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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 海 里 2006. 4. 4. 06:27

[책갈피 속의 오늘]

 

1932년 러 영화감독 타르콥스키 출생

[동아일보 2006-04-04]    

은퇴한 대학교수 알렉산더는 생일 오후 막내아들과 함께 죽은 나무 한 그루를 바닷가에 심는다. 그는 아들에게 먼 옛날 언덕 위의 죽은 나무에 3년간 매일 물을 주어 마침내 그 나무에서 꽃을 피우게 한 수도승과 제자의 일화를 들려준다.

굴러 내려오는 돌을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 했던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처럼,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의 영화 ‘희생’의 주인공은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나무를 살려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모든 영화가 그렇다. 주인공들은 무망함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텅 빈 우주로 몸을 던지며, 완성을 향해 가는 예술가의 꿈을 버리지 못한다. 어쩌면 도달하려는 목표 그 자체보다 도전하고 반복하는 행위 그 자체에 구원이 있다는 듯….

러시아가 낳은 최고의 영상시인으로 꼽히는 타르콥스키는 1932년 4월 4일 볼가 강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시인이자 번역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7년간 음악학교에서 러시아 전통 음악을 배웠다.

1962년 첫 영화 ‘이반의 어린 시절’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그의 영화 작업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예술가의 초상을 그린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상영금지 처분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족쇄가 계속 채워지자 타르콥스키는 1983년 칸 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 수상작인 ‘노스탤지어’를 이탈리아에서 촬영한 뒤 1986년 숨질 때까지 서방 세계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러시아에서도 ‘민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를 만든다’는 비난을 곧잘 받았지만, 그는 ‘영화도 예술인가’와 같은 질문이 제기될 때마다 ‘예술가로서의 감독’의 대표 격으로 손꼽힌 인물이다. 그의 마지막 영화 ‘희생’이 1990년대 중반 한국에서 개봉됐을 때 2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들었던 현상 자체가 예외적인 것으로 회자될 정도였다.

시장과의 타협을 거부했던 고집불통의 ‘영화 예술가’ 타르콥스키는 예술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네가 황제다. 고독하게 살아라. 너의 자유로운 혼이 가고 싶은 대로 너의 자유로운 길을 가라. 너의 소중한 생각의 열매들을 실현하라. 그리고 너의 고귀한 행동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요구하지 마라. 보상은 바로 네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