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詩人들』1987~1999

<우이동 시인들> 제13집 나의 시 나의 생각 / 이생진

洪 海 里 2008. 7. 6. 13:21

<우이동 시인들> 제13집『구름 한 점 떼어 주고』

 

<우이동 소리>

 

나의 시 나의 생각

 

                                                   李 生 珍

 

   1

     나는 자생(自生)하는 쪽이다. 고사(枯死)한 나무가 쓰러지고

그 위에 검은 버섯이 솟고, 솟은 버섯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나의

시도 그렇게 생겨서 그렇게 사라진다. 어쩌면 부스럼처럼 생겼다

부스럼처럼 없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참 가려울 때 득득 긁어

서 불꽃처럼 솟아나던 부스럼이 어느날 나도 모르게 사라진다.

내 시작은 그런 반복이다.

   근래에 와셔 시의 하우스 재배가 부쩍 늘었다는데, 온도와 습도

를 조절해 주고 적당한 광열에 적당한 공기, 그리고 적당한 영양

을 줘서 자라게 하는 시, 그런 좋은 재배법을 왜 나는 외면하는 것

일까. 나의 시는 너무 토박한 데서 영양없이 자라는 것 같아 안타

깝다. 그러나 하는 수 없다. 그도 내 꼴을 닮는 수밖에 없으니까.

 

   2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잘못이다. 시는 그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이니까. 자생이든 인공재배든 탓할 일이 아니다. 시의 원산지

가 어디든 나는 자생쪽이요 또 그쪽에 기대고 싶다는 이야기다.

   나는 곧잘 갯바위에 앉아 돌미역이나 우뭇가사리를 뜯어 씹어

보는 버릇이 있다. 짭짤한 맛이 마치 바다를 씹는 것 같아서 좋다.

시도 그렇다. 산길을 가다가 야생화를 만지는 기분, 나의 시는 그

런 곳에 그렇게 있다. 눈으로 보는 시, 그것은 역시 자생쪽이라야

제 맛이 난다.

   배낭 하나 메고 이산 저산 이섬 저섬 떠돌며 시를 채취하는 버

릇, 그것이 내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내 마음으로 자유롭게 한다.

시가 부담스러우면 나는 그 시를 버린다. 그런 시이기에 훗날 내가

읽어도 타인의 입장에서처럼 그 맛을 실감하게 되나 보다. 무게

있는 시를 쓰려고 애쓰지 않는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는 마음

가짐이다. 정박했던 곳에서 시맥이 끊어지면 다시 일어난다. 한

없이 걷는다는 말이다. 그 걸음은 상쾌하다. 몸은 가볍고 바람은

시원하다. 갯바람을 불러내는 데 알맞다. 걷는다는 말이다. 그 걸

음은 상쾌하다. 몸은 가볍고 바람은 시원하다.

 

   3

   나는 이 나이(64)에 선친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기를 드는

수가 있다. 물론 외딴섬에서의 허튼 생각이다. 48년 전에 저세상

으로 가신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싶어서 전화기를 든다는 것은 말

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지만 그런 충동을 느끼는 것은 왜 그럴까.

그것은 내 시의 인자가 다분히 부계(父系)에 속하는 데 있다. 한

참 세상이 즐거워야 할 때, 한참 이성에 눈을 뜰 때, 한참 몸부림

치고 싶을 때 그분이 저세상으로 가신 것은 내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었다. 이젠 그런 한(恨) 속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시라는 한

가닥 밧줄에 매달려 살아온 것이 장해서(?), 아니 고마워서 그분

과 통화하고 싶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머님에 대한 시 못지

않게 선친에 대한 시도 쓰게 한다.

 

백 원짜리 동전 세 개를 넣어 주고

02-996-7828을 누르면 아내 목소리

0455-64-0206을 누르면 팔순의 어머니

그런데 아버지는 0에서 9까지

사방을 눌러도 나오지 않는다

소리도(所里島) 여기쯤에서 지상의 사람보다

지하의 사람이 더 가까운 거리인데

동전을 열 개 넣고 늘러도 나오지 않느다

               -시집『섬마다 그리움이』에서

 

   소리도는 꽤 먼 곳에 있다. 여수에서 돌산도를 지나 횡간도·두

리도·금오도·안도 이렇게 한나절을 섬으로 섬으로 떠돌다 마지막

에 닿는 곳이 소리도다. 여간 마음먹지 않고서는 가 보기 힘든 곳

이다. 그런 곳을 특별한 목적도 없이 간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그러나 나처럼 방랑기에 끌려다니는 사람에게는 그리 힘든 일은

아니다. 그런 낯선 데서 며칠을 지내다 보면 내 생활권을 벗어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에 오래 잊었던 사람을 만나고 싶어

지나 보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천만 뜻밖에 통화라도

된다면 무슨 말이 오갈까.

 

"그래 힘드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냐"

"시로 살았습니다"

"그게 밥먹여 주더냐"

"밥은 먹여주지 않았지만 꿀꺽꿀꺽 참는 힘은 주데요"

"내가 살아 있었다면 그래도 시를 썼겠느냐"

"그건 모르겠습니다"

 

   이런 대화가 오고가지 않았을까.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

고 밤늦게 전화가 걸려 오는 데에 있다.

   "전 00인데요, 밤늦게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시를

읽다가 시 속에 전화번호가 있기에 전화 걸었습니다. 용서하세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던 차였겠지 해서 친절하게 대답한

다. 그런데 문제는 또 하나 있다. 0455-64-0206을 걸어서 팔순

의 어머니를 불러 놓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는

데에 있다. 언젠가 어머님이 그 말씀을 하시는 것을 그저 잘못 걸

려 온 전화겠죠 하는 표정으로 얼버무렸다.

   밤늦게 시를 읽다가 그 시 속에 있는 전화번호를 눌러 보는 외

로운 용기, 그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얼마나 허망하게 여길까. 어쩌

면 내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수화기를 들었다가 실망하

는 꼴이나 같을 것이다.

   내게도 이렇게 누군가가 아버지의 목소리를 보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시는 그 메아리까지도 욕심을 내야하는 것이

지. 내 메아리를 듣고 싶어서 쓰는 시, 아니 시 자체가 내 마음의

메아리 아니던가. 수화기를 네려놓고 내 시를 다시 읽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