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 시인들> 제24집『아름다운 동행』
<우이동 소리>
시장을 잃은 시인들
채 희 문
● 1話
강남의 모 커피숍에서 두 여고 동창생이 오랜간만에 만나 수다를 떨고 있었다.
"왜 그렇게 그동안 전화 한 통화도 없이 꿩 궈먹은 소식으로 지냈니?"
"뭐 좋은 일도, 재미난 일두 없구해서 그냥 그러다 보니."
"그래도 그렇지 얘는, 바뀐 전화번호라도 알려줘야 될 거 아냐?"
"미안해. 너넨 여전히 쌩쌩 잘 나가는 모양이지?"
"뭐, 우리도 예전같진 않아. 그러나 저러나 너 나 시인된 거 모르지?"
"그래!? 재주도 좋구나."
"학교 때 문예반 근처에도 안 와본 경숙이도, 미영이도 재작년부터 문화센터 같은데
좀 나가더니 어느새 시인이 돼 갖고 동아리를 만든다, 시집을 낸다 야단인데.
그래도 나야 본래 좀 ---."
"아니 걔네들도? 야 도대체 나 같은 사람 쇼크 먹어 어디 살겠니?"
"그건 그렇고, 그럼 넌 아직도 시인이 안 됐단 말이야?!"
● 2話
실직한 50대 H씨가 북한산에 올랐다가 10여 년전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부하
직원을 우연히 만났다.
"평일인데 자네가 여기 웬 일인가?"
"저라고 뭐 뾰족한 수 있나요. 퇴출의 물결에 휩쓸려 나왔다가 북한산 실업주식
회사 신입사원이 되었죠."
"그래. 이 회사가 참 좋은 회사지. 서로 미워하는 일도 없고 스트레스 주는 사람도
없고, 따라서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회사니까."
"호주머니 사정도 해결해 주는 회사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네 여기서도 퇴출당하고 싶은가?"
"그러나 저러나, 산에 안 오시고 집에 계실 땐 주로 뭘로 소일하며 지내세요? 저는
할 게 없어 따분해 죽겠어요."
"나야 뭐 글이나 극적극적하고 지내는 거지."
"아니 그럼 아직도 시를 쓰고 계신단 말예요? 요즘 때가 어느 땐데, 쯧쯧 참---."
● 시인들의 시행착오
'아직도 시인이 안 됐나?'와 '아직도 시를 쓰고 계십니까?' - 이와 같은 상반된 두
가지 일화를 여기에 옮기면서 필자도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저절로 씁스름한 표정이
되어 아이러니칼한 슬픔을 머금지 않을 수가 없다.
이찌하여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시장에서 수요자가 사라진 제품을 공장
에선 양산을 하고 있는 격이니.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점가에서 시집은 팔리지 않는다. 독자가 관심과 흥미를
잃은 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국에서 시인들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다.
출판사에서도 시집 따위는 내려고 하지 않는다. 서점가에서 달가워하지 않는 책을
출판사에서 발간하고 싶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시와 시인들은 홍수처럼 범람한다.
그렇다면, 수요자 즉 독자들은 다 어디로 갓단 말인가.
어쩌다 수려한 풍경만 봐도 "내가 시인이면 시가 저절로 나오겠네", 누가 근사한
말로 표현을 하면 "아주 제법 시같은 소리하네", 분위기 있는 멋진 사람을 보면 "저
사람 시인인가 보지?", 뿐만 아니라 중 고 학창시절에 한번쯤은 누구나 "나도 시인
이 됐으면"하고 꿈꾸기도 했던, 그 많은 독자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렇게 시인
을 고상하고 순수하고 매력있는 우상적인 인간 반열에 추켜 세워 놓던 그 독자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누가 그들을 시인들한테서 멀어지게 했단 말인가.
누구의 책임인가. 독자인가, 시인인가?
두 말할 것없이 오늘의 이러한 현상은 우리 시인들 자신이 자초한 결과이다.
시인들 자신이 오늘의 불행한 사태를 불러 일으킨 주범이란 말이다.
독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니 아예 싹 무시해버리듯 착각과 자기 도취에 빠져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써놓고도 으쓱해 있던 바로 그런 시인들 탓이다.
