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
1972년 日 작가 川端康成 자살
그의 나이 73세,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 3년반 만이었다.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그 어떤 낌새도 없었다. 이날 그는 글을 쓰다 말고 훌쩍 집을 떠났다. 쓰다 만
원고지엔 ‘또’자가 쓰여 있었고, 만년필은 뚜껑이 열린 채로였다.
대체 왜? 아마 그 자신도 스스로의 죽음을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도 여겨졌다.
가와바타의 생과 문학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미행(尾行)한다.
두세 살 때에 잇따라 부모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이와 할머니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백내장으로 눈이 먼 할아버지와 단 둘이 외롭게
자랐으나 열다섯 되던 해에 그마저 떠나보내야 했다.
자전적 소설 ‘열여섯 살의 일기’에 이렇게 쓴다. “정오의 햇살이 내리쬐는 언덕에서 소년은 할아버지의 뼛가루가 든 항아리를 들고 코피를
흘린다….”
그는 10대에 이미 삶의 끝에 잠겨 있는 ‘죽음의 문’을 보았다. 그 ‘문고리’는 삶의 열쇠였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
펼쳐졌다. 밤의 밑바닥이 하얗게 변했다.’
그는 죽음을 투명하게 바라보았다. 눈처럼 차가웠다.
허무의 칼날이 긋는 상흔(傷痕)…, 홀로 남겨졌다는 ‘노란 현기증’…. 그 고독과 단절감 속에서 그는 지극한 탐미주의를 일궈낸다.
신비의 경지에 이르는 섬세한 묘사 속에 ‘아름다운 일본의 나’를 꽃잎처럼 흘려보낸다.
그는 일본의 전통과 일본의 문화, 그 모든 일본적인 것을 찬미했다. 그 극단엔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할복한 제자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있었다.
눈부신 벚꽃의 낙화(洛花)엔 사무라이의 칼날과 ‘가미카제’의 광기(狂氣)가 너울거린다.
가와바타. 그는 승려시인 료칸(良寬)의 시를 자주 읊조렸다. ‘내 삶의 기념으로/무엇을 남길 건가/봄에 피는 꽃/산에 우는 뻐꾸기/가을은
단풍 잎새….’
그는 이 생에서 단지 아름다움을 보고 갔는가.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1972년 4월 16일. 소설 ‘설국(雪國)’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일본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자살했다. 입에 가스관을 물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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