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책갈피> 사디즘의 원조

洪 海 里 2005. 12. 30. 07:45
04/06/01

[책갈피 속의 오늘]

 

1740년 ‘사디즘’의 원조 사드 출생

“우리는 꼭 사드를 화형(火刑)시켜야만 할까?”(시몬 드 보부아르)

마르키 드 사드 후작. 스스로의 이름이 ‘사디즘’으로 도착(倒錯)되어 버린 인물.

생애의 3분의 1을 감옥에서 보내고 생의 마지막을 정신병원에서 맞아야 했던 사드. 그는 근대의 ‘저주받은 작가들’ 가운데 최초의 자리에 놓인다.

그의 글은 짐짓 웃음을 지어내다가도 다음 순간 역겹고, 날카로운 사회풍자가 번득이는가 하면 어느덧 외설과 부도덕, 신성모독의 악취로 현기증이 인다.

사드에게 ‘성(性) 후작’의 면류관을 씌워준 이는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였다. “사드는 이전(以前)에 존재하였던 가장 자유로운 정신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멕시코 작가 옥타비오 파스는 연민마저 드러낸다. “사디즘의 철학자는 그 자신이 희생양이었다.”

사드는 작품에서 그렸던 무수한 성행위들을 실제로 체험했다.

‘전날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선 절대 함구할 것!’ 그는 광장에서 구걸하던 여인과 관계를 갖기 전 서약서를 받았다. 그러나 여자는 ‘지옥’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경찰에 달려간다.

1772년 투옥된 이래 그는 앙시앵 레짐과 혁명 공화정, 나폴레옹 치하를 수의(囚衣)를 입고 지켜봤다. 그러나 그의 육신은 가두었으나 그의 욕망까지 가둘 수는 없었으니.

백조깃털로 된 펜은 사슬에 묶여있는 굶주린 영혼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는 ‘분노의 샘물’에 펜을 적시며 광기의 욕정(欲情)을 토해낸다.

“감옥의 절대고독 속에서 극단적인 상상의 순간에 덮쳐오는 끔찍한 진실, 그게 사드의 모럴이다.”(모리스 블랑쇼)

‘악마가 씌었다!’

성도착의 총목록이라고 할 대표작 ‘소돔 120일’은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42명의 남녀가 4개월 동안 600여종류의 성도착행위를 벌이는 동안 ‘사디즘의 고문’에 살아남은 사람은 12명뿐이었다. “관능은 죽음의 고뇌에 빠질수록 심화된다….”

그는 자신의 시신을 아무도 모르는 숲 속 덤불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내 무덤은 사라지고 나에 대한 기억도 영원히 지워질 것이다.”

그러나 숱한 예술가 학자 비평가들이 그가 죽은 뒤 200년이 지나도록 그의 무덤을 배회하며 ‘사드의 정의(定義)’를 고쳐 쓰고 있으니.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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