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스크랩] 홍해리 시집『武橋洞』1976 에서

洪 海 里 2009. 10. 4. 16:44

  

 

 

무교동武橋洞 1 / 홍해리

 

 

빛나는 물, 빛인 물, 너 물이여
별인 물, 달인 물, 바람인 물, 불인 물,
무의미의 물이여
아득한 심장에 타는 불의
찬란한 불꽃이 잠들 때까지.

안개 속에서 누가 신방을 차리고
하염없음과 입맞추고 있다
바다에 익사한 30대 사내들
일어서는 손마다 별이 떨어지고
달이 깨어지고 있다
킬킬킬 무심한 저 달빛이
귀에 와 죽은 소리로 울며
바람이 되고
불이 되어 타고 있다.

십 년도 천 년도 네게는 꽃잎이어니
아픔과 잊음이 문을 열고
죽음까지도 황홀한 빛으로 빛나느니.

토요일밤과 북소리와 오류와 망각이여
그대들은 언제나 빈객이다
깊디 깊은 늪가의 수목들은 쓰러지고
뿌리마다 뿌리채 뽑히우고 있다.

물과 불의 영원한 친화를 위하여
밝음과 어둠의 평화를 위하여
모래 속을 헤매어 온 너의 의미가
오늘 밤은 꿈을 꾸리라 꿈꾸는 꿈을
빨갛게 익은 사과 두 알이 빠개지는 꿈을.

빛나는 물, 빛인 물, 무의미의 물인 너
아득한 심장에 혼자서 타는 불의
찬란한 불꽃이 죽을 때까지.

 

 

 

 

 

무교동武橋洞 2 / 홍해리

 

 

안개가 내린다 녀릿녀릿
스물스물 내리는 한 떼의 어둠
짙어가는 어둠의 골목골목으로
가면을 쓴 수 천의 사내들
탈에 묻힌 숱한 여자들
빌딩과 빌딩 사이
끝없이 끝없이 내리는
줄기찬 우유빛 밤빗소리
어두운 대낮과
환한 밤을 이으며
춤추는 허무의 밤빗소리
등 뒤로 매달리는 뿌연 시간의 찌꺼기를
털어내며 털어내며
흔들리는 싸늘한 창유리의 측면
어둠으로 빛나는 더욱 빛나는
창백하게 바랜 밤의 파편들
물 위에 떠 올라
끝없이 밀려가고 있는 바람의 행렬
파도의 꿈은 깨어지고
잠시도 잠들 날이 없는 바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별들의 흔적없는 이별과
이미 닫혀버린 문밖의 서두르는 구두발자국
가슴마다 출렁이는 어두운 물결 사이
수 천의 섬이 둥둥 떠다니고
향그런 풀꽃들이 피어 손짓하지만
솟았다 사라지는 낯선 섬들
비만증을 다스리는 당당한 허세가
텅 비어 있는 있음 위에서
아름다움을 위하여
스냅사진같은 정사를 위하여
잔인한 시간의 영원을 위하여
끝없이 두드리는 북소리 소리
깨어진 달과 부러진 달빛으로
쌓아올리는 물의 역사
뭉개버리는 불의 반역
하릴없이 낙하하는 꽃이파리들
부러진 날개의 나비 떼 벌 떼
아스팔트 위에 짓이겨진
순결한 처녀림의 허벅지
50m 도로의 소란한 불빛과 함께
질주하는 빌딩과 어둠의 그림자
으스러진 풀소리가 몇 다발씩
시멘트와 철근 사이에서 깨어나고
강 건너 달려오는 기형의 씨앗들
언뜻 틔어오는 새벽녘 하늘빛
강물소리를 일깨우는
바르르 바르르 떠는 부리 상한 새
목이 젖어 하얗게 흔들리고 있다.

 

 

 

 

무교동武橋洞 3 / 홍해리

 

허공에 스러지는 저녁놀처럼
우리는 스러지면서
돌아오는 길 위에
뿌연 안개만 젖어내리고
하루의 일에 굽은 어깨만 아프다.

