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황금감옥』2008

배 지나간 자리

洪 海 里 2008. 9. 18. 15:17

 

배 지나간 자리

 

홍 해 리


배 지나간 자리란 말이 있고

죽 떠먹은 자리란 말도 있긴 하지만

배가 지나가고 나면

물이 일어서며 아우성치는 소리

눈으로 들어본 적 있는가


헤어지면 죽고 못 살 것만 같지, 허나

허연 물거품은 시간 속으로 스러지고

바다는 언제 그랬더냐고 웃고만 있지

너를 보낸 내 가슴바다도

물길 갈라지고 파도는 깨어지며 울었었지


단단한 것은 언젠가는 깨어진다고

완벽하고 단단한 사랑이여

부드러운 물은 부드러운 말로 부드럽게 말하지

부드럽다는 것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아는 이 세월밖에 또 있겠는가


지나고 나면 다 배 지나간 자리

죽 떠먹은 자리일 뿐인데

바다여 파도여

아우성치지 말라

눈으로 듣고 귀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아픈지

바다여 파도여 섬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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