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감동 깊은 시「방짜징」/ 이혜선 시인

洪 海 里 2009. 10. 17. 06:11

  감동 깊은 시                                

   -『계간문예』2009 가을호 계간시평       

                                             이  혜  선(시인)


 사단법인 ‘우리詩 진흥회’에서 ‘감동 깊은 詩,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주제 아래 충북 괴산에서 여름자연학교를 개최하였다. 필자도 가끔 주제발표를 하지만, 대체로 문학단체에서 개최하는 세미나라고 하면 주로 평론가나 학자들이 주제발표를 하고, 이론적이고 학술적인 성격이 많아서 창작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냥 이론으로 끝나 버리기도 하고 딱딱하고 졸립기도 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자연학교에서는 감동을 주제로 한 시 창작과 시세계에 대한 발표와 열띤 토론으로, 참석자들에게 치열한 시 쓰기에 대해 새로운 동기부여를 해 주었다. 발표자의 한 사람인 도종환 시인은 결코 평탄하다고 할 수 없는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펼쳐 보이면서, 넘기 힘든 고비 고비마다 더욱 치열하게 시 쓰기에 매달리고 그리하여 시를 통해 구원을 얻고, 시가 있어서 힘이 되었다는 진솔한 고백을 하여 청중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심지어 목숨이 위험해지는 건강의 위기가 찾아와도 시가 있어서 다 극복할 수 있었으며, 고요와 평화로움 속에 아름다운 시간을 하늘의 별과 함께 보낼 수 있었다는 고백 앞에서 숙연해졌다.


        이른 봄에 내 곁에 와 피는

        봄꽃만 축복이 아니다

        내게 오는 건 다 축복이었다

        고통도 아픔도 축복이었다

        뼈저리게 외롭고 가난하던 어린 날도

        내 발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던

        스무 살 무렵의 진흙덩이 같던 절망도

        생각해 보니 축복이었다

        그 절망 아니었으면 내 뼈가 튼튼하지 않았으리라

        세상이 내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걸어

        길바닥에 팽개치고 어둔 굴속에 가둔 것도

        생각해 보니 영혼의 담금질이었다

                (중략)

        육신에 병이 조금 들었다고 어이 불행이라 말하랴

        내게 오는 건 통증조차도 축복이다

        죽음도 통곡도 축복으로 바꾸며 오지 않았는가

        이 봄 어이 매화꽃만 축복이랴

        내게 오는 건 시련도 비명도 다 축복이다

                                        -도종환, ‘축복’ 부분


 고통도 아픔도 가난도 절망도, 심지어 죽음도 통곡도 다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관조할 수 있는 인생관이 배어나는 시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 몸으로 그 고통과 아픔을 겪어내고 함께 뒹굴고 마침내 그것을 넘어서는 관조적 경지를 이루어내는 삶, 그 고비고비를 시와 함께 하였기에, 시인의 직관과 사유가 있었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그 고통과 절망 속에서 스스로 넘쳐 흘러 진국이 된 시이기에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위안이 될 수 있는 시가 되는 것이다.

 시인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시를 쓰며 사는 삶이란 결국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리창 건너편에 묻어두고 온 고통을 꺼내 혼자 밤을 새워 닦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 슬픔 그 고독을 보석처럼 박히게 하는 일이다.” 그는 또 어느 음악회에서 간주로 연주되는 바이올린 소리에 감동하여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시가 저렇게 사람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내 시, 내 삶이 남의 가슴의 방파제를 뒤흔들어놓는 파도로 부서지고 있는지, 그럴 가능성은 있는지 물어보았다. 물결도 없이 파도도 없이 나는 시인인지 물어보았다. 로뎅은 ‘예술은 감동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나의 시가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면 나는 언제까지 시인인가? (중략) 한 편의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면 여기서 그만 멈추고 싶었다. 감동을 주는 한 편의 시를 쓰는 일, 그게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승하 시인은 스승인 미당 서정주 시인이 늘 강조했던, 시는 머리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거쳐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말을 상기하면서, 스승이 영면한 후, 새롭게 스승 삼고 있는 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시 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건설회사 간부직을 사직하고 시 창작을 공부하다가 실명하고, 뇌종양 수술을 받고 오로지 시 쓰기에 매달리는 대학원 제자 배우식 시인,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우다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나 근 20년간의 투병생활 속에서 몸의 반쪽이 마비되고, 말도 어눌하고, 시력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로도 시인의 꿈을 버리지 않고 온몸으로 사투를 벌이며 시를 써서 시집을 출간한 대학 후배 정상현 시인, 자신의 저서 「이승하 교수의 시 쓰기 교실」을 읽고 편지를 보내온 무기수와의 편지 왕래로 시 창작에 대한 지도와 교류를 하고 있는 남OO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시를 소개하였다.