사내들은 죽기 위하여, 포옹하기 위하여
저무는 저녁 숲 속에서
거지중천으로 달려가고 있다
내밀한 죽음은 진객, 순간의 착각을 위하여
호곡하는 어리석음의 사자는 없느니,

허한 우리의 언어의 전율은
고요한 폭풍, 시끄러운 무덤.
일인칭 대명사가 제왕되어 호령하며
남루처럼 벗어던진 일상의 허무
눈물과 욕망의 높은 파돗소리.

추억과 내일과 꿈과 무관심이
허공중에서 까마귀처럼 울고 있는
신비의 마을, 불타는 산하에서
천둥이 울고 벼락도 내리고
드디어 모든 것은 번개와 더불어 침닉한다

하얀 재의 기진함 속에서
하루살이들이 달아나고 달아난다
동네 개들이 모여 짖어대는 하늘
이승의 끝에 열려 있는 바다
비틀거리는 눈동자 속으로 반란하는 달.

사지 구석구석 침투하는 상실의 아픔
그 속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비의 처녀와 바람의 시종들의 낙뢰소리
뼈는 뼈대로 살은 살대로
풀꽃들이 바람을 따라 홀로 피어나고 있다.

눈감고 바라보면 의식의 달빛이
눈을 들면 무의식의 진한 어둠이
불타는 서정의 첫여름을 안고
귀머거리 장님들이 떼지어 가고 있다
살들이 뼈를 떠나 홀로 가고 있다.

 

 

 

 

무교동武橋洞 4 / 홍해리

 

저녁녘 무교동엘 나가 보면
불의 바다 모래의 바다 위
거대한 배가 한 척
둥둥 떠가며 SOS를 때리고 있다
어기어차 어기어차
비바람에 몰려 쫓기는 바다
곤한 자의 넋은 저녁놀로 피고
능구렁이들이 얽혀 있는 환상 너머
비껴 날으는 새 떼
푸드득 푸드득 푸드드득 …
바다 위에 내리는 건조주의보
찬란히 타오르는 산호수림의 해저
바닷속을 달려가는 불자동차소리
끝없이 끝없이 밤으로 내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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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동武橋洞 5 / 홍해리

 

 

장미꽃은 어디서 피고 있는가
푸른 하늘 은하수는 어디 있는가
밤이 깊으면 꿈은 어디 있는가
죽어버렸다 죽어버렸어 하고 우는
전신이 젖어 있는 서울여자여
불속에 타고 있는 사내들이여
뿌연 건물들 사이 기진한 낮과 밤
눈과 귀와 속살이 앓고 있다
한밤에 돌아오면 눈을 닦는다
귀를 씻고 물속에 담근 발을 닦고
전신을 씻고 닦아도 씻겨지지 않는다
물의 집 불의 집의 내밀한 헛간
고통과 꽃다발과 노기와 무력이 얽힌
50:10, 40:20, 30:30의 무심한 저 달
동굴에서 지하에서 층계 위에서
황혼을 자정을 새벽을 그리고 대낮을
늪을 언덕을 산과 숲과 계곡을
기쁨과 슬픔을 유리잔으로 계산하는
쓸쓸한 가슴과 심장은 어디 가 있는가
서울의 소란스런 자궁의 암흑의 미로로
한강이 달려가고 인수봉이 솟아오른다
사내들과 여자들이 내닫는 곳마다
안개가 내리고 비가 내린다
거리마다 가득차던 투명한 웃음소리
삼사경이 지나면 문이 열린다
신음과 새벽바람이 일어서고 있다
불속을 내달리던 사내와 여자가
죽음의 나라 꿈의 나라를 핥고 있다
피의 바다를 건너 햇살이 한 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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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동武橋洞 6 / 홍해리

 

