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시> 밤참타령

洪 海 里 2005. 11. 29. 04:43
밤참타령
홍해리(洪海里)
 

한 이십 년도 더 된 속 빈 시계가 자정을 울었다
태엽을 금방 감았을 때는
텡, 텡! 하고 힘있게 울었다
불알을 좌우로 흔들어 대면서
불나게 알알대며
신나게 울었다
그러다 제놈도 밥이 다하면
뎅뎅거리다 데엥데엥 울었다
어느날 자정이었다
속이 출출해 잠은 달아나고
찹쌀떡 메밀묵! 그것도 아니면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나 무 한 토막
그 놈들 생각으로 군침이 고이는데
시계소리가 또렷또렷 다가왔다
무엇을 먹어 볼까 말까
잘 때는 먹지 않는 것이 좋지
그런 생각으로 밤참을 때우고 마는
중년 사내의 깊은 겨울밤
배가 차 있을 때는
시계가 가고 있는지(이표현은 틀렸다
가고 있는 것은 시계가 아니다)
시계바늘이 제자리를 돌고 있는지
불알이 좌충우돌하고 있는지
전혀 무관심했으나
아하, 속이 비니 가득 차는구나
시계소리 텡텡텡 채우는구나
빈 속을 세월의 허기로
이제 마음까지도 제놈이 먼저 채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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