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황금감옥』2008

늑대거미

洪 海 里 2008. 9. 18. 15:37

늑대거미


洪 海 里



거지중천의 빈집

고요가 출렁이고 있다


돌아오지 않기 위하여

떠나지 못하는

천지간에 길을 열었다


여기서부터

천릿길

이제부터 홀로 가는

천년을

무작정 기다리는

막막함으로


늑대 울음도 걷히고

주검처럼 매달려 있는

거미 한 마리


흔들흔들

하늘그네

허공에 뜬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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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감옥』/홍해리 시인 신간 시집 소개 / 김금용 시인의 블로그에서옮김.

2008/05/08 11:43

복사 http://blog.naver.com/poetrykim417/30030863430


 

오늘 시인 홍해리(洪海里) 선생님의 시집을 받았다.

요즘 피는 노란색 국화과의 ‘송방망이’ 꽃과 같이 편집해준 김창집 오름에서 옮겨 싣는다.

 

홍해리시인님은 작년부터 그새 세 권의 시집을 내셨다.

10년간 한 권도 안내셨다고 하더니, 완전 한여름 허리케인처럼

폭포로 줄줄 풀어내신다.

 

바깥출입(문단)을 고집스러울 정도로 안하시는 만큼, 

시에 풀어놓는 말씀들은  하나같이 진한 엑기스이다. 

어디든 대상을 향해 날아가면 

시 하나가, 꽃잎 하나가 진저리를 치며 후드득 탄생한다.  

그렇게 꽃밭을 날아다니다 스스로는 지금 황금감옥에 갇히셨다.

난방도 안되는 편집실 시수헌에서 몇 년째 컴퓨터 앞에 앉아계시더니

급기야 허리에 인공관절을 넣고 서서 식사하고 서서 컴퓨터를 하는

 "서있는 남자 "가 되셨다고 한다.

 

참으로 시인다운 삶이 무엇인지 몸으로 후배들에게 가르치고 계신

홍해리시인님의 "시인의 말"과 함께 몇 편의 시를 옮겨 감상한다.

 

♧ 시인의 말


부족한 시, 부족의 시, 그래서 시이고 시인이다.

뒤에 '시로 쓴 나의 시론'이란 시치미를 달았다.


입때까지는 입히려고 애를 썼지만

이제부터 벗기고 벗겨 나시(裸詩)를 만나야겠다.


한 편의 시를 위하여 나를 비우고 또 비운다.

시욕(詩慾)이다.

시야, 한잔하자!


                                                                      무자(戊子) 正月 초사흘,

                                             우이동(牛耳洞) 골짜기 세란헌(洗蘭軒)에서


                                                                             ____홍해리(洪海里)

 

 

 

 

♧ 황금감옥(黃金監獄)


나른한 봄날

코피 터진다


꺽정이 같은 놈

황금감옥에 갇혀 있다

금빛 도포를 입고

벙어리뻐꾸기 울듯, 후훗후훗


호박벌 파락파락 날개를 친다


꺽정이란 놈이 이 집 저 집 휘젓고 다녀야

풍년 든다

언제


눈감아도 환하고

신명나게 춤추던 세상 한 번 있었던가


호박꽃도 꽃이냐고

못생긴 여자라 욕하지 마라

티끌세상 무슨 한이 있다고

시집 못 간 처녀들

배꼽 물러 떨어지고 말면 어쩌라고


시비(柴扉) 걸지 마라

꺽정이가 날아야

호박 같은 세상 둥글둥글 굴러간다


황금감옥은 네 속에 있다.

 


 

 

♧ 여자를 밝히다


여자를 밝힌다고 욕하지 마라

음란한 놈이라고

관음증 환자라고 치부하지 마라

입때껏 치부를 한 것도 없고

드러낼 치부도 하나 없다

여자를 활짝 핀 꽃 같이 밝혀주는 것은

무엇일까

환한 대낮같이 열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어둔 길을 갈 때

등롱을 들듯

꽃이라도 들어야 하는 것인가

등명접시 받쳐 놓고

불을 댕길 일인가, 아니지,

여자는 스스로 열리는 호수

환하게 빛나는 대지라서

하늘 아래

세상에서 여자를 밝힐 일은 없다.

 

 

 

 

♧ 오동꽃은 지면서 비를 부른다

 

 


온몸에 오소소 솟아 있는

반짝이는 작은 털 더듬이 삼아

오동꽃 통째로 낙하하고 있다

보일 듯 말 듯

아주 연한 보랏빛으로,

시나브로

동백꽃 지듯 툭! 툭! 지고 있다

처음으로 너를 주워 드니

끈끈한 그리움이 손을 잡는다

무작정 추락하는

네 마지막 아름다운 헌신,

하나의 열매를 위해

나도 이렇듯 다 포기하고

그냥 뛰어내리고 싶다

떨어져 내린 꽃 위로

공양하듯

또, 비가 두런두런 내리고 있다

 

 

 

 

♧ 동짓달 보름달

 


누가 빨아댔는지

입술이 얼얼하겠다

빨랫줄에 달빛이 하얗게 널려


바지랑대가 빨랫줄을 팽팽히 떠받치고 있다

꼿꼿하다

화살이다 칼날이다

새파랗게 질린 하늘로 시위가 푸르르 떨고


보름보름 부풀더니

푸른 기운을 저 혼자 울컥울컥

토해내는 달

저 하늘에 시위나겠다


철새 몇 마리 그리고 가는 곧은 길 위로

흰 빨래 옷가지 하나 흔들린다


지상에선

긴긴 밤 참이라도 드는지

별들이 빙 둘러앉아 눈을 반짝이고

동치미 동이에 달이 풍덩 빠져 있다.

 

 

 

 

♬ Butterfly Waltz - Brian C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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