 하루의 해일에 밀린 사내들이 지쳐 시든 꽃밭으로 흘러들 때 갈길은 

멀고 행선은 더뎌도 에헤요 에헤요 에헤요 흐느낌으로 가득한 도시 

허무하고 허무한 도시여 비어 있는 신부들은 그냥 비워두고 나팔꽃은 

피고 나팔꽃은 벙글다 진다 뒤채이는 저문 골목의 썩은 살과 백골들의 

웃음소리 물에 둥둥 뜨는 허이연 몸뚱어리 벙벙한 뱃구레 털북숭이 

복숭아같은 죽은 여자의 이름을 우린 모른다 젖어 있는 소녀들의 애환

의 불꽃소리를 우린 듣지 못한다 그 사내들의 기적소리를 우린 따르지 

못한다 그 소리의 깊이가 얼마나 깊고 깊은 지를 우린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

 화무십일홍들아 영원한 꿈인 그대들아 너희의 육체가 영혼의 발바닥을 

핥고 있어도 너의 발가락이 너의 발의 꿈을 꾸지 못한다 허공대천에 타

오르는 오색찬란한 불덩이를 사랑하라 사랑하라 눈물에 젖은 사내가 불

타는 여자를 적셔도 여자는 젖지 않는다 드디어 모든 것의 형체가 없어

지고 소리가 없어지고 없는 것이 없는 것이 되어도 죽어 있는 시계가 스

스로 살아나지 못한다 닫힌 어둠을 비추이지 못하는 인공의 달처럼 공중

에 뽑혀진 잡초의 허연 뿌리가 뻗어나지 못하듯이 검은 연탄은 연탄이다.

 정처없이 떠도는 우리의 영혼이 응큼한 심장의 붉은 피를 내보이고 있다 

갱 속에서 기어나온 사내들의 풀어진 사지가 허물어지고 무너지고 쓰러

지고 침닉한다 늪 속으로 늪 속으로 빠져드는 바람 돌 별 대리석같은 지혜

의 빛남도 보석처럼 당당한 여자의 빛남도 잠자리 날개같은 가을 하늘이다.

 물이 되어 물을 버리고 불이 되어 불을 버리고 한알의 모래알 속에서 고뇌

의 불은 위대하게 타오르고 불기둥을 든 자들의 축복은 천공무한이다 소금

기 가신 가벼운 사내들의 무거운 철학으로 텅빈 도로가 둥둥 떠가고 밤 바다 

흰 머리칼을 날리고 서 있다 곧은 길이 사라지고 굽은 길이 나타난다 몇 자 

이 보이지 않는 길로 향방 모를 바람이 달려가고 있다 갈길은 멀고요 

행선은 더뎌도 에헤요 에헤요 에헤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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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동武橋洞 7 / 홍해리

 

바람과 바람 사이에서
모래와 모래 사이에서
안개와 안개 사이에서
불길과 불길 사이에서
노을과 노을 사이에서
이슬과 이슬 사이에서
어둠과 어둠 사이에서
파도와 파도 사이에서
천둥과 천둥 사이에서
달빛과 달빛 사이에서
번개와 번개 사이에서
재와 재 사이에서
피와 피 사이에서
잠과 잠 사이에서
바람과 모래 사이에서
안개와 불길 사이에서
노을과 번개 사이에서
어둠과 파도 사이에서
죽음과 달빛 사이에서

얼굴이 무너지고 이름이 헐리고 있다
초주검이 된 새벽녘
두런대는 소리
무력과 부끄러움으로
아픔과 허기를 잊고
눈물의 강을 태우고 있다

 

 

 

 

무교동武橋洞 8 / 홍해리

 

 

허수아비들이 집을 짓고 있다
망치소리 요란하게 허무의 집을 짓고 있다
낮과 밤 사이
투명한 유리의 집을 짓고 있다
갇혀 있던 우주가 펼쳐지고
무의식의 변두리를 돌아
새벽이 오면
세계지도는 바뀌어져 있다
하얀 캔버스 위 찬란한 지도
텅텅 빈 가슴을 쓸어
오장육부를 내쏟아
밤새도록 날아다니며 그린 영토
밤중 지나 새벽녘 가까운 시간
퉁금이 풀리고
알코올에 젖었던 암흑이 풀리고
절망의 울음소리가 헐리고
눈이 내린다
새까맣게 새하아얀 빛깔로
창백하게 순결한 빛깔로
절반은 비어 있는 의식의 세계로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무교동武橋洞 9 / 홍해리 

 

해가 지고
달빛에 익사하는
살아 있는 모래알들
백색 깃발을 흔들며
젖어 있는 모래알들.

