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으면 바다로 돌아가리라
洪 海 里
넓고 넓은 바닷가 외진 마을
어머니의 고향
우주의 자궁
나 죽으면 그 곳으로 돌아가리라
돌아가 그 보드라운 품에 안겨
무한과 영원의 바다를 살리라
이승에서 지은 죄와 모든 때
뜨거운 불로 사루고 태워
한줌의 가루로 남아
천지를 진동하는 폭풍과 파도에 씻기어
벽옥의 바닷속 깊이 가라앉으리라
꽃 한 송이 무슨 소용 있으랴
빗돌이 무슨 필요 있으랴
이름도 흔적도 꿈도 잊어버리고
붉은 해 바다에 떠오를 때
바다를 깨워 바다에 뜨고
진홍빛 노을 서녘 하늘 물들이면
나 파도와 함께 잠들리라
하늘에 수많은 별들 불 밝히고
하나가 따로 없는 바다에서
나도 하나의 바다가 되리라
그리하여 파도의 꿈을 엮으리라
어린 아이 맑은 미소의 집을 짓고
혼돈의 바다
원시의 바다에서
그 조화의 바다
생명의 바다에서
일탈한 죽음의 넋들과 만나
아름다운 불륜으로 자유의 사생아를 낳으리라
끝없이 한없이 낳으리라
묵시와 화엄의 바다
충일과 자족의 바다에서
파도가 파도를 낳고
그 파도가 파도를 낳고 낳으리라
파도 하나가 다른 파도를 흔들어
온 바다가 하나의 큰 파도로 피리라
바다가 껴안고 있는
바닷속 물의 섬에는
자연의 혼교가 이어지고 이어지고
설렘이 죽은 바닷가에서
또다른 설렘이 태어나고
그리움이 끝난 바닷가에서
또다른 그리움이 피어나고
사랑이 끝난 바닷가에서
또다른 사랑이 일어나고
울음도 눈물도 다 죽은 바닷가에서
또다른 울음과 눈물이 솟아나고
ㅎㅎ! 웃는 소리도 끝난 바닷가에서
또다른 웃음이 터져나오는
오 절망의 사랑이여
절망의 절망의 사랑이여
나 죽으면 바다로 돌아가리라
절망의 바다로.
(시집『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 시집『푸른 느낌표!』가 도서출판 <우리글>에서 '우리글 대표시선 8'로 나왔습니다.
지난 봄에 나온『봄, 벼락치다』에는 百篇(100편)의 시에서 한 편을 뺀 白篇(99편)의 시로 여백을 두었다면 이번 시집에는 百篇에 한 편을 더한 百一篇(101편)을 실어 그 여백을 날리고 혹을 하나 달아 주었습니다.
'서문'이나 '해설' 또는 '후기'나 '발문'도 없습니다. 詩들만 시들시들 시들하니 빽빽합니다.
『봄, 벼락치다』에는
2003년 봄부터 2006년 봄까지의 작품이 실려 있고,
이번 시집『푸른 느낌표!』에는
1998년『愛蘭』을 낸 후부터 2003년 봄까지의 작품 가운데서 추린 「가을 들녘에 서서」로부터「세란헌洗蘭軒에서」까지 101편의 시가 쓸쓸하게 실려 있습니다.
- 隱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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