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니카 3

어린아이-치매행·4 / 경상매일신문, 2020.08.18.

어린아이-치매행·4 /홍해리 경상매일신문 기자 / gsm333@hanmail.net입력 : 2020년 08월 18일 어린아이 - 치매행致昧行 · 4 洪 海 里 아내는 어린애가 되었습니다 내가 밖에 나갈라치면 어느새 먼저 문밖에 나가 있습니다 억지로 떼어놓고 외출을 하면 왜 안 와? 언제 와? 늘 똑같은 두 마디 전화기 안에서 계속 울고 있습니다 내가 자기를 낳은 어미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닌데 한평생 살 비벼 새끼 낳고 기른 죄 많은 지아비라서 나는 나이 든 아기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내 사랑하는 아가는 내게 매달려 한마디 말은 없지만 그냥, 그냥, 말문을 닫고 웃기만 합니다. 어린아이가 된 아내의 이야기. 아직은 젊은 아내가 치매라는 병에 걸렸다.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왜 하필 이..

처음이라는 말 / 경상매일신문, 2021.10.20.

처음이라는 말/ 홍해리 경상매일신문 기자 / gsm333@hanmail.net입력 : 2021년 10월 20일 처음이라는 말 洪 海 里 '처음'이라는 말이 얼마나 정겨우냐 '첫'자만 들어도 가슴 설레지 않느냐 첫 만남도 그렇고 풋사랑의 첫 키스는 또 어떠냐 사랑도 첫사랑이지 첫날밤, 첫새벽, 첫정, 첫걸음, 첫나들이 나는 너에게 마지막 남자 너는 너에게 첫 여자이고 싶지 첫차를 타고 떠나라 막차가 끊기면 막막하지 않더냐 "처음 뵙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살 수는 없을까 하늘 아래 새것은 없다지만 세상은 새롭지 않은 것 하나 없지 찰나가 영원이듯 생은 울음으로 시작해서 침묵으로 끝나는 물로 시작해서 불로 끝나는 홀로 왔다 홀로 가는 긴 여로 처음이란 말이 얼마나 좋으냐 ‘하늘 아래 새것은 없다지만 ..

산책 / 박모니카(수필가), 2021.10.09. 경상매일신문

산책 洪 海 里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 동음이의어同音異意語로 이렇게 멋진 시가 탄생한다. 산책散策은 천천히 걸으며 휴식을 취하는 일인데 그 일이 곧 살아 있는 책冊이 되어 무언가를 배우는 학습장이 된다. 자연自然은 우리들의 배움터다. 그 배움터에 살아 있는 책冊(산 책)으로 본 것이다. 사유의 깊이가 바탕이 된 시를 읽으며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간다. 우리들이 흔히 잡초라고 보는 황새냉이, 털별꽃아재비, 그령, 방동사니와 같은 풀들에게서 그들의 질긴 생명럭을 배운다.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