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과 안테나
洪 海 里
며칠 전 밑둥을 베어버린 나팔꽃
2층 옥상 안테나에 몸을 매달고 있다
말복 지나 처서 가까운 가을 아침
10시 못 되어 도르르 말리던 꽃송이들,
줄기와 잎에 남아 있는 피 한 톨까지 다 짜서
뜨겁게 마지막 항변을 하고 있는 것일까
꽃마다 귀가 되어 우주의 소리 불러 모으고
꽃마다 입술 되어 온 세상에 나팔 울리더니
꽃마다 음순이 되어, 이제
소리없는 진통의 처절한 통곡으로
하늘 한 켠을 붉게 물들이고
나팔꽃은 소리를 잃는데
한바탕 질펀한 사랑이 아닌
그냥 부르르 떨기만 하다
쉬 시들지 못하고
한 생명을 버려 한 생명을 얻으려
처음으로 마지막 키스를 하고
조용히 꽃은 닫히지만
허공에 매달린 선홍의 보이지 않는 창백한 저 힘
그걸 바라보는 내가 목이 마르다
목이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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