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詩> 방짜징

洪 海 里 2009. 10. 17. 06:03

        계간문예』2009 가을호 '계간시평'에서

 

 

       방짜징

 

        洪 海 里

 

        죽도록 맞고 태어나

        평생을 맞고 사는 삶이러니,


        수천수만 번 두드려 맞으면서

        얼마나 많은 울음의 파문을 새기고 새겼던가

        소리밥을 지어 파문에 담아 채로 사방에 날리면

        천지가 깊고 은은한 소리를 품어

        풀 나무 새 짐승들과

        산과 들과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가슴속에 울음통을 만들지 않는가

        바다도 바람도 수많은 파문으로 화답하지 않는가

        나는 소리의 자궁

        뜨거운 눈물로 한 겹 한 겹 옷을 벗고

        한평생 떨며 떨며 소리로 가는 길마다

        울고 싶어서

        지잉 징 울음꽃 피우고 싶어

        가만히 있으면 죽은 목숨인 나를

        맞아야 사는, 맞아야 서는 나를

        때려 다오, 때려 다오, 방자야!

        파르르 떠는 울림 있어 방짜인

        나는 늘 채가 고파

 

        너를 그리워하느니

        네가 그리워 안달하느니!

         

                                -홍해리, ‘방짜징’.『우리詩』2009년 8월호


 자궁은 생명을 키워내는 생명의 샘이며, 생명의 집이다. 방짜징의 자궁은 그냥 자궁이 아니고 소리의 자궁이다. 세상의 온갖 소리를, 소리밥을 지어 파문에 담아 사방에 날리는 소리의 생명샘이고 소리의 집이다. 그 소리는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천 수만 번 두드려 맞’아야 태어나는 소리, 웃음보다 울음의 파문을 새기는 소리다. 그 울음은 저 혼자 우는 울음이 아니고 천지가 깊고 은은하게 품어 화답하는 울음이며, 풀 나무 새 짐승들과 산과 들과 하늘과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 속에 울음통을 만들게 하는 울음의 자궁이다. 한평생 떨며 떨며 가는 울음꽃길의 소리이다. 우리들 삶에 울음이 없고 슬픔이 없다면, 웃음만 있고 기쁨만 있다면 그 삶이 얼마나 삭막하고 깊이 없고 가볍고 경박할까. 모름지기 삶이란 강물 밑바닥 깊이 가라앉은 슬픔이 있어서, 혼자 고요히 밀실에서 눈물 글썽이는 울음이 있어서, 가슴 아려 잠 못 이루는 그리움이 있어서 그윽하고 아련한 꽃길로 승화되는 것이리라.

 ‘방짜징’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끌어와 환유를 통해 삶의 본질을 감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맞아야 사는, 맞아야 서는 나’이기에 때려주는 너를, 본질적인 울음 울게 하는 너를 그리워하는 역설 속에 슬퍼서 아름다운 우리들 삶이 아프게 꽃피고 있다.

 

삶의 본질과 삶의 진실에 닿아 있어서 독자들이 그 시를 읽으면서 스스로 자신의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워 길어 올릴 수 있게 하는 시, 삶의 본질을 꿰뚫어 통찰하고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건드려 공감하고 교감하게 하는 시, 그리하여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게 하고 드디어는 그의 삶을 바꾸어 놓는 시, 어떻게 사는 것이 값진 삶인가를 항상 생각케 하는 시, 이런 시가 감동 깊은 시이며, 시공을 초월하여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어 오래 남는 시가 될 것이다. 일생 동안 이러한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모든 시인들은 오늘도 밤을 밝히며 생명의 불꽃을 사르고 있는 것이리라.

                                                                                                               - 이혜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