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은하수
여학교 음악실 창을 넘어오는 청결한 음률
'이 몸이 새라면 이 몸이 새라면---'
청아한 빛깔로 가정법과거를 강의하고
있다 삶이란 무엇인가 고통인가 즐거움인가
허무인가 실존인가 누런 벽으로 둘러싸인 사무실
없는 날개 퍼덕이며 퍼덕이며
날며 가까이 있다는 진실과 파랑새를 그려
본다 번개처럼 번뜩이는 상상력 한 개를
위하여 입으로 푸른 하늘을 뱉어내지만 줄줄이
나오는 것은 유리조각 철조망 친구들
이 다 떠나간 광장에 서서 저녁놀에
젖느니 흘러가는 강물 위에 핏빛 고통이
타고 썩은 고름으로 번지는 저녁녘 챠임벨
소리 슬픔을 몇 개씩 짊어지고 돌아가는
등 굽은 사내들 어깨에 쌓이고 무색 독주로
씻은 목구멍엔 허연 갈대꽃이 핀다
요란한 천둥소리 사라지고 저 건너 작은 섬
'이 몸이 새라면 이 몸이 새라면
날아가리' 귓바퀴에 맴도는 여학고 음악실의
소프라노 저녁 하늘에 문법 교과서를 펼쳐
놓고 가정법과거를 강의하고 있다 한국어로
독일어 아니고 영어 아니고 순 우리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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