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 3

손톱깎기

손톱 깎기- 치매행致梅行 · 5 洪 海 里  맑고 조용한 겨울날 오후따스한 양지쪽에 나와 손톱을 깎습니다슬며시 다가온 아내가 손을 내밉니다손톱을 깎아 달라는 말은 못하고그냥 손을 내밀고 물끄러미 바라봅니다겨우내 내 손톱만 열심히 잘라냈지아내의 손을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손곱도 없는데 휴지로 닦아내고 내민가녀린 손가락마다손톱이 제법 자랐습니다손톱깎이의 날카로운 양날이 내는 금속성똑, 똑! 소리와 함께 손톱이 잘려나갑니다함께 산 지 마흔다섯 해처음으로,아내의 손을 잡고 손톱을 잘라 줍니다파르르 떠는 여린 손가락씀벅씀벅,눈시울이 자꾸만 뜨거워집니다. - 시집『치매행致梅行』(2015, 황금마루) ◇ 시 해설금혼식을 하는 시인이 마흔다섯 해를 함께 한 시점에 아내에 대한 시를 쓴 것이다. 손톱을 깎는 작은 일이지..

귀가 지쳤다 / 뉴스 경남 2024.07.01.

뉴스 경남조승래 시인의 시통공간(詩通空間) 127 - 홍해리기자명 김효빈 기자  입력 2024.07.01.귀가 지쳤다홍 해 리  들을 소리안 들을 소리대책없이 줄창 듣기만 했다 늘 문이 열려 있어온갖 잡소리가 다 들어오니그럴 만도 하지 대문을 걸어 잠글 수 없으니칭찬 아첨 욕지거리 비난 보이스피싱까지수시로 괴롭히니 귀가 지쳤다 하루도 쉴 새 없이한평생 열어 놓고 줄곧 당한 귀의 노동이제 귀가 운다.- 월간 《우리詩》 1987 창간, 2024. 04, 430호 ◇ 시 해설감각을 받아들이는 눈은 뜰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어서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지만 귀는 늘 열려있어서 무의식 상태가 아니면 소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시인은 ‘들을 소리 안 들을 소리’를 줄창 듣기만하는 귀의 수동적 한계성을 말..

귀가 지쳤다

귀가 지쳤다洪 海 里  들을 소리안 들을 소리까지대책없이 줄창 듣기만 했다 늘 문이 열려 있어온갖 잡소리가 다 들어오니그럴 만도 하지 대문을 걸어 잠글 수 없으니칭찬 아첨 욕지거리 비난 보이스피싱까지수시로 괴롭히니 귀가 지쳤다 하루 한시도 쉴 새 없이한평생 열어 놓고 줄곧 당한 귀의 노동이제 귀가 운다.- 월간 《우리詩》 2024. 4월호. ◇ 시 해설감각을 받아들이는 눈은 뜰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어서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지만 귀는 늘 열려 있어서 무의식 상태가 아니면 소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시인은 ‘들을 소리 안 들을 소리’를 줄창 듣기만하는 귀의 수동적 한계성을 말한다. 안 들을 소리를 듣고서 이물질 같아서 귀를 흐르는 물에 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늘 문이 열려 있어 온갖 잡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