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詩人들』1987~1999

<우이동 시인들> 제22집 '시정신, 그리고 비시와 반시'

洪 海 里 2008. 7. 8. 08:38

<우이동 시인들> 제22집『우리들의 대통령』

 

우이동 소리

 

시정신詩精神 그리고 비시非詩와 반시反詩

 

                                                         林 步

 

  시정신이란 말이 있다. 그런데 그 시정신이 무엇인가 따

지는 문제는 간단하지가 않다. 시정신이란 작품 속에 내

재해 있는 시인의 정신을 이를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산문

장르와는 달리 시를 시되게 하는 시 장르의 정신적 특성

을 뜻하기도 한다. 전자는 작품마다 혹은 개인마다 그 특성

을 달리하는 개별적 정신세계라면 후자는 시 일반이 지

닌 보편적 특성을 형성하는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서는 후자의 개념으로 사용키로 한다.

  시를 다른 산문과는 달리 시일 수 잇게 하는 시인들의

보편적 정신세계를 시정신이라고 하면 그 속에는 윤리의

식, 비판의식, 미의식 등 다양한 정신 영역이 관여할 것이

다. 시정신에 관한 구체적인 개념 정리에 앞서 우선 시가

무엇인다 하는 문제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가보도록 하자.

  나는 <생명시학서설生命詩學序說>¹에서 모든 언술

행위는 자아성취自我成就(自我擴大)를 위한 욕망의 표

현이라고 보고 문학과 시에 대한 개념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 바 있다.

 

  문학은 자아확대, 곧 대상 성취의 욕망이 기술적으로

표현된 언술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더 간단히 말하면

문학이란 인간의 욕망을 기술적으로 표현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서경書經의 저 유명한 <시언지詩言志>의 '지志'

도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얻고자 하는 소망'의 의미로

파악된다. 그런데 문제의 관건은 '기술적'이라는 데 있

다. 바로 이것이 시, 소설, 희곡 등의 장르를 갈라놓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면 시가 되게 하는 기술적인 요인들, 곧 시적 장치

란 어떤 것인가. 나는 시적 장치의 특성을 우선 '감춤'

과 '불림'과 '꾸밈'이라고 지적해본다. 다른 말로 바꾸

면 '은폐 지향성'과 '과장 지향성' 그리고 '심미 지향성'

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상징象徵, 우의寓意, 전이轉移

등의 기법으로 나타나고 중자는 비유比喩, 의인擬人, 역

설逆說 등의 수사에서 드러나며, 후자는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대구對句나 대조對照 그리고 운율韻律 장치로 표

현된다.

  나는 이 세 가지 시적 장치의 특성을 포괄하여 '엄살'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시는 인간의 소망이 엄살

스럽게 표현된 짧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

는 소망하는 내용의 품질과 엄살을 부리는 격조에 따라

시의 품격이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격이 있는 시가 어려

운 것은 소망에 대한 단순한 기술적 언술이라는 한계를

넘어 구도자적 정신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²

 

  앞의 글에서 나는 시를 '인간의 소망이 엄살스럽게 표현

된 짧은 글'이라고 정의했다. '소망'은 시의 내용이 되고

시적 장치인 '엄살스럽게'는 시의 형식이 된다.³ 그런데

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소망의 질이다. 말하자면 일

상적 언술에서의 소망과 시적 언술에서의 소망의 질을 달

리 보고자 하는 것이다. 시인의 소망 ㅡ 시인이 구현코자

하는 것은 일상인들의 세속적인 욕망과는 격을 달리한다.

승화된 욕망이라고 할까. 어쩌면 세속적 욕망을 벗어나고

자 하는 탈속에의 소망이 가까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소망이 '구도자적 정신세계에 뿌리를 두고'있다

고 보았다. 시를 만들어내는 그런 승화된 욕망을 나는 '시

정신'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러니까 그 시정신은 시인정신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적인 평가를 받아온 양질의 작품

들이 내포하고 있는 시정신은 건실하다고 할 수 있다. 그

것은 진위眞僞와 시비是非를 가리고자 하는 비판정신이며,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윤리정신이며, 탐미적耽美的인 창조정

신으로 수렴된다. 말하자면 진眞, 선善, 미美를 추구하는

고결한 정신이라고 하겠다. 나는 이러한 정신의 전범을

우리의 옛 선비들에게서 본다. 시정신은 곧 선비정신이라

이르고 싶다.

  거기에는 또한 염결廉潔과 지조志操가 따른다. 시인을 언

어를 보리는 단순한 기능인만으로 보지 않고 구도자적 반

열에 올려놓고자 하는 소이가 또한 여기에 있다.

  시를 지향한 글들의 유형을 내용과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따져보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경우로 구분할 수 있지 않

을까 한다.

 

 ㈎ 세속적 욕망이 일상적(비시적) 진술 형태로 표현된

 ㈏ 세속적 욕망이 시적 장치를 �애 표현된 글

 ㈐ 시정신(승화된 욕망)이 일상적 진술 형태로 표현된

 ㈑ 시정신이 시적 장치를 통해 표현된 글

 

  ㈎의 경우는 내용과 형식 공히 시적 조건을 갖추지 못

한 글이므로 시라고 할 수 없다. ㈏는 형식만 시적 조건

을 갖춘 경우이고 ㈐는 내용만 시적 조건을 갖춘 경우가

된다. 나는 이과 같은 글들을 반시半詩라고 칭한다.

  ㈑의 경우가 내용과 형식 모두 시적 조건을 갖춘 것으

로 바람직한 온전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한국 시단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분량의 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비시非詩나 반시半詩가 아닌 온전한 시작품들이

얼마나 생산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¹ <아픔을 꽃으로 피우나>「우이동시인들」제14집, 1993.pp.3-6

² 위의 책 pp.5-6

³ 구조주의자들은 작품의 구조를 '내용'과 '형식'으로 구분하기를 꺼린다. 내용과 형

식의 한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어떤 질료는 내용이면서 형식이기도 하고

또한 형식이면서 내용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내용과 형식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수박의 속과 껍질의 한계가 모호하다고 해서 수

박의 속과 껍질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설명의 편의상 이분법을 사용키로 한다.

 

 

(『우리들의 대통령』작가정신, 1997, 값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