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묵상默想 기우는 해 으스름에 고갤 숙이고 두 눈을 감으면 놀빛에 타는 물빛 고요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꿈보다 깊은 생각의 깊이와 무게 바람 찬 창가에 불을 밝히고 난로 위에 끓는 물소리 귀를 기울이면 잠이 먼 밤 비인 겨울의 들판으로 달려오는 불빛같은 지순한 말씀. -3인시집『바다에 뜨는 .. 3인시집 1979~1981/『바다에 뜨는 해』(1980) 2010.01.31
봄빛 봄빛 눈뜨면 백운대를 감싸고 도는 풍성한 햇살과 바람 아침마다 새로이 만난다 겨울의 어두운 허물을 벗은 저 신선한 바위벼랑의 소나무 창문에 모여드는 풋풋한 기운 난초잎마다 청산이 찰찰 넘친다 어쩔까 어쩔까 땅기운으로 하늘기운으로 꽃대궁은 수멀대며 일어서는데 눈병 날 일이다 제멋대로.. 3인시집 1979~1981/『바다에 뜨는 해』(1980) 2010.01.31
너에게 너에게 머얼리 깜빡이는 불빛 하나로 잠없는 깊은 밤을 홀로 깨어서 비인 뜰을 서성이다가 꿈속의 젖은 길을 울고 가는 아픈 가슴의 흐느낌소리 구름같고 바람같은 우리의 인연 허공에 떨어지는 종소리같이 새벽녘 물소리같이 언듯언듯 귀에 차오는 너의 목소리. -3인시집『바다에 뜨는 해』(1980) 3인시집 1979~1981/『바다에 뜨는 해』(1980) 2010.01.31
꿈속의 꿈 꿈속의 꿈 밤마다 꿈속에서 나는 무엇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적막한 영가를 날리는 가을의 숲 아픈 별리의 손짓만이 쓸쓸한 노래와 함께 떨어지고 온몸을 드러내고 전신으로 울며 사랑스럽고 아름답던 몸부림을 삭이고 있을 때 안으로만 설레던 속약의 바다에서 목마른 자들이 나와 겨우내 갈구의 샘.. 3인시집 1979~1981/『바다에 뜨는 해』(1980) 2010.01.31
아내 아내 洪 海 里 비인 가슴에 이는 바람을 어이할거나 어이할거나 머언 불빛 아슴한 들판을 닫고 있던 나의 열병 바람속을 날던 새 떼도 저들 잘 곳으로 날아간 후 쓸쓸한 허공을 나지막히 비상하던 날개 여린 새 한 마리 내 가슴에 와 깃을 치고 있느니. - 3인시집『바다에 뜨는 해』(1980) 3인시집 1979~1981/『바다에 뜨는 해』(1980) 2010.01.31
천도 천도天桃 이슬 비치는 저녁 하늘 볼 볼그라니 부끄러운 속살의 연기 사기그릇 위의 과도 그 서늘한 빛남 정갈한 손 너를 잡으면 물이 돋는 서편 하늘 놀이 익는다. - 『바다에 뜨는 해』(1980) 3인시집 1979~1981/『바다에 뜨는 해』(1980) 2010.01.31
여름 방학 여름 방학 여름 하늘 쪽바다엔 달리는 아이들의 맨발소리 멀리서 우는 갈매기 떼 가슴벼랑에 조을고 그을음 없이 타는 황금불덩이 속의 백사장 몰려왔다 몰려가는 아이들 무리 가장 고운 보랏빛. - 3인시집『바다에 뜨는 해』(1980) 3인시집 1979~1981/『바다에 뜨는 해』(1980) 2010.01.31
의식의 바다 의식意識의 바다 洪 海 里 눈만 감은 잠속에서 의식은 밤새껏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어둠의 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둥두럿이 벙근 달은 밝아 휘영청 하늘은 넓고 넓었다 바다의 순은빛 올을 켜며 노래하는 어둠자락 춤추는 처용의 가랑이 사이 뒹굴고 있는 고전의 숨결. -『바다에 뜨.. 3인시집 1979~1981/『바다에 뜨는 해』(1980) 2010.01.31
홍매 홍매紅梅 눈먼 잠속에서 눈떠오는 빛의 확산 곱더라 그 파닥이는 사지의 황금빛 율동 출렁이는 파도의 귀를 간질이는 사랑의 울음 혓바닥을 가르고 내닫는 숨결의 가벼운 날개 별은 초롱히 젖어 고운 빛가루를 부린다 분홍빛 입술 위에 떨어지는 천사의 눈썹 반달을 타고 앉아 오르는 겨울 열기. - 3인.. 3인시집 1979~1981/『바다에 뜨는 해』(1980) 2010.01.31
자운영 자운영紫雲英 아지랑이 아질아질 타는 한나절 산기슭을 허무는 꿩 울음소리 너를 기억하기 위해 길을 떠나면 연초록 산빛이 짙어가고 가슴으로 트이는 솔바람소리. - 3인시집『바다에 뜨는 해』(1980) 3인시집 1979~1981/『바다에 뜨는 해』(1980) 2010.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