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詩人들』1987~1999

<우이동 시인들> 제13집 '북한산 우이동의 봄을 위하여' / 洪海里

洪 海 里 2008. 7. 6. 14:57

<우이동 시인들> 제13집『구름 한 점 떼어 주고

 

북한산 우이동의 봄을 위하여

 

                                                - 洪 海 里

 

   화실은 화가의 혼이 뛰노는 작업장이고 그 혼이 표현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장이다. <우이동 화실>에 드나드는 화가들은

이곳을 <우이동 시인학교>라고 부르고 있다. 화가들만큼이나 많

은 시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들어 그림을 감상하고 문학과 인

생을 소주잔에 띄우기 때문이다.

   시와 그림이 다를 바가 무엇인가? 단지 표현 매체가 시의 언어

와 그림의 색과 선의 차이뿐이지 않는가.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

림 속에 시가 있다 시가 그림이요 그림이 시이다. 언어로 그리는

그림과 색과 선으로 쓰는 시가 있을 뿐이다.

 

   제54회 <우이동 시낭송회>는 동인지 우이동 12집『산에서 길

을 묻다』의 출판 기념 겸 송년회로 지난 12월 마지막 토요일 도

봉도서관에서 열렸다.

   매번 낭송회 준비와 뒷정리로 애쓰고 있는 도서관의 서순 씨에

대한 감사의 박수로 시작된 이날 낭송회는 연말의 아쉬움과 흥분

으로 들뜬 가운데 이생진, 박희진, 김동호, 채희문, 임보, 정성수,

오수일 시인들의 시낭송과 이야기, 그리고 송성묵 회원의 대금 연

주와 윤문기 회원의 단소가락으로 두 시간 동안 풍성하게 이어졌

다.

   모임을 마치고 <우이동 화실>에서 벌인 뒤풀이는 오수일 시인

댁에서 담근 동동주 한 동이와 안주, 오 시인의 원앙 같은 부인과

꾀꼬리 같은 딸 은지 양의 정성어린 접대로 흥이 하늘에 닿았다.

감사한 마음 표현할 길이 없다.

 

   제55회 시낭송회는 이무원 시인이 지은 시를 직접 두루마리로

만들어 온 작품 낭송으로 시작되었다. 시낭송이 계속되는 동안 우

이동 시인들은 백운대와 인수봉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선경에 노

니는 두 시간을 꿈 속에 살았다.

   항상 말이 없이 바위같은 이 시인에게 우리 모두 고마움을 전하

며, 앞으로 더욱 좋은 작품으로 우이동을 빛낼 것을 다짐한다. 이

날 낭송한 「우이동」을 여기 실어 다시 한번 감상하고자 한다.

 

우이동

 

우이동에는 백운대보다 키가 큰 사람들이 넷이나 산다

이들 네 분 만나기만 하면

우이동 세이천(洗耳泉)까지 갈 것 없다

 

한겨울에도

우이동 뻐꾸기 소리 들리고

우이동 진달래 꽃도 피어나고

우이동 솔바람도 어우러진다

 

해마다 파란 섬소리 풀어 놓아서 일까

밤새워 드리는 기도 때문일까

동자(童子)와 나누는 선문답(禪問答) 때문일까

난초 향기 가슴 가득 스며서일까

 

이생진

채희문

임 보

홍해리

 

그들의 눈은 하늘에 있고

그들의 귀는 땅 속에 있다.

 

   한편 이날 시낭송회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성염 교수 부

자의 2인 시낭송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시 속에 등장하는 멜리보

이우스와 티티루스의 역을 부자간에 맡아서 들려준 <티티루스의

노래> --- 그리고나서 성 교수가 원어로 들려준 시는 뜻은 몰라도

시낭송은 만국어로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우이동 시낭송회

 

매달 마지막 토요일

우이동 골짜기

서기 영롱하고

피리 소리 아득하여

한 곳을 바라보니

속(俗)때 벗은 몇 사람

구름밭에 앉아서

주거니 받거니 시(詩) 사랑하네.

 

물 한 모금 마시고 진달래꽃 피우니

손끝마다 청산인가

눈길마다 물소린가

바람 속에 흔들려도 오히려

나부끼는 옷자락

나비 되어 오르니

꿈꾸는 莊子風으로 시사랑하네.

 

   위의 작품은 3월의 시낭송회에서 오수일 시인이 준비하여 낭송

한 작품으로 <우이동 시낭송회>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이 작

품에 대한 고마음을 전하며『우이동』13집의 편집후기를 적는다.

 

   올해도 북한산 산신제를 <북한산시화제>란 명칭으로 4월 11일

에 올렸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전날에는 비바람 눈보라로 걱정을

했지만 막상 당일에는 비에 씻긴 진달래 꽃빛이 한층 신선하기만

했다. <우이동 시낭송회>에 고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박희진,

이생진, 김동호, 임보, 채희문, 정성수, 오수일, 한영옥, 구순희

시인과 서강대 성염 교수 부부, 명지대 이용남 교수, 한양대 윤

석산 시인, 고려대 조광 교수, 한학자 오세용 선생, 박흥순 화백

등 서른 다섯 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금 연주자인 송성묵 회원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만 들려주는 대금연주로 시화제는 시작

되었다.

   만개한 진달래 꽃덤불 속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시화제의 취지

를 성염 교수가 설명한 후 이생진 시인의 분향, 임보 시인의 독축,

박희진 시인의 <북한산 진달래> 낭송, 송성묵 회원의 대금 연주

를 천지신명께 바친 후 참가자들의 헌작과 재배의 순서로 이어졌

다.

   시화제를 마친 후 음복을 하는 과정에서의 시낭송은 참가한 이

들을 숙연한 마음으로 자연에 귀의케 해주었다. 더구나 산에서 내

려오다 들린 고 이양하 선생댁의 널따란 잔디밭 뜰에서의 노래와

춤은 다시 한번 시화제의 뜻을 되새기게 해주었고 서로의 우정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후기를 빌어 이번 시화제에 참가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

씀을 올리며, 해마다 진달래꽃이 이 강산을 불붙게 할 때면 <북한

산 시화제>를 올릴 것을 다짐해 본다.

                                            - 계유년 윤삼월 초하룻날에

 

-『구름 한 점 떼어 주고 』(1993. 작가정신. 값 2,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