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1980)에서

洪 海 里 2009. 10. 7. 04:38

  洪海里 시집    

 『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 (1980)

 

 

우이동에서 / 홍해리

 

떨리는 손을 모아
어둠 속에서
신부의 옷을 벗기우듯 하나씩 하나씩
서서히 아주 서서히

인수봉과 백운대에 걸친
안개옷을 걷어올리는
하느님의 커다란 손이 보인다
비가 개이면

푸르른 솔밭 위로
드디어 드러나는 허연 허벅지
백운대의 속살
젖을 대로 다 젖은

떨리는 사지 사이
이름 모를 새들의 눈부신 목청
수줍어 아직 다 틔이지 않고
무지의 풀잎들이 일어서는데

약수터 洗耳泉으로 가는
무리진 발자국의 경쾌함
눈을 씻고 만나는 허공
햇살 속에 펼쳐진 하느님 마을.

(1980)

 

 

 

  

추동楸洞에서 / 홍해리 

 

백주에 쏟아지는 햇살
징징징 우는 자갈밭
늘어진 호박잎의 아우성
자지러진 매미소리
가래나무 아래
소학교 아이들의 검정 고무신
피라미 몇 마리
둘러봐야 산, 산, 산
바람 한 점 오지 않는 마을로
갑자기 내려꽂히는 빗줄기
펄럭이는 남근
고추밭엔 벌써 약이 오르고
비에 젖은 도라지꽃
낯선 빛깔.

 

* 추동: 충북 제천군 수산면에 있는 작은 산골마을 

 

 

 Loner

 

 

겨울밤의 꿈 / 홍해리

 

而立里 지나 不惑峯에 올라도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고
숲도 눈에 띄이지 않느니
눈이면 다 눈으로 알다
오늘은 온 세상이 칠흑빛
이제야 눈이 트이는 것인지
솔바늘 사이를 가는
헝클린 바람의 투명한 날개
가슴속엔 순진무구의 아이가 살아
그 빛나는 눈빛으로
바람 찬 지창 안에 불을 밝히느니
잃었던 말씀을 모아
집을 이루리라
잠 먼 겨울 들녘같은 밤
삼경이면 반야의 꽃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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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꽃 / 홍해리

 

 

비어 있는
마당으로
홀로 내리는
가을볕 같이

먼저 간 이를
땅에 묻고 돌아와
바라보는
하늘빛 같이

이냥
서럽고 쓸쓸한

가을의 서정

슬픔도 슬픔으로 되돌아가고
아아
비어 있는 마음 한 자락
홀로 가득하다. 

 

 

 Escape

 

 

바늘과 바람 / 홍해리

 

  내게 허공이 생길 때마다 아내는 나의 빈 자리를 용케도
찾아내어 그 자리마다 바늘을 하나씩 박아 놓습니다 한 개
한 개의 바늘이 천이 되고 만이 되어 가슴에 와 박힐 때마다
나는 신음으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비인 들판을 달려 갑
니다 동양의 모든 고뇌는 다 제 것인양 가슴 쓰리며 하늘을
향하여 서른 여섯 개의 바람을 날립니다 이제까지는 그 바
람이 바람으로 끝이 나고 말았지마는 이제는 바람의 끝에서
빠알갛게 피어오르는 불꽃의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새벽녘 아
내의 아지랭이로 넘실대는 파도의 기슭마다 은빛 금빛 비늘
을 반짝이는 고기 떼들이 무수히 무수히 하늘로 솟구쳐 오릅
니다.

(1980) 

 

 

 

 

 

 / 홍해리 

 

5월의 가슴을 열면
눈과 마음은 멀었어도
보랏빛 등을 달고
둥둥둥 울리는 북소리 들린다
환호와 박수소리 쏟아져 내리고
황홀한 번개
침묵의 벼락
가랭이 사이 감추었던 화약으로
몽유병자의 환상을 무너뜨린다
생명을 살찌우는 죽음의 잠이
마음의 고갈을 적시면서
검은 빛으로 일어설 때
초록빛 언어여
하늘에 취한 사랑
심장속에 밝히는 꽃등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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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 홍해리

 

빛나는
살과
뼈로 지은
영원한 대지
깊디 깊은 꿈을 가는
하느님의 쟁기질 소리
끊임없이 들리고
햇빛 밝으니
무슨 죄된 일 있으랴
불꽃으로 일어서는
복숭아씨
그대의
비밀.

(1980)

 

 

 Happy moment

 

 

장미 피다 / 홍해리 

 

 

땅속 깊이
폭약을 품고
겨우내내
암중모색 -.

아름다운 햇살
화승을 타고
솟아오르는 지열의
폭발.

하늘 가득
서양처녀들이 모여
발파작업을 하고 있다.