모래알이 모래알과 얼리는
그 속에서도
우리들의 눈은 황홀하고
우리들의 귀는 뜨겁고 맵다.

살 있는 것
피 있는 것
모두 버리고
비인 것만 가득 우리들의 것.

가는 것을 가게 두고
오는 것을 오게 두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전신으로 덮이는 구름장.

빗소리가 몰리는
자갈밭으로
푸른 풀밭을 밟고 온
바람소리가 가고
우리들의 귀도 그 뒤를 쫓고 있다.

낙엽을 밟던 더운 발들이
싸늘한 도시의 변두리
길가 간이주점의 포장을 펄럭이고
사내들은 어둠이 되었다
이내 불꽃으로 피어오른다.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는
불의 사내들
불이 오를 때마다
먼 데서 우는 여자들의 울음소리
사내들의 황홀함을 위하여,

초조와 불안과 우울로
창밖에 눈발은 날려 쌓이고
진눈깨비속으로
한 해가 지고 있다
한 해를 몰고 왔다
한 해를 끌고 가는
천의무봉인 절대자의 휘파람소리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무교동武橋洞 10 / 홍해리

 

어둠의 입술은 탄다
막강한 새벽의 나팔소리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새벽
우리들은 만리허공의 한 송이 풀꽃
부질없는 구름과 비와 바람의 꿈.

마른 번개가 번쩍이며
병동의 흰 벽을 두드리고
숱한 꽃송이들이 잠 속에서
밀려오는 서쪽의 해일로
허물어지고 있었지.

버드나무잎은 버드나무잎대로
버드나무 휘어진 어깨를 떠나
낙낙히 흩날리고
서울의 허리를 부여잡고
천의 눈썹이 하늘에 떠 있었지.

뿌옇게 젖어 있는 은하수 아래
출렁이는 허무의 바다
고래사냥에 나선 사내들이
흐린 물빛 위
빈 손으로 돌아오고
육지의 흙내음에 취한
뱃전을 치는 오색 불빛
펄럭이는 육지의 불빛만 빚났었지.

바닷길따라
뱃길을 가르며 날던 갈매기 떼
빛나던 깃털마다
돌던 기름기
방향감각을 잃은
하얀 이마 흐릿한 하늘로
밤은 끝없이 내리고 있었지.

의식의 길을 따라
이승의 끝까지
어둠이 익은 그 끝
사방에서 충만한 빛이 일어서고
아청빛 넋은 눈뜨고 깨어자기 위하여,

무작정
무너지고 쓰러지고 넘어지고
우리는 허물어져
깊은 잠의 수렁에 침몰했었느니,

그러나 아침이면
태양은 허물어진 우리를 일으키고
기다리는 법을 가르치며
이마 위에 한 알의 빛알갱이를
남겨주었느니,
여름이 오고 봄이 가고
겨울이 오고 가을이 가면
흰 눈발은 일색으로 내렸느니
평온한 내일의 봄을 꿈꾸며.

 

 

 

 

무교동武橋洞 11 / 홍해리

 

 

혼자 걸어도 하나
둘이 달려도 하나
밀려가며 뒤를 보면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길에 이는 먼지와
누런 구름장의 교접으로
천의 방언을 지껄이며 내리는 빗소리
비어 있는 귀로 달려가는
병든 말의 갈기가
진달래 피는 여자들의 입술에 타고
굳을대로 굳어 싸늘한 혓바닥으로
밀리는 사람들의 허전한 물결.

