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봄, 벼락치다』2006

점심에 대하여

洪 海 里 2006. 5. 4. 04:38

점심點心에 대하여

 

洪 海 里



점심은 한가운데 점을 보는 것이다
오늘 점심은 마음에 까만 점을 놓는다
아니, 가슴에 불을 켠다
배꼽은 텅 빈 바다에 둥둥 떠 돌고 있다
오늘 점심은 2500원짜리 자장면으로 때운다
매끄러운 면발의 먼 길을 들고 나면
전신으로 졸음이 솔솔 불어온다
자장자장 자장가도 흘러든다
금방 그릇 가득 희망과 절망이 출렁인다
2,500원이면 퇴계 선생 두 분과
은빛 하늘을 날아가는 학이 한 마리
자장면을 비울 때는
자장면이 아니라 짜장면이라고 해야 짜장,
맛이 더 나는지 알 수가 없다
나와 나 사이의 틈새를 날릴 소주 한잔 속에
가벼운 봄날을 새 한 마리 졸고 있다
도포를 입으면 도포짜리
삿갓을 쓰면 삿갓짜리가 되지만
도포도 없고 삿갓도 없어
봄날이 짜릿짜릿하다
슬픔의 힘은 아름답고 점심은 즐겁다
퇴계 두 분과 한 마리 학을
까만 자장면과 바꾸는 일은 위대한 거래다
눈을 감으면
세 마리 학이 나른나른 날고 있다.

(시집『봄, 벼락치다』2006)

'시집『봄, 벼락치다』2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꽃여자 8  (0) 2006.05.04
꽃다지꽃  (0) 2006.05.04
학을 품다  (0) 2006.05.04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0) 2006.05.04
<시>조팝꽃  (0) 2006.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