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환 7

어버이날

어버이날 洪 海 里  줄줄이 늘어지게 매달린 아들 넷딸 넷여덟 자식들. 생전에아버지 어머니 얼마나 무거우셨을까등나무 꽃을 달면 눈물이 난다.- 시집『독종』(2012, 북인)                                                                    思母曲               서리에 스러진 갈대꽃을 보노라니 눈물이 옷깃을 적신다사립문에 기대 선 백발 어머니를 더 이상 뵈올 수 없게 되다니작년 오월 장맛비가 한창이던 때였지가사(袈裟)를 전당 잡히고 쌀팔아 집에 돌아왔었는데.  霜殞蘆花淚濕衣, 白頭無復倚柴扉. 去年五月黃梅雨, 曾典袈裟糴米歸.―‘어머니를 그리며(사모·思母)’ 여공(與恭·송대 말엽)  서리 맞아 황량한 갈대숲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여읜 한 승려가 눈..

황태의 꿈

* 박성환 님의 글씨(2023.12.23. 페북에서 옮김). 황태의 꿈 洪 海 里 아가리를 꿰어 무지막지하게 매달린 채 외로운 꿈을 꾸는 명태다, 나는 눈을 맞고 얼어 밤을 지새우고 낮이면 칼바람에 몸을 말리며 상덕 하덕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만선의 꿈 지나온 긴긴 세월의 바닷길 출렁이는 파도로 행복했었나니 부디 쫄태는 되지 말리라 피도 눈물도 씻어버렸다 갈 길은 꿈에서도 보이지 않는 오늘밤도 북풍은 거세게 불어쳐 몸뚱어리는 꽁꽁 얼어야 한다 해가 뜨면 눈을 뒤집어쓰고 밤을 지새운 나의 꿈 갈가리 찢어져 날아가리라 말라가는 몸속에서 난바다 먼 파돗소리 한 켜 한 켜 사라지고 오늘도 찬 하늘 눈물 하나 반짝인다 바람 찰수록 정신 더욱 맑아지고 얼었다 녹았다 부드럽게 익어가리니 향기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 ..

망망茫茫 - 나의 詩

망망茫茫 - 나의 詩 洪 海 里 널 관통하는 총알이 아니라 네 가슴 한복판에 꽂혀 한평생 푸르르르 떠는 금빛 화살이고 싶다 나의 詩는. - 시집『독종』(2012, 북인) '망망茫茫'이란 넓고 멀어 아득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바로 茫茫大海라 하지 않던가 요즘 시에 대한 내 마음과 생각이 그렇다 아득히 넓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는 듯하다 차라리 忙忙했으면 좋으련만~~~ 지난해 쓴 글을 다시 읽어 보는 것은 나를 망망대해에서 시의 가슴 한복판으로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의 詩'란 부제를 새로 붙였다 금빛 화살로 망망의 한복판을 꿰뚫고 싶다 2011. 01. 07. - 隱山. ======================= * 詩란 무엇인가? 시는 대상/사물에 대한 사랑이다. 시는 자연/우주의 비밀을 찾아..

꿈꾸는 아이들

* 2012. 5. 5. 동아일보 주말 섹션에 게재된 손녀 서현.  꿈꾸는 아이들洪 海 里꿈속에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모두 투명한 날개가 달려 있어별에서 별로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아이들마다 눈에 별을 담아 반짝이고 아직 오지 않은 먼 내일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귀는 꽃처럼 생겨 있었습니다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풀과 새들이 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름다운 시였습니다새들과 함께 꽃 속으로 들어가 놀고 있었습니다가슴에서 맑은 샘물이 솟고 있었습니다.향기로운 말을 쏟아내는 아이들 모두 시인이었습니다한평생 시를 쓴다는 내가 부끄러웠습니다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했습니다푸른 풀밭으로 굴렁쇠를 몰고 달리는 아이들손끝에서 지구가 뱅글뱅글 돌고 있었습니다비가 그친 풀밭에 쌍무지개가 피..

왜 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 - 찔레꽃

왜 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 찔레꽃 洪 海 里 너를 보면 왜 눈부터 아픈 것이냐흰 면사포 쓰고고백성사하고 있는청상과부 어머니, 까막과부 누이윤이월 지나춘삼월 보름이라고소쩍새도 투명하게 밤을 밝히는데왜 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 그 향기에, 빛깔에, 환심장할 겨를도 없이 어느새 찔레꽃의 계절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늦은 봄 들녘 여기저기 지천으로 피는 찔레꽃, 가시는 왜 또 그리 날카롭고 많았던지 땔감으로 쓸 엄두도 못 냈고, 그래서 봄마다 더 무성히 들녘을 수놓곤 했었지요. 아마 지금쯤은 흰 꽃잎도 노란 꽃술도 장맛비에 다 이울고 겨울날 새들을 위해 열매들 살찌우고 있겠지요.  그 찔레꽃이 한때 저..

<시> 그 사람 이름이 뭐더라!

그 사람 이름이 뭐더라! 洪 海 里  휴대전화를 냉장고 안에 넣어 놓고 줄곧 찾는다는 여자 버스 타고 나서 놓고 온 지갑을 찾는 사내이야기를 듣긴 했지만,무릎 뒷쪽은 오금 또는 뒷무릎팔꿈치 안쪽은 팔오금이라 하는데어깨 안쪽 털이 난 곳을 뭐라 하지'겨드랑이'가 어딜 가 숨어 있는지사흘 낮 사흘 밤을 쥐어짰는데다음 날 또 잊어버렸다조금 전 그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손에 든 물건의 명칭도 떠오르지 않는다어제 함께 술 마신 친구도 누군지 모르겠다방금 들은 것도 금방 잊어버리고한 말 할 말도 기억나지 않는다시끄러운 세상이 싫어서일까조용히 살고 싶어서일까한적한 시골에 배꼽마당이라도 마련하고마음껏 거닐며 놀아나 볼까, 그런데그곳이 어디인지 생각나지 않는다오래된 나의 오늘이 깜깜하기 그지없다. - 시집『독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