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詩人들』1987~1999

<우이동 시인들> 제17집 북한산에서 한라산까지 / 이생진

洪 海 里 2008. 7. 7. 11:39

<우이동 시인들> 제17집『신부여 나의 신부여』

 

<우이동 소리>

 

북한산에서 한라산까지

 

                                                          李生珍

 

 지난 2월 27일에서 3월 1일까지 2박 3일 동안 <우이

동 시인들>은 박흥순 화백과 함께, 채바다 시인의 초대

로 제주도 일원을 돌며 시낭송회를 가졌다.

 

 2월 27일 제주시에 도착하자마자 한림으로 가 갈매기

가 구름처럼 모여든 부두에서 비양도를 바라보며 시상에

잠겼다. 맑고 상쾌한 갯바람에 날아갈 것만 같은 마음으

로 둥실둥실 떠 있는 비양도에 경쾌한 시를 연날리듯 떠

나 보냈다.

 협재해안 모래밭에서는 두 발이 떨어지지 않아 떠날

줄을 몰랐다. 고산 자구내로 들어가 차귀도 앞에서는 아

름다움에 취해 감탄사를 연발했다. 한잔의 맥주도 음료

수가 아니라 시였다. 그 절경을 뒤에 두고 돌아서기가 아

쉬워 셔터만 눌러댔다.

 해안도로를 따라 음악 속을 달리듯 갯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송악산으로 들어갔다. 황금빛 유채꽃

밭에서 가파도와 마라도를 멀리 바라보며 망망대해

로 펼쳐지는 시상에 끌리어 한동안 정신을 잃었다.

 그날 저녁 서귀포 법환동 바닷가에 자리한 현주하 시

인의 시산방(詩山房)에서는 시낭송의 열기가 파도소리와

어우러져 밤 깊어지는 줄을 몰랐다. 어둠에 싸인 범섬은

물자락을 시산방으로 몰고와 우리들의 시와 노래에 흥

을 가해 주었고 마시는 차의 향기를 짙게 해 주었다. 이

날 밤 섶섬을 앞에 세운 아담한 별장(김수연 씨 주선)에

서는 밤새워 시 이야기가 펼쳐지고, 바람은 나무를 휘어

잡느라 잠을 자지 않았다.

 

 다음날 2월 28일은 한라산 1100고지에서의 시낭송 계

획이 있었으나 비바람에 눈까지 겹쳐 700고지에서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모래를 운반해다 깔고 위험을 면했다. 대

신 도보로 내려오며 설화가 피는 한라산의 시를 읽었다.

 산굼부리 언덕받이에 서자 이번에는 폭풍우에 휘말려

시는 마음속에 재우고 중산간지대 억새밭을 누볐으며,

신양반도 섭지코지 등대 밑에서 성산 일출봉을 바라보

았다.

 하루 종일 억센 비바람으로 날씨가 엉망이었지만 제주

도의 진면모를 맛볼 수 있어 출렁이는 바다만큼이나 시

정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날 밤은 채바다 시인의 집에서

묵었다.

 

 3일째는 삼일절 날. 여섯 시 반에 일출봉에 올라 떠오르

는 해를 맞으려 99개 바위 봉우리에 둘러싸여 목이 터져

라 시를 낭송했다. 날씨가 좋아 따뜻한 햇살에 갯쑥부쟁

이 꽃은 보랏빛 향기로 봄기운을 더했고, 다랑쉬(월랑봉)

은월봉 머리 위에는 구름 한 점 뜨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는 선택받은 날씨라서 귤나무 잎이 더욱더 기름져 눈부

셨다.

 은평이 삼성녀 표류지와 혼인지에 들러 따뜻한 봄날의

행복을 만끽하는 신혼부부들의 웃음소리 들으며 시정을

부풀리다 우도로 건너갔다.

 우도로 가는 도항선에서 시인들은 파도에 취한 듯 흔

들리는 몸으로 시를 읽었다. 이때 신혼부부들이 모여들어

호응했다. 우도 쇠머리 광대코지 아찔한 절벽 검멀레 덕

진포의 살결같이 흰 모래밭 황홀한 산호의 서빈백사 검

은 갯바위에 서서 백파에 밀려나듯 시상에 밀리고 끌리

곤 했다.

 우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성산포에 들러 유람선 엘리자

베스호에서 선상 시낭송회를 가졌다. 이때, 관광객들의

호응으로 흥은 절정에 올랐고 일출봉은 방앗간 맷돌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제주의 자연은 언제 봐도 아름답고 강렬해서 시적 경험

을 얻기에 알맞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기쁜 시, 슬픈 시,

고독한 시, 화려한 시 등 다양한 시상을 가슴에 담을 수

있어 시 쓰는 사람이면 자주 찾아와야 할 곳이라 입을

모아 말했다.

 이번 시낭송 기행은 채바다 시인이 국토종단 시문학기

행 때 <우이동 시인들>의 주선으로 서울 우이동과 경

기도 장흥 토탈미술관 <너와집>에서 시낭송회를 갖게

된 화답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채 시인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종종 이런 기행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