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통사랑/ 洪海里
제자리서만 앞뒤로 구르는
두 바퀴 수레를 거느린 먹통,
먹통은 사랑이다
먹통은 먹줄을 늘여
목재나 석재 위에
곧은 선을 꼿꼿이 박아 놓는다
사물을 사물답게 낳기 위하여
둥근 먹통은 자궁이 된다
모든 생명체는 어둠 속에서 태어난다
어머니의 자궁도 어둡고
먹통도 깜깜하다
살아 있을 때는 빳빳하나
먹줄은 죽으면 곧은 직선을 남겨 놓고
다시 부드럽게 이어진 원이 된다
원은 무한 찰나의 직선인 계집이요
직선은 영원한 원인 사내다
그것도 모르는 너는 진짜 먹통이다
원은 움직임인 생명이요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직선이 된다
둥근 대나무가 곧은 화살이 되어 날아가듯
탄생의 환희는 빛이 되어 피어난다
부드러운 실줄이 머금고 있는
먹물이고 싶다, 나는.
- 시집『푸른 느낌표!』(2006)
*홍해리(1942-, 충북 청원)
먹통은 먹줄의 집이다. 짧은 거리를 재거나 표시할 때는 자가 유용하겠지만 길이가 제법 길어지면 먹줄이 제격이다. 먹통에서 줄을 뽑아가서 가볍게 튕겨주면 곧은 직선을 얻을 수 있다. 먹줄을 돌