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시집 1979~1981/『원단기행元旦記行』(1981)

꽃을 보면 우리는 꺾고 싶어라

洪 海 里 2006. 2. 18. 18:27

꽃을 보면 우리는 꺾고 싶어라

 

 

남문 꽃시장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서면

천의 해가 솟고 천의 달이 사라지며

은하의 무수한 별 떼가 명멸하고 있었다

저마다 천의무봉인 바다의 함성과 함께

파란 심장들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버려라 버려라 버려라

순금의 시간도 경악하여 온 세상이 흔들리고

불 타오르는 하늘 아래 끝에서 끝으로

꿈을 잃은 나비의 날개가 찢겨져 날리고 있었다

이제 공간을 채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소리와 눈짓이 사라져 귀를 먹었고

색깔과 형상이 날아가 눈도 멀었고

향기와 관념이 흩어져 코조차 막혀버렸다

화살을 쏜들 어느 심장이 표적이 될 수 있으랴

버려라 버려라 버려라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팔등신의 존재가

이내 불길에 싸였다 재가 되는 허무와

깨어진 꿈의 마른 조각을 안고 통곡하는 수유 사이

파랗게 질려버린 어린 계집애들의 비명이 끊기고

땅 속의 어머니는 움쩍도 하지 않았다

빨강 노랑 보라 초록 --- 그리고 하양으로 꾸민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이미 막이 내리고

끊어진 현악기의 어깨 너머로 죽음을 날라

밖에다 부리는 인부들의 무감각과

얼음장 침묵이 깨어진 유리조각처럼

거리마다 가득가득 무겁게 쌓이고 있었다

버려라 버려라 버려라

만유를 유혹하던 눈빛이 볼 비빌 대지와

초록빛 날개가 비상할 공간을 잃고

백지 한 장이 펼쳐져 있는 거지중천으로

마지막 순간을 지우는 禪問答이 하나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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