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책갈피> 로버트 프로스트

洪 海 里 2005. 12. 30. 07:25
04/01/28

[책갈피 속의 오늘]

 

1963년 로버트 프로스트 사망

그는 시인(詩人) 이전에 농부였다.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던 토박이 농투성이였다. ‘땅에 속삭이는 긴 낫’의 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좋은 도끼자루를 얻으려 ‘땅 위의 별과 같은 반딧불이’를 벗 삼아 밤길을 재촉하던 시골뜨기였다.

그의 시는 ‘개똥지빠귀 울음 우는 어스름’이거나 ‘함박눈이 소복이 쌓이는 저녁, 숲가에 잠시 멈춰 서서’ 있을 때에 씌어졌다.

로버트 프로스트.

40세가 되던 1914년에 와서야 그의 시는 눈에 띄었다. 그리고 한 번 주목을 받게 되자 그의 긴 생애 동안 명성은 끊임없이 더해만 갔다. 89세에 세상을 뜨기까지 그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었다.

프로스트에게 시를 쓰는 행위는 풀을 베거나 사과를 따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시는 삶의 사소한 티끌까지 보듬는 은유로 족했다. 그의 시는 촘촘한 비유의 숲과도 같다.

시적 자아는 일상(日常)을 떠나지 않는다. 저 너머에 있는 궁극(窮極)은 눈부신 빛으로 다가오기보다는 반어적인 표현과 아이러니의 덤불 속에서 수줍은 듯 머뭇거린다. 시란 ‘생각을 일구어가는 행위’일 뿐. 그는 그 어디로 독자를 이끌지 않는다.

‘아마도 …였겠지’ ‘어쩌면 …일지도 몰라’와 같은 프로스트 특유의 어법은 그 소산이다.

다만, 신비(神秘)는 예기치 않는 순간 솟구친다. 혼란의 생(生) 한가운데에 어떤 ‘순간적인 멈춤’처럼. 또는 가지런히 베인 풀들이 햇볕을 받으며 어느덧 저절로 건초가 되듯이 그렇게 모락모락.

그는 영원이나 무한, 신(神)을 갈구하지 않았다.

사실(事實)만이 노동이 아는 꿈이었다. 구원은 현실을 추수(秋收)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그래서 노동이 아는 꿈은 종종 달콤하다. 그것은 ‘저 건너’가 아닌 ‘이곳’에 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울타리 안에 머물렀다. 소박한 농부의 삶과 언어를 지켰다.

‘저쪽은 전부 소나무이고 이쪽은 사과나무예요/ 내 사과나무가 경계선을 넘어가/ 떨어진 솔방울을 먹지는 않겠지요….’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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