● 자기 도취의 무서운 함정
구약성경에 보면, 소위 지혜의 왕이자 사랑의 시인으로 알려진 솔로몬 왕이
나온다.
그런 왕인데도 그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동안 오히려 백성들의 생활은 날로 퇴락해
갔고, 따라서 백성들의 불만과 원성만이 드높아져 갔다.
그것은 한마디로 지혜로운 왕답지 않게 자신을 과신, 자기도취에 빠진 나머지 백성
들의 생활과 민심의 동태를 살피지 않은 결과였다. 물론 국내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비단 솔로몬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한 지도자들도 얼마든디 나온다.
그렇다면, 백성이 따르지 않고 외면해 버리는 그러한 지도자가 바람직한 지도자상
인가. 다시 말해, 비록 시인이 한 시대의 지도자와는 다를지 몰라도 독자가 알아주지도
않고 찾아주지도 않는 시인이 바람직한 시인상인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오늘의 시인들이야 말로 착각과 자기 도취에 빠진 채 독자는 돌
보지 않고, 마치 패거리 철새 정치인들처럼 이합집산하며 매명 또는 허명을 좇는 짓거
리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백성들의 민심을 읽지 못하고 실정을 거듭하며 파멸의 구렁텅이를 파던 지도자
들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 시는 영혼의 청량제
현대를 일컬어 컴퓨터 만능의 영상문화 시대니, 정보화 시대니 하고 있다. 따라서
겉으로 얼핏 보기엔 누구나 화려하고 풍요로운 첨단문명의 행복한 생활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던가 그들은 현실의 실체적 문화에 식상한 나머지 가상의 사이버
세계를 동경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가슴은 빠작빠작 메말라 있고, 어두운 터널처럼
꿈을 잃은 공허감만이 가득 차 있다.
그들의 정신과 영혼은 어느 청량음료로도 해소될 수 없는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것
이다.
돈으로 해결되지 않을 게 없을 것같은 이 시대에 그들은 무엇에 이처럼 목말라하고
있는 것일까.
두 말할 것도 없이 현대의 삭막한 첨단문명 사회가 빚어낸 정신적 감성적 가믐 때
문이다.
그들은 사실상 지금 시인을 부르고 잇는 것이다. 그들은 다시금 시를 찾고 있는 것
이다. 오히려 이 시대야 말로 시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이야 말로 메마른
독자들의 가슴을 적셔주고 쓰다듬어줄 시인적인 시인과 시적인 시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 위기인가, 기회인가
그런데 오늘의 시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시인들만
읽고 예의상 서로 화답하는 그런 한심한 풍조와 관행에서 벗어나, 독자의 가슴과 시인의
가슴이 만나는 시, 좀 한물간 표현이지만 소위 '심금을 울리는 주옥같은 시'를 써야 한다.
즉 시장의 수요자를 공략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놔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배신감에 젖어
떠나버린 독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길이다.
그런데도 그대들은 아직도 점점 멀어져 가는 독자들의 뒷모습을 향해 비아냥대는 눈길
을 보내며 시인들끼리만 작당 야합, '제 닭 잡아먹기식'의 작태만 되풀이 하고 있을 것인
가. 아니면 시가 이 시대와 궁합이 안 맞아서 그렇다고 합리화성 궤변을 늘어 놓을 것인가.
또 아니면 복잡한 현대인의 생활과 심오한 그 내면 세계를 암유나 은유로서 시를 형상화
하다 보니 난해해져 필연적으로 독자들과 괴리가 생겼다고 변명할 것인가.
아, 언제까지 수많은 지적인 독자들을 우롱, 자기 기만의 시니컬한 웃음을 흘리며 '물에
비친 제 얼굴에 반해 빠져 죽은 나르시스'의 전철을 밟고 있을 것인가.
끝내 그렇게 공멸의 종말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 기만과 도취와 착각의 늪에서 헤어나와 지난 날의 광영을 되찾을 것인가.
화 있을진저! 인격과 자질 부재의 시인들이 양산한 사이비 시인들과 사이비 시들에게
화 있을진저!
그러나, 몇 사람이나 이 글을 읽어보고 자기의 가슴에 동감과 자성의 손을 얹을 것인가.
오호 통재라! 오호 애재라!
(『아름다운 동행』우이동사람들, 1998, 값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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