  울지 마세요 어머니 금방 갔다 올게요 금방 갔다 올 텐데……울지 말고 어머니 웃어        주세요 저처럼 환하게 웃어달라니까요 저를 웃음의 모종 컵에 꼭꼭 눌러 심어주세요 아침    마다 웃음을 뿌려주면 쭈욱쭉 넝쿨 뻗어……금방 갔다가……금방 올 수 있어요 걱정 마세    요 가다가 배고프면 먹을 수 있도록 빨갛게 잘 익은 웃음 몇 알 싸주세요 제 몸이 펄펄     끓어요 더 이상 말할 수가……없어요 어머니 금방, 금방 갔다 올게요 알았죠 약속할게요    금방 안 오면 혼내주세요 네?(만일, 혼수 속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어머니……    울지 마세요)

                                        -배우식 ‘슬픈 약속’ 전문


 뇌종양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에 실려가는 아들을 보며 울지 않을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그것을 알기에 시인의 마음은 더욱 아프다. ‘만일, 혼수 속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어머니……울지 마세요’ 혼수 속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자신보다도 남겨질 가족들에 대한 염려가 더욱 절절하게 전해져서 감동을 주는 시이다.

 시를 쓰기 위해서 두개골을 절개하는 방법의 수술을 피하려고 의사에게 울며 매달려서 결국 코를 통해 새로운 방법으로 수술을 받고 시력과 건강을 되찾은 시인은 ‘제 시가 다른 사람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간절한 염원으로 시인의 길을 걷고 있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어찌

