (0) 2005.11.26
<시> 나무들은 둥글게 나일 먹는다  (0) 2005.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