신들린 듯
신들린 듯
어질대는
현훈의 이승.

  

 

 

 

채송화 / 홍해리

 

깨어진 눈물 알갱이가 모여
6월의 하늘에 피어 있다
미친 여자처럼
독한 소주 한잔 하고
고운 꿈을 펼치고 있다
장독대 옹기그릇 옆
8월 햇살이 집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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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해리 

 

이승의 꽃봉오린 하느님의 시한폭탄
때가 되면 절로 터져 세상 밝히고
눈 뜬 이들의 먼 눈을 다시 띄워서
저승까지 길 비추는 이승의 등불. 

(1980)

  

dynamical daisy

  

 

안면도에서 / 홍해리

 

안면도 승언리 뒷산
기슭의 보리밭
김매는 여인네들 가랭이 사이
초록빛 물결이 일어서고 있었다
기름기 잘잘 흐르는
이랑 이랑마다
파도를 타는 아지랑이
달빛이 와 뒹굴던
바다, 바다의 보드라운 가슴
고무신 코와 속옷
진달래도 망울지고
맨몸으로 내리는 정오의 햇빛
멀리 가까이 크고 작은 섬
난초꽃이 지천으로 피어
열네다섯의 계집애들도
바닷가에 나와 조개를 까고 있었다.

 

 

  

 

/ 홍해리 

 

 

눈물도 마른 겨울은 눈물도 없이
잠 못드는 한밤을 한 잠도 없이
기다리며 죽지 않고 사는 이들을
겨울山에 가서 보네.

대판하고 돌아온 허기진 바람
눈부시게 빛나는 햇빛,
향긋한 흙의 영원한 평화를
봄의 山에 가서 보네.

완전한 사랑을 위하여
뜨거운 자유를 위하여
한 알 밀알로 썩는 아픔을
가을山에 가서 보네.

뒤돌아볼 줄 아는 이들은
거대한 밤의 견고한 슬픔과
작은 생명의 끝없는 하늘을
여름山에 가서 보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
........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

 

 

Living in the Mountains (Bagrot Valley)

 

 

별곡別曲 / 홍해리

 

 

아버지를 산에 모시고
돌아오는 길
눈이 하얗게 깔렸다.

산새들은
마을로 내려오는데
아버지는 혼자서 산에 계셨다.

온 세상이 은빛 일색
갈길은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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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그림 앞에서 / 홍해리

 

 

머리 허연 노인이
묵화를 치고 있었다
배는 남쪽으로 남쪽으로 출렁이고
주름투성이인

얼굴
그리고 온몸
노인은 옷을 하나하나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서서
바다를 치고 있었다
바다도 옷을 하나씩 벗어던지고 ……
속을 보여주지 않았다
눈을 감고 바라보면
대낮에도 삼경의 칠흑을 안고
가슴을 풀어내여
묵묵히 묵묵히 묵화를 치는
노인의 손길마다
파도의 입술이 떨고 있었다
경련하는 사지에 피어나는 물보라
바다는 보이지 않고
묵화 한 폭이 걸려 있었다
감은 눈의 망막 가득히
꽃이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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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을 위하여 / 홍해리

 

 

아픔을 진주로 기르던 섬을
파도 하나가 찾아 갑니다
보이지 않던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던 섬을

한 섬을 넘쳐 흐르던 빛과
한 섬을 넘쳐 흐르던 어둠이
아픔을 이겨 쌓아 올리는
하나라는 나라를 위하여

그 나라 안 살아 있는
바다의 하늘과 바람의 산
별의 바다와 모래밭으로
넘치고 넘치는 빛의 산재

때때로 바람은 별을 보채고
모래가 진주를 보챌지라도
사랑은 세월에 끄덕도 않고
햇살만 찰찰찰 쏟아지거라.

 

 

 Bananas

 

 

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 / 홍해리 

 

 

갈비뼈 하나이던 너
이젠 나를 가득 채우고 압도하여
無明인 내가 나를 맞아 싸운다
불타는 뼈의 소리들이
이명으로 잉잉잉 울려오고
천으로 만으로 일어서고 있다
눈에 와 박히는 세상의 모든 물상이
허공중에 둥둥 떠오르고
꽃이 피는 괴로움 앞에 서서
영혼의 그림자를 지켜보면
투명한 유리잔의 독한 액체와
사기그릇의 신선한 야채도
아린 가슴의 한 켠을 채워주지 못한다
밤 깊도록 머리맡에 서성이는
바람소리 빗소리 천둥과 번개
시간이여 절대자인 그대 영원이여
아름다운 것은 영원히 아름답게
아픈 것은 영원히 아프게 아프게. 

 

 

 * http://blog.daum.net/dongsan50에서 옮김.

홍해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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