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
1930년 소설가 D H 로런스 사망
‘세기의 스캔들’이 되고만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작가 D H 로런스. 그는 자신의 가까운 친구에게 “과연 광부의 아들이 시인이 될
수 있을까”라고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로런스의 그런 우려는 훗날 끔찍한 현실로 나타난다.
그의 소설과 시는 그 비천(卑賤)한(?) 출신배경 때문에 신랄한 비판과 인신공격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20세기의 위대한 시인 T
S 엘리엇이 자리하고 있었다.
엘리엇은 1920년대 로런스가 이미 걸출한 소설가로 확고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무자비하게 깎아내렸다. “그의 소설은
병적인 징후가 두드러진다. 파격적인 성(性)묘사는 그의 특수한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히스테리에 다름 아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시’로 불렸던 ‘황무지’의 시인 엘리엇. 그와 로런스가 활동했던 시기는 영문학의 역사에서 ‘로런스와 엘리엇의
시대’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화해할 수 없었다. 엘리엇은 로런스가 죽은 뒤에도 공격을 계속했다.
예술에서 오로지 ‘생(生)에의 충성’을 맹세했던 로런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의 근원’에 펜을 담갔다. 폐병 말기에 접어들어 육체적 파멸에 직면한 때에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집필했고,
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 ‘무감각의 공허’에 빠진 20세기의 인간을 구원하고자 했다.
그가 소설에 담고자 했던 생명의 메시지는 그의 시 ‘뱀’에서 아름답게 표출된다.
시에서 화자(話者)는 외딴 큰 나무 밑 옹달샘에 물을 마시러 갔다가 자기보다 먼저 와서 물을 마시는 뱀을 발견한다. 그리고 뱀을 때려
죽여야 한다는 문명세계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오히려 자기가 자연의 신성한 생명체가 마시는 물을 같이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영광스러움’을 느낀다.
‘뱀’은 서구의 기독교문명이 그토록 인간의 본능에서 떼어놓고자 했던 그 무엇, 로런스가 원초적 성을 통해 갈구했던 그 무엇의 알레고리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광부의 아들이 시(詩)를 쓰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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