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시집 1979~1981/『원단기행元旦記行』(1981)

푸른 하늘 은하수

洪 海 里 2006. 2. 18. 17:40

푸른 하늘 은하수

 

 

여학교 음악실 창을 넘어오는 청결한 음률

'이 몸이 새라면 이 몸이 새라면---'

청아한 빛깔로 가정법과거를 강의하고

있다 삶이란 무엇인가 고통인가 즐거움인가

허무인가 실존인가 누런 벽으로 둘러싸인 사무실

없는 날개 퍼덕이며 퍼덕이며

날며 가까이 있다는 진실과 파랑새를 그려

본다 번개처럼 번뜩이는 상상력 한 개를

위하여 입으로 푸른 하늘을 뱉어내지만 줄줄이

나오는 것은 유리조각 철조망 친구들

이 다 떠나간 광장에 서서 저녁놀에

젖느니 흘러가는 강물 위에 핏빛 고통이

타고 썩은 고름으로 번지는 저녁녘 챠임벨

소리 슬픔을 몇 개씩 짊어지고 돌아가는

등 굽은 사내들 어깨에 쌓이고 무색 독주로

씻은 목구멍엔 허연 갈대꽃이 핀다

요란한 천둥소리 사라지고 저 건너 작은 섬

'이 몸이 새라면 이 몸이 새라면

날아가리' 귓바퀴에 맴도는 여학고 음악실의

소프라노 저녁 하늘에 문법 교과서를 펼쳐

놓고 가정법과거를 강의하고 있다 한국어로

독일어 아니고 영어 아니고 순 우리말로.

 

 

'3인시집 1979~1981 > 『원단기행元旦記行』(198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보라  (0) 2006.02.18
목신들의 합창  (0) 2006.02.18
쏜살이 되어 날아가는 혀  (0) 2006.02.18
눈이 내리면  (0) 2006.02.18
  (0) 2006.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