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황금감옥』2008

추금

洪 海 里 2008. 4. 29. 11:56

추금秋琴

洪 海 里

 

 


가을 저녁,
풀과 벌레들이 한데 어울려
스스로 하나의 악기가 됩니다

벌레들은 풀잎처럼 소리를 푸르게 세우고
풀잎은 벌레소리에 맞춰 피리를 불어
풀벌레소리를 엮으면
싸목싸목 들르던 초저녁 어스름 여린 달빛
백중사리로 한밤의 문턱을 넘어옵니다

팽팽한 줄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깊어
소리로 한 채의 집을 지우고 다시 세우는
저들의 애면글면하는 울력으로,
어두운 밤이 환해지다 다시 어두워지고
또 화안해지고,
반생을 살고 있는 변두리
저들이 나를 호려 벼리고 벼리니
내 귀가 천 개로 활짝 열립니다

문득, 야심토록 홀로 앉아
실을 잣는 어머니의 은빛 물레질 소리
일필휘지 초서체 가는 가락으로 흐릅니다
풀잎은 몸을 비우고 벌레는 혼을 비우고
초근초근 자신을 연주하는
저 당당하고 능숙한 솜씨
풀소리 벌레소리 꽃으로 피는 밤이면
밤새도록 나의 누항
陋巷이 꽃처럼 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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