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책갈피> 황석영

洪 海 里 2005. 12. 30. 07:41
04/04/26

[책갈피 속의 오늘]

 

1993년 소설가 황석영 구속

“북한은 또 다른 ‘나’예요. 남한과 북한은 분열된 자아(自我)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가 분열된, 그러나 언젠가는 하나가 될 자아라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야지요.”

‘분단시대의 작가’ 황석영. 1989년 북한을 찾은 감회는 이랬다. 북녘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그리고 분단 이후 첫 방북 작가는 우리시대 최초의 망명 작가가 되었다. 해외에서 수년을 떠돌다가 1993년 귀국하자마자 구속된다.

재판부는 7년형을 선고했으나 이례적인 판결문을 냈다. “피고인의 작품을 거의 모두 독파했다”며 ‘앞서 가는 자가 아니라 같이 가려 한다’는 소설 ‘장길산’의 후기를 인용해 눈길을 끌었다. 그때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으니. 1998년 특사로 나온 대작가의 ‘귀환’은 눈부셨다.

‘20세기 동아시아 3부작’이라는 ‘오래된 정원’(2000년) ‘손님’(2001년) ‘심청’(2003년)을 쏟아냈다. 그는 여전히 활기찼고, 감옥에서 오래 궁굴리고 삭혔던 사유(思惟)들은 새롭고 실험적인 그릇에 넘쳐흘렀다.

그는 올해로 등단 42년째다.

1971년 전태일 분신(焚身) 직후 발표한 중편 ‘객지’는 리얼리즘 문학의 첫손가락에 꼽힌다. “전태일 사건이 70년대 사회사의 시발이었듯 ‘객지’는 70년대 소설사의 출발이었다.”(문학평론가 염무웅)

그리고 ‘장길산’은 1980년대의 소설이었다. 시대의 사건이었다. 솟구쳐 오르는 민중의 힘이었다.

스스로를 ‘딴따라’라 칭하는 황석영. 환갑이 지났건만 그의 구라(?)는 여전히 성(盛)하다. 하기야 그는 ‘만년설을 쓴 신비로운 산과 같은 예언자’이고자 한 적이 결코 없었으니.

황석영은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이 살고 있는 판을 새롭게 짜고자 하는, 그래서 삶이 그리도 고달픈 작가다. 우리 시대의 작가다. 분단을 ‘앓는’ 작가다.

그런 그인지라 ‘송두율을 위한 변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분단의 희생자에게 연민을 갖는 것, 그것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소임이었으니.

“지금이 어느 땐가. 언제까지 이 ‘냉전의 박물관’을 껴안고 있을 건가. 북쪽이 모질면 남쪽이라도 너그러워야 하지 않겠나. 좌든 우든 그것은 껍데기의 표상일 뿐이지….”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갈피> 에머슨  (0) 2005.12.30
<책갈피> 김기림  (0) 2005.12.30
<책갈피> 가와바다 야스나리  (0) 2005.12.30
<책갈피> 보들레르  (0) 2005.12.30
<책갈피> 소월 시비  (0) 2005.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