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산책 / 박모니카(수필가), 2021.10.09. 경상매일신문

洪 海 里 2021. 11. 16. 07:51

산책

 

洪 海 里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 동음이의어同音異意語로 이렇게 멋진 시가 탄생한다. 산책散策은 천천히 걸으며 휴식을 취하는 일인데 그 일이 곧 살아 있는 책冊이 되어 무언가를 배우는 학습장이 된다. 자연自然은 우리들의 배움터다. 그 배움터에 살아 있는 책冊(산 책)으로 본 것이다. 사유의 깊이가 바탕이 된 시를 읽으며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간다.

 

우리들이 흔히 잡초라고 보는 황새냉이, 털별꽃아재비, 그령, 방동사니와 같은 풀들에게서 그들의 질긴 생명럭을 배운다. 방동사니는 뿌리에 향이 있으며 한약재로 재배되어 향부자香附子로 쓰이는 유익한 풀이다. 풀들이 사는 방식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신기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들의 삶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은 어떤 경우의 수에서도 근성을 발휘한다. 그들은 짓밟히면 밟힐수록 숙여 주는 척, 원 걸~더 번성한다.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려 그들은 타인의 눈에 잘 보이려는 자존심을 버리고 비교하지 않는 나만의 자존감을 선택한다. 굽히는 듯 다시 일어서고 쓰러진 듯 또 일어난다. 칠전팔기七顚八起? 아니 팔전구기八顚九起다. 그들의 끈기를 어찌 이겨낼 수 있을까.

 

그들뿐일까. 새들의 지저귐 소리, 흘러가는 구름,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며 나무들의 인간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말없는 배려 속에 우리들이 안겨 있음을 늘 기억할 일이다. 고마움을 잊지 말 일이다. 산책은 그래서 산~책인 것을 … 시인의 “자연경自然經”을 다시 생각해 보는 아침, 산책을 읽으며 나도 서서히 산책을 서두른다

- 박모니카(수필가) <2021.10.09. 경상매일신문>

 

 

* 白虎山 : 김병래 시인 페북에서 옮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