        이승의 것만이 사랑이겠느냐


        그것이 인연이라면

        단 한 번의 저포놀이라 할지라도

        숙세(宿世) 내세(來世) 건너가는 다리가 아니겠느냐


        옷깃 스친 꽃잎 하나로도

        영원이 아니겠느냐

        그 단내 나는 숨결

        한 바탕 꽃꿈이라 하지만


        그것이 운명이라면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 까지도

        사랑하는 나의 길은

        이승 저승 영원의 길


        혹여 네가 다시 그 길에 피어

        옷깃에 스칠 수만 있다면

        내가 오늘 지리산에 들어

        시방세계 꽃잎을 다 헤겠다

                                        -복효근, ‘만복사저포기’ 전문


 복효근 시인은 ‘나의 시 쓰기에 대한 변명’이라는 제목 아래 그림과 시, 이야기와 시, 독서와 시 쓰기, 체험과 시 쓰기 등의 부분으로 나누어 자신의 시를 예시하면서 감동 깊은 시 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위의 시는 김시습의 소설 ‘만복사 저포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시이다. 떠꺼머리 총각 하나가 만복사에 들어가 부처님과 저포놀이 내기를 하여 이기고, 원하던 낭자를 만나 사랑을 얻었으되 그 낭자가 죽은 혼령이었음을 알고 난 뒤에도 여전히 사랑과 정절을 지켰다는, 고전을 재창조하여 절절한 사랑을 노래한 시이다. ‘옷깃 스친 꽃잎 하나’ ‘한 바탕 꽃꿈’이었던 짧은 사랑을 위해 ‘지리산에 들어/시방세계 꽃잎을 다 헤겠다’는 이승 저승을 넘어서는 영원한 사랑 앞에 독자로 하여금 경건히 옷깃을 여미게 하고 가슴 먹먹함을 느끼게 하는 감동을 준다. 함께 예를 든 시 ‘씨알 속의 우주 한 그루’는 시공을 뛰어넘는 우주적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사물의 너머를 투시할 수 있는 혜안으로 우주의 비밀을 엿보는 시이다. 이러한 직관이나 혜안은 어느날 문득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독서와 사유와 훈련과 노력으로 습득되는 것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데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복 시인은 또 ‘너무 길지 않은 시’를 주장하면서 ‘길어야 할 시가 없는 것은 아니나, 한참 읽다 보면 앞의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 시, 쓸데없이 군살이 많은 시, 너무 친절하게 이것저것 다 설명해주는 시’를 경계하면서 ‘모두 설명해 줘 버려서 독자의 몫이 남아 있지 않은 시’는 감동을 줄 수 없다고 한다. ‘촌철살인의 언어구사가 필요합니다. 크고 화려한 외양보다는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형식으로 독자의 마음 속에 쏙 안길 수 있는, 그래서 언제든지 혀에 굴려보고 맛보고 음미할 수 있도록’ 시는 길어서는 안된다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 볼 만하다.


        어미의 이름을 얻으려는 시험지 앞에


        무수한 꽃숭어리를 피워냈으나

        열매는 고작 몇 개뿐인 모과나무가 왔다


        알몸으로 겨울을 나는 그 모과나무 곁에

        산 채로 껍질을 벗겨내야 값이 쳐진다는

        밍크 한 마리가 왔다


        그렇게 저를 다 내주고도 살아남은

        알몸의 밍크 한 마리가 그려진

        답안지가 왔다

                                -박라연, ‘모(母)’ 전문. <계간문예> 2009년 여름호


 <계간문예>의 계간평이니 계간문예에 수록된 시 중에서 감동을 주는 시는 어떤 시일까 살펴보는 눈에 박라연의 ‘모(母)’가 읽힌다. ‘어머니-어미’는 시의 영원한 화두이다. 어미라는 이름 덕분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맨발로 얼음강을 건너서 겨울을 나고 새 촉을 틔워서 얼마나 많은 꽃을 피워냈을까? 그 ‘무수한 꽃숭어리’는 그러나 속절없이 떨어지고 열매 맺는 것은 고작 몇 개뿐인, 그것도 맛있지도 예쁘지도 않은 모과나무 열매뿐이다. 뿐만 아니라 산 채로 껍질을 벗겨내야 비싼 값으로 팔릴 수 있는 밍크처럼 저를 다 내주고도 여전히 살아남아 자식을 위해 나머지를 다 바칠 수 있는 것이 ‘어미’라는 이름이다. 이승에 목숨을 받은 생명으로 어미가 없이 태어난 생명은 없다. 어미의 몸을 빌어 태어나고, 어미의 지극한 보살핌 속에 자라나서 어미의 희생과 사랑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우리들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어미의 사랑과 맹목적인 희생에 대한 글을 읽을 때면 깜작 놀란 듯 자신을 돌이켜 보고 어머니에 대해 고마움과 후회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짧은 형식 속에 비유의 이미지로 어미의 삶에 대해 효과적으로 표현하여 감동을 주는 시이다.


        툭, 어깨를 털어 나온 먼지를 고운다

        뼛속까지 가득히 차 있는 거만을 고운다

        고여져 남아서 있는 고독을 고운다


        당당하던 초상이 저 넘에서 내려다본다

        천상의 모든 모양은 보이지 않고

        푹 고여 남아 맴도는

        허어연 국물 국물

                                -이처기, ‘사골’ 전문. <계간문예> 2009년 여름호


 이처기 시인은 사골을 고으는 일상의 평범한 체험 속에서 자아를 성찰하고 존재의 본질을 천착하는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누구나 겪는 나날의 일상 속에서 자기만의 직관적 시선으로 내면의 먼지와 아만심을 털어내고 고독을 치유하는 능력이 예사롭지 않다. 소망하는 자신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고 ‘푹 고여 남아 맴도는 국물’ 속에서 걷어내야 할 쓸모없는 기름기와 독소, 도달해야 할 지향점을 시조의 형식 속에 담아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봄 바다 건너오는 갯바람

        사월의 청보리 연둣빛 머리채를

        흔들며 달려오네.


