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洪海里 시집『우리들의 말』(1977)에서

洪 海 里 2009. 10. 6. 01:12

 

洪海里 시집『우리들의 말』1977 에서 

 

 

가을 / 홍해리

 

 

만났던 이들을 
모두 버리고
이제 비인 손으로
돌아와
푸른 하늘을 보네
맑아진 이마
오랜만에 
만나는
그대의 살빛
無明인 
내가
나와 만나 
싸운다

 

 

 

 

잠 속에서 / 홍해리

 

 

일어나자 일어나자
시 한 편 쓰지 못하고 지샌
어둡고 긴긴 겨울밤
웅크리고 눈감은 채 지샌 겨울밤
부질없고 어리석은 우리들의 꿈
말라빠진 풀잎처럼 흔들리었다
설한풍 설한풍 음산한 바람소리
덧없이 밟혀 밟혀 죽어버린 채
언 땅속 긴긴 잠에 발을 잠그고
저 머언 먼 하늘 비인 허공
하릴없이 흔들리는 우리들의 생애
못 이룬 꿈의 잔해를 씻어내리며
눈뜨는 빗소리 봄빗소리여
일어나라 일어나라 어깰 흔드는
눈물로 잠 깨우는 만 리 밖의 꿈
텅빈 들판 갈대들 서걱이는
기진한 바람의 손길 이끌고
따스한 겨울햇살에 끌려간다
막막한 겨울밤의 터널을 지나.

 

 

우리들의 말 / 홍해리

 

거리를 가다 무심코 눈을 뜨면
문득 눈 앞을 가로막는 산이 있다
머리칼 한 올 한 올에까지
검은 바람의 보이지 않는 손이
부끄러운 알몸의 시대
그 어둠을 가리우지 못하면서도
그 밝음을 비추이지 못하면서도
거지중천에서 날아오고 있다
한밤을 진땀으로 닦으며 새는
무력한 꿈의 오한과 패배
어깨에 무거운 죄없는 죄의 무게
깨어 있어도 죽음의 평화와 폭력의 설움
눈뜨고 있어도 우리의 잠은 압박한다
물에 뜨고 바람이 불리우고
어둠에 묻히고 칼에 잘리는
나의 시대를 
우리의 친화를
나의 외로움 
우리의 무예함
한 치 앞 안개에도 가려지는 불빛
다 뚫고 달려갈 풀밭이 있다면
그 가슴속 그 아픔 속에서
첫사랑같은 우리의 불길을
하늘 높이 올리며 살리라 한다.

 

 

 

 

소금맛 / 홍해리

 

 

소금이 짜다 합니다

소금이 짜다 합니다
소금이 짜다 합니다

소금이 짜다 합니다
소금이 짜다 합니다
소금이 짜다 합니다

소금이 짜다 합니다
소금이 짜다 합니다
소금이 짜다 합니다
소금이 짜다 합니다

소금이 짜다 합니다
소금이 짜다 합니
소금이 짜다 합
소금이 짜다

소금이 짜
소금이
소금

 .

 

Boy with Pig for Sale, Chichicastenango, Guatemala

 

 

불혹 / 홍해리

 

밤 사이
전신에 형성되는
기압골 ---
한때
개이다
다소 구름
구름장 사이의
간헐적인 달빛
심한 바람
구름이 몰리더니
비가 내린다
사지가 녹아 내린다
억수같은
빗소리
잠은 엷고 가벼이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른다
파도는 높고
열이 올라 ---
내일
모레는
불혹

 

 

Modern day camel trader

 

 

생명연습 / 홍해리 

 

간밤 잠 속을 날던
목이 긴 학이
하늘 어느 곳을 어지러이 날다
새벽에 돌아와
풋풋풋 깃을 치고 있다
비바람은 몇 번인가
설레이다 가고
굳은 잠의 사원도 문이 열렸다
달빛도 어느 만큼 달아나고
허공중 어디쯤서
새벽산이 울고 있다
아득하던 꽃소식도 머리맡에서
언뜻 화창하게 일어서고
겨울 지나 몸난 들말 떼
하늘로 하늘로 오르고 있다
무심한 보리밭가
사랑에 눈을 뜬
동네 개들이 모여
컹컹컹 
생명연습을 하고 있다.

 

 

 

See no evil, hear no evil, say no evil!

                                                     see no evil, hear no evil, say no evil


텅 빈 귀 / 홍해리

 

밤낮없이 시장기가 드는 나의 귀
바람소리 폭포소리만 귓전을 친다
우리는 귀를 막고 우리는 들으려 한다
죽은 소리는 소리가 아니다
천 리 만 리 밖에서도 가득차오는
산 소리가 하늘빛 깨치면서
산빛으로 물빛으로 달려가고 있다
죽은 꽃이 떠가는 허공중으로
목금을 찍고 있는 까치 몇 마리
새벽녘이 그들의 광장이라면
사내야 눈감고 달려가는 사내야
길이 보이느냐 죽음으로 가는 길이
텅 빈 귀에 난 길을 타고
달려가는 바람소리는 뜨겁다.

