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봄, 벼락치다』2006

취홍

洪 海 里 2006. 5. 4. 04:41

취홍醉紅

 

洪 海 里



살진 눈발이 하염없이 내리퍼붓는 솔밭
바늘잎 위에 순백의 집 한 채 짓고 싶어
눈발이 눈발을 어루만지며 발맞춰 내리고
서로 쓰다듬으면서 사랑하라 사랑하라고
거칠 것 없이 유유히 내려쌓이는 여유를
보라 눈보라 속의 눈, 눈, 눈, 보라 눈보라
그냥 설레게하는 눈발이 과거로 가는 길목
아름다운 슬픔 하나하나 떼로떼로 막아서고
세월이 세월을 몰고 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
눈은 내리면서 길을 지우고 산도 지운다고
빛나는 소멸을 가르치는 저 玉版宣紙 하늘
그래서 눈발은 내리고 하릴없이 퍼붓는가.


 

- 시집『봄, 벼락치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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