불타는 도시의 사지마다
흐물거리는 그림자와
둥둥 떠밀려 사라지는 철이른 나뭇잎
향방없는 폭풍우에 정처를 잃고
젖빛 유리창에 와 소리치는
금속성 발자국들의 해일
부산한 밀림의 안타까움을
가슴마다 가득히 안고
가장 외진 곳에서 만나는 우리의 섹스
마른 꽃대궁에 걸려 펄럭이고 있는
젖은 깃발의 찢긴 꽃이파리
하늘 가득히 나부끼고 있다.

 

 

 

 

무교동武橋洞 12 / 홍해리

 

아스팔트와 시궁창으로 내리는
자정의 불빛
숨을 자들 다 숨어버리고
오줌 먹은 담벼락과 오물찌꺼기가
텅 빈 도시를 지킬 때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달빛이
부끄러움에 고갤 돌린다
지천으로 내리던 섣달의 별의 가슴
꽁꽁 얼어붙은 플라타너스 뿌리
은행나무 산발한 팔뚝에도 오지 못하는
저 별들의 손길이
우리들 가슴에도 닿지 않는다
천하게 얼어터진 뿌리의 아픔과
아무 것도 모르는
한 시대의 하녀들이 쓸쓸히,
쓸쓸히 인형극만 연출하고 있다
아무 것도 이젠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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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동武橋洞 13 / 홍해리

 

불타는 혀들이 날아다니는 하늘
살 태우며 우는 모국어
하루살이처럼 울고 있는
천정의 까아만 연기 아래
까마귀 떼의 비상은 빛난다
느긋한 선회
한 바퀴 휘! 돌 때마다
문득 사라지는 지상의 끝
투명한 살의 여자들이
잃어버린 말과 귀를 주워
옥상에 펄럭이게 한다
하늘이 가까운 빌딩의 지붕 위
후줄그레한 넝마처럼
사내들은 시들고
음험한 거웃들이 천으로 일어서고 있다
거뭇거뭇한 환상들이 일그러졌다
요란한 까마귀 울음소리를
싸늘한 사기잔 위에 얹어 놓고
한잔의 눈물겨움을 위하여
아픈 심장의 외로움은 아름답다
한 움큼의 흐느낌은 뜨겁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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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동武橋洞 15 / 홍해리

 

대한민국의 자궁
서울의 클리토리스.

하늘로부터 낙낙히 나부끼는
천의 만의 꽃잎들
하늘의 하얀 깃발들
푸른 목덜미를 내놓은 채
낮의 미로를 헤매이다
밤의 절벽으로
음산한 침묵을 깨며 내려 앉는다
내려 앉는다
창백한 웃음소리들.

잠자리 날개같은 하루살이들이
차가운 안개에 싸여
히히히 히히히 히히덕거리며
자유! 정의! 평화! 하며 내리는
무수한 천상의 축복의 메시지
젊음의 텍스트를
민주주의의 오르가즘을 위하여
문을 열고 맞는 미명의 새벽바람.

주홍빛 찬란한 허벅다리
농자색 유방으로
반짝이며 난무하는 조화의 화원
여자들은 마른 꽃으로 피어나고
사내들은 열심히 죽음을 연습한다
날이 새고 밤이 밝는다
거대한 도시
위대한 도시
빛의 충만을 위하여
끝없이 함몰하는 저 개미들의 땀과 피
별과 함게 늪 속으로 늪 속으로.

벌거숭이 강철과 불빛과
미궁속에서 암담하게 바스러지는
한 줌 꿈인 모래알들.

영원한 종말
영원한 시작을 위하여
불의 꿈, 물의 꿈, 바람의 꿈, 모래의 꿈, 소리의 꿈,
빛깔의 꿈, 사람의 꿈, 죽음의 꿈, 하늘의 꿈, 꿈의
꿈들을 싣고
바다로 바다로 달려가는
끝없는 한강줄기

물빛에 반짝이는 허공의 불빛
절망의 하얀 손들이
그 불빛을 잡고
허허로이 나부끼는 덧없는 깃발이 되어
하염없이 펄럭이고 있다
영원한 끝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대한민국의 자궁
서울의 클리토리스
숱한 뉘우침을 만나
질긴 어둠이 되고 있다.

 

 

출처 : 詩의 향기 / 무명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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