        청보리 밭 가슴팍에

        소금기 간간한 맛으로

        징소리가 물결치네.

                                -임원식, ‘징소리’ 전문. <계간문예> 2009년 여름호


 임원식 시인의 ‘징소리’는 보이는 시, 들리는 시, 맛보는 시이다. 소리(청각)를 바람(촉각)으로, 청보리 연둣빛 머리채(시각)로, 소금기 간간한 맛(미각)으로, 다시 징소리(청각)로 공감각적으로 변용시켜 뛰어난 표현력 속에 징소리를 다양하게 맛보게 한다.


        죽도록 맞고 태어나

        평생을 맞고 사는 삶이러니,


        수천수만 번 두드려 맞으면서

        얼마나 많은 울음의 파문을 새기고 새겼던가

        소리밥을 지어 파문에 담아 채로 사방에 날리면

        천지가 깊고 은은한 소리를 품어

        풀 나무 새 짐승들과

        산과 들과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가슴속에 울음통을 만들지 않는가

        바다도 바람도 수많은 파문으로 화답하지 않는가

        나는 소리의 자궁

        뜨거운 눈물로 한 겹 한 겹 옷을 벗고

        한평생 떨며 떨며 소리로 가는 길마다

        울고 싶어서

        지잉 징 울음꽃 피우고 싶어

         (하  략)

                                -홍해리, ‘방짜징’ 부분. <우리詩> 2009년 8월호


 자궁은 생명을 키워내는 생명의 샘이며, 생명의 집이다. 방짜징의 자궁은 그냥 자궁이 아니고 소리의 자궁이다. 세상의 온갖 소리를, 소리밥을 지어 파문에 담아 사방에 날리는 소리의 생명샘이고 소리의 집이다. 그 소리는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천 수만 번 두드려 맞’아야 태어나는 소리, 웃음보다 울음의 파문을 새기는 소리다. 그 울음은 저 혼자 우는 울음이 아니고 천지가 깊고 은은하게 품어 화답하는 울음이며, 풀 나무 새 짐승들과 산과 들과 하늘과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 속에 울음통을 만들게 하는 울음의 자궁이다. 한평생 떨며 떨며 가는 울음꽃길의 소리이다. 우리들 삶에 울음이 없고 슬픔이 없다면, 웃음만 있고 기쁨만 있다면 그 삶이 얼마나 삭막하고 깊이 없고 가볍고 경박할까. 모름지기 삶이란 강물 밑바닥 깊이 가라앉은 슬픔이 있어서, 혼자 고요히 밀실에서 눈물 글썽이는 울음이 있어서, 가슴 아려 잠 못 이루는 그리움이 있어서 그윽하고 아련한 꽃길로 승화되는 것이리라.

 ‘방짜징’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끌어와 환유를 통해 삶의 본질을 감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맞아야 사는, 맞아야 서는 나’이기에 때려주는 너를, 본질적인 울음 울게 하는 너를 그리워하는 역설 속에 슬퍼서 아름다운 우리들 삶이 아프게 꽃피고 있다.

 

삶의 본질과 삶의 진실에 닿아 있어서 독자들이 그 시를 읽으면서 스스로 자신의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워 길어 올릴 수 있게 하는 시, 삶의 본질을 꿰뚫어 통찰하고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건드려 공감하고 교감하게 하는 시, 그리하여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게 하고 드디어는 그의 삶을 바꾸어 놓는 시, 어떻게 사는 것이 값진 삶인가를 항상 생각케 하는 시, 이런 시가 감동 깊은 시이며, 시공을 초월하여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어 오래 남는 시가 될 것이다. 일생 동안 이러한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모든 시인들은 오늘도 밤을 밝히며 생명의 불꽃을 사르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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