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교선 8

임교선 시인의 페북

Note ㅡㅡㅡㅡㅡㅡㅡ 여행 말미에 책소개 한번 해본다. 누구나 여행을 하면 배낭에 책 한 권은 꽂아두고 다니는데 나는 홍해리의 를 동경 5일, 뉴욕 10일, 보름간 벼락 맞을 이 봄날에 지니고 다녔다. 여행 중 차를 마시거나 잠에 들기 전 몇 줄 시에 노독을 풀고 외로움도 달랜다. 그 뉘의 처녀치마 안에 든 것처럼 시는 안온하고 달콤하다. 의 시를 읽으면 시 안으로 한없이 빠져들어 내 안의 실핏줄은 시류의 강이 흐른다. 먼 여행지의 고삐 풀린 망아지는 시의 치마자락 안에서 달콤한 꿈에 든다. 박하사탕 같은 달콤한 시들, 여행지에서는 딱이다. 벼락맞을 봄이다. - 『봄, 벼락치다』 (2006, 도서출판 우리글). 2018. 4. 30. - 임교선 시인의 페북에서 옮김.

해당화

해당화   洪 海 里      그해 여름 산사에서 만난 쬐끄마한 계집애귓불까지 빠알갛게 물든 계집애절집 해우소 지붕 아래로해는 뉘엿 떨어지고헐떡이는 곡두만 어른거렸지저녁바람이조용한 절마당을 쓸고 있을 때발갛게 물든 풍경소리파·르·르·파·르·르 흩어지고 있었지진흙 세상 속으로 환속하고 있었지. - 시집『투명한 슬픔』(1996)    * 사랑은 어쩌면 음악일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시 속으로 흐르는 음악. 우주 만물의 지음과 돌아섬은 물결에 따라 이루어지는 소리의 향연. 그 소리의 향을 따라가다 보면 해당화는 분명 쬐끄마한 계집애다. 단 한 번도 해당화를 실물로 대하진 못했지만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해당화가 눈 안에 선연하다. 색은 발갛고 꽃잎은 얇아서 “파·르·르 파·르·르” 흩어지는 바람을 닮았겠다..

보리밭

보리밭 洪 海 里 1 대지모신大地母神의 품 안 토양산성土壤酸性의 이랑마다 늦가을 햇살만 기운 채 빗기고 있었다 가랑잎을 갉아 먹으며 산자락을 휘돌아 온 앙상한 뼈바람이 풋풋한 흙 속의 한 알 보리를 흔들어 잠을 깨우고 있었다 다섯 뿌리 하얀 종자근이 발을 뻗어내리는 속도따라 햇살은 점점 기울어져 조금씩 모신母神의 품으로 내리고 있었다 2 두견새 목청 트이는 동지 섣달 칠흑빛 어둠을 뚫고 겨울을 털어내리는 하얀 눈은 내려 쌓이고, 깃털, 꽃머리, 비늘잎도 모두 밑둥마디에 묻어두고 한 치 땅 속에서 언 발을 호호 부는 소리 아직은 잠결, 유년 시절 고호의 손가락 같은 하얀 이파리들 골로만 모여 쌓여 있는 바람의 넋을 불러내어, 들뜨는 팔다리를 눌러 앉히며 미루나무 물 오를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3 손톱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