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어린아이-치매행·4 / 경상매일신문, 2020.08.18.

洪 海 里 2021. 12. 20. 09:29

<詩境의 아침>

 

어린아이-치매행·4 /홍해리


경상매일신문 기자 / gsm333@hanmail.net
입력 : 2020년 08월 18일

 

 


어린아이
- 치매행致昧行 · 4

洪 海 里



아내는 어린애가 되었습니다
내가 밖에 나갈라치면
어느새 먼저 문밖에 나가 있습니다
억지로 떼어놓고 외출을 하면
왜 안 와?
언제 와?
늘 똑같은 두 마디
전화기 안에서 계속 울고 있습니다

내가 자기를 낳은 어미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닌데
한평생 살 비벼 새끼 낳고 기른
죄 많은 지아비라서
나는 나이 든 아기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내 사랑하는 아가는
내게 매달려 한마디 말은 없지만
그냥, 그냥, 말문을 닫고 웃기만 합니다.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어린아이가 된 아내의 이야기. 아직은 젊은 아내가 치매라는 병에 걸렸다.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왜 하필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을까. 시인은 무던히도 가슴을 쳤을 것이다. 아내를 쳐다볼 때마다 초롱초롱하던 사람이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는지 절로 나오는 한숨에 아마 땅이 패이듯 가슴 속이 움푹 패이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이 시를 읽어보면 철없는 어린아이가 자기를 이뻐해 주는 아빠에게 빨리 오라고 조르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락없는 귀여운 어린아이의 말투와 행동이여서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아빠가 안 온다고 울고 있는 아이, 전화를 해보면 여전히 안온다고 더 우는 아이, 투정이라고 하기에는 아빠가 너무 좋은 아이가 아빠 보고 싶은 마음을 울음으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의 아버지가 되어버린 남편이 말은 없지만 마냥 매달려있는 귀염둥이 아내를 토닥거려주고 있는 모습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아내는 말과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남편은 아내의 언어를 찾아 나서는 마음 여행에 들어 간 것이다. 말을 할 수 없다고 말이 통하지 않는 건 아니다. 마음을 읽고 마음이 통하는 새로운 대화법을 터득한 시인의 눈에 아내는 순수한 어린아이다. 세상의 어지러운 것은 다 잊은, 맑은 물만 표면에 있는 영혼과 마주하며 시인은 그의 맑아진 시어도 찰랑이는 것을 안다.
아내의 치매는 폭포처럼 시인의 가정을 덮쳤지만 그 물이 떨어진 곳에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아름다운 폭포소가 생긴 것. 그들만의 몸과 마음을 담글 수 있는 깊고 맑은 터, 그 곳에서 맨 몸으로 헤엄치고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그래… 사랑… 아프거나 더 아프거나 그것은 진정 짐작할 수도, 헤아릴 수 없는 모습으로 다가 온다.

- 수필가 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