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詩人들』1987~1999

<우이동 시인들> 제17집 합작시「우이동 시인들의 술」1994

洪 海 里 2008. 7. 7. 11:52

- '우이동 시인들' 제17집『신부여 나의 신부여』(1994)

 

<합작시>

 

우이동 시인들의 술

 

이생진 / 채희문 / 홍해리 / 임보




술[酒]은 술(術)인가 보다

그 유혹이 시 같고

그 시가 술(術) 같더니

살아서 술 한잔 입에 대지 않던 사람도

죽어서는 제상(祭床)에 술이 오른다

 

이생진의 술은 빈 잔 속에 바다만 채우고 있는 술

임보의 술은 풍류가락 장단에 저절로 신명하는 술

홍해리의 술은 난초잎이 덩더꿍 황새춤을 추는 술

채희문의 술은 받는 잔마다 감사기도로 넘치는 술

 

술술술술 우이동은 춤을 추는 술바단가

만날 때면 한잔한잔 꿈을 꾸는 술풍륜가

한잔 술에 북이 울어 신명나는 술춤인가

시도 기도 삶도 기도 절절한 술기돈가

우리들의 우이동은 시나란가 술나란가

 

시수헌(詩壽軒) 다락방에 모인 시인들

세상에 얽힌 한(恨)들 오죽하랴만

온종일 말술에도 끄떡도 않고

투정도 주정도 다 뭉갠 채

인수봉(仁壽峰) 볼기 치며 웃고만 가네.

 

 


* 이생진·채희문·홍해리·임보의 순서로 짜 놓은 이번 합작시의 주제는 술이

다. 우리<우이동 시인들>의 술이다. 우리 네 사람은 시도때도없이 만난다.


 우리 모임의 좌상인 이생진 시인의 술은 병아리 오줌만큼이 정량이다. 술과 술자

리는 즐거워하면서도 자신의 주량을 고수한다. 그러나 기분이 날 때는 막걸리 한

되는 거뜬히 비우는 건강 제일주의형이다.


 채희문 시인의 술은 끝이 없다. 독일산 철제 위장을 갖고 있는지 아무리 마셔도

끄떡하지 않는다. 다음날 새벽이면 비 온 뒤의 보리밭처럼 싱싱하니 일어나 산책길

에 나선다. 참으로 놀랍고 부럽기 짝이 없다. 그는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면서 매

일 마셔대는 계속적·연속적 음주신봉형이다.


 임보 시인의 술은 노래요 춤이다. 그대로 풍류요 시이다. 북이 울고 징이 운다. 마

셔도 그만, 안마셔도 그만이면서 혼자서도 꼭 반주를 즐기는 유유자적형이다.


 홍해리는 안 마실 때는 안 마시다가도 일단 발동이 걸리면 폭음·난음하며 술을

즐기는 제멋대로형이다.

 술은 가장 정교하고 순수한 음식으로 우리 마음의 영양제요, 고독한 우리들의 가

슴에 모닥불을 피워 훈훈히 데워 주는 국이요 밥이다. 이제 우이동의 술과 술자리

는 마시는 격조·품격·스타일·주량을 따져 마시면서 생활을 지키고 몸도 가누는

분수 있는 애주가의 투명한 자리가 되어야 하리라.

 술 마신 다음날 아침의 담백한 북어국이나 된장국·콩나물국이나 얼큰한 육개장

국물로 주독을 풀어 속을 다스리고 저녁녘 술시(戌時)가 되면 다시 한잔 술로 지상

에 귀양온 신선이 되어 뽀얗게 살찐 인수봉의 볼기를 친다. 술이 먼저 우리들을 안

다. 우리들의 속을 알고 있다. 그러니 우리들은 어쩔 수가 없다. 마실 수 밖에.

       - 洪 海 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