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책갈피> 방정환

洪 海 里 2005. 12. 30. 07:34
04/02/29

[책갈피 속의 오늘]

 

1923년 방정환 ‘어린이’ 창간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보아(쳐다봐) 주시오.’

소파 방정환. 그는 이 땅에 처음 ‘어린이’라는 말을 썼다. 1920년 천도교에서 발행하는 잡지 ‘개벽’의 도쿄특파원으로 있으면서 번역동시 ‘어린이 노래:불켜는 이’를 발표했다. 어린이는 그 이전까지는 동몽(童蒙)이었고, 소년이었고, 아이들이었다.

1922년 5월 1일 ‘어린이 날’을 제정한 것도 소파였다. 그리고 그 이듬해 3월 1일, 그의 어린이운동과 아동문학의 결정체인 월간 ‘어린이’가 탄생한다.

‘어린이’는 근대 아동문학의 요람이었다. 동요 ‘고향의 봄’과 동화 ‘호랑이 곶감’, 동시 ‘까치까치 설날’을 세상에 내보냈다. 잡지는 고한승 마해송 윤극영 이원수와 같은 1세대 아동문학가들의 터전이 됐고, 이 땅에 아동문학이라는 근대적 장르를 열었다.

소파는 ‘야주개’(서울 종로구 당주동)에서 싸전과 어물전을 하는 방경수의 맏이로 태어났다.

그가 소학교에 들어갈 즈음에는 ‘쌀 동냥’을 해야 할 만큼 가세가 기울었다. 어찌어찌 선린상고에 들어갔으나 중퇴하고 1917년 18세 되던 해에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의 셋째 딸과 결혼한다. 천도교의 지원으로 그의 어린이운동은 날개를 달게 되었다.

소파는 진보주의자였다. 실용적 감각으로 개혁을 꿈꾼 젊은 지식인이었다.

그는 “조선 사람의 가정은 평안히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커다란 객줏집 여관”이라고 대가족제도를 한탄했고, 흰옷은 자주 빨아야 하고 금방 상한다며 ‘백의(白衣) 망국론’을 폈다.

그는 잔뜩 주눅 든 백성들이 못내 안타까웠다. “지금 조선 사람들은 너무 주제넘지 못하고 건방지지 못해서, 아무 신기한 짓도 없어서 탈이다.”

평생 가난했으나 유머를 잃지 않았고, 키는 작았으나 도량이 컸던 소파. 어린 새싹을 키우는 일에 몰두했던 그는 ‘10년 후를 보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1931년 32세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만다.

“가야겠어. 말도 마부도 새까만 흑(黑)마차가 나를 데리러 왔어. 어린이들을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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