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 시인들> 제13집 『구름 한 점 떼어 주고』
시작 노트
1500년 전에 김시습(金時習)이 북한산에서 한 3년 살았다는데,
그때 얼마만큼의 시를 썼는지 알 순 없지만 우리들(채희문·임보·홍
해리)은 20년을 넘게 북한산을 오르내리며 시를 쓰고 있다. 이렇게
든든한 배경 때문에 우리는 왠만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을
고맙게 여긴다. 내 집 가까이에 북한산이 있고, 그 주위에 시우(詩
友)가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가.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시를 쓰게 된
다.
- 이생진
나이들수록 매사에 힘드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늙어가는
탓도 있겠지만, 이제야 겨우 눈이 트이고 귀가 열려 조금씩 더 깊은
지각(知覺)을 갖게 되는 까닭이 아닐까. 세상은 알면 알수록 어려운
법. 시작(詩作)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럴수록 나는 1회용, 또는 일과
성(一過性) 제품보다는 조금이라도 오래 남을 만한 것을 생산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번 13집의 것들 역시 몇 수나 몇 사람의 가슴에 남아 머
뭇거리다 스러져 버릴지---.
- 채희문
나는 식물성이다. 순식물성이다. 나의 시도 식물성이다. 불이요
나무다. 이번 작품도 자연과 주변의 인사로 꾸며졌다. 나는 자연에
서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나고 싶지도 않다. 자연 속에 조화되어 자
연스레 살며 자연의 시를 쓰고 싶을 뿐이다. 자연의 자연시 --- 그
러리라.
- 洪海里
지난해부터 <仙詩> 연작에 들어갔다. 仙境은 우리 선인들이 꿈꾸
었던 유토피아의 세계다. 그런 곳이 있다면 어떤 세상일까 내 나름
대로 상상해 보면서 그 꿈속에 젖어 요즘 살고 있다.
한 50여 편 만들어 어느 잡지에 이미 몇십 편 선을 보였는데 아직
별 반응이 없다. 너무 황당한 얘기라서 그런 건가? 아무튼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란다. 맨앞의 <비둘기> 외 다섯 작품이다.
다음은 지난호에 이어 <四短詩> 몇 수, 그리고 <說話詩> 몇 편을
맨끝에 달았다. 작품을 내놓는다는 것이 갈수록 더욱 부끄러워만진
다.
- 林 步
(『구름 한 점 떼어 주고』199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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