 

 

 

 

풀과 바람, 나의 詩 / 홍해리

 

혼자서 스러지고 혼자서 운다
논두렁서 겨우내내 혼자서 앓는
빨간 쓴 나물 뿌릴 위하여
모래알 속에서 하루가 저물고
바람 속에서 하루가 저물고
바람 속에서 한 세기가 깨어난다
늪 위에 둥둥 떠서
한 생애가 바래고
빗속에서 천둥 속에서
한 목숨이 부끄러이 닦이우고 있다
때아니게 등을 치는 허기
슬슬슬 달려와 파도는 일어서고
가새풀숲을 지나 싸움을 돋구는
뜨거운 바람소리
하루를 돌아와 다 잠든 지구의 한 편에서
빨간 살을 내놓고 글을 쓴다
일어서다 스러지고 스러지다 일어서는
나의 시 나의 노래여
포기와 연민과 오류와 절망에 익숙해지는
완전한 불완전인 나의 낮과 밤
저녁 한밤 잠든 어린아이의 눈을 만나
유쾌한 잠시의 친화
바람은 어디나 있어도 잡히지 않고
불타는 빈 들의 저쪽
어둠 속으로
이슬이 내려 먼 곳에 들리는 인기척
시간은 끝이 보이지 않고
기다리는 자는 기다림에 익숙해
바람을 일으키는 풀잎은 스러지고
스러지는 바람으로 풀잎은 일어선다.

 

 

 

 

 

겨울 밤에 깨어서 / 홍해리

 

깊은 밤의 칠흑을 다 이겨서
전신으로 빚어내는
긴긴 밤을 갈증으로 출렁이는 해일같이
넘쳐나는 슬픔으로 빚어내는
가슴속 활활 지피는 열기
그 짙은 흙냄새로 빚어내는
아름답고 곧은 말씀 하나를
그대는 멀리 서서 바라만 보고
한 걸음 다가서면
두 발짝 물러서서
눈 감고 귀 막고 있는 그대여.

나의 노래여
시린 손 호호 불어 그대를 빚으면
허공중에 떠도는
싸늘하니 창백한 별이 하나
벗은 몸으로 반짝이고 있나니
내 이제 훌훌 벗어 던지고
떠나리라
드넓고 막막한 어둠속 벌판으로
답답하고 아득한 가슴을 열고
싸늘한 대지 위에
뜨거운 별의 씨앗을 뿌리며
헤매리라
끝없는 바람의 뿌리를 움켜잡고.

 

 

 

 

 

할 말 없음 / 홍해리

 

 

한 시대의 뒷꽁무니에 헐떡이면서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시인이여 할 말 없어라
길 잘 든 개들은 낮에도 하늘에다
컹컹컹 짖으며 앞서 달리는데
시인이여
할 말 없어라 없어라
4월은 돌아와
나뭇가지마다 푸른 싹이 돋아나고
짖밟힌 질경이도 일어서는데
한 시대의 맨 뒷자리에 서서
아아 할 말 없음은
할 말 없음은 무엇인가
목발 짚고 떠난 사랑
어둡고 차운 겨울을
어디서 서성이며 돌아올 줄 모르는지
동구밖에 나가 기다려도
내 사랑아 뜨거운 내 사랑아
할 말 없음은
구융젖 빠는 주린 애처럼 안타깝구나.

 

* 후 기


 -『우리들의 말』을 위하여

가슴속 깊은 곳
느글대는 모닥불이 피어오른다
일간신문 1면마다
참신한, 참신한 신인을 찾는다는
신춘문예 광고를 보며
후기를 쓴다
한 해의 씨뿌림을 거두어 들인
텅 빈 들녘의 어스름
초겨울 바람만 설레이고 있는
민둥산같은 가슴속에서
모닥불이 확확 튀어오른다
어둠은 혓바닥을 날름대며
불꽃을 살라먹고
불꽃은 싸늘한 돌이 되어 떨어진다
새까맣게 단 돌멩이 몇 개
보석처럼 가슴 가까이 묻고
사랑을 위하여
죽음의 씨앗을 위하여
덩어리 울음을 속으로 앓으며
창백한 웃음을 겉으로 띄우며
우리들의 말은 달린다
푸른 하늘 흰 구름 속을
천둥과 번개,
폭풍우 진눈깨비 서릿발 속을
깊은 계곡 높은 산
출렁이는 파도와 암흑의 미로를
은빛 찬란한 갈기 날리는
말의 태깔을 다듬으며 다듬으며
우리들의 말은 빛난다
심장과 이빨로
새벽녘 미명을 뚫고 달리는
말발굽소리 소리
숲 속의 평화와 바다의 친화를
잠들어 있는 대지를 위하여
죽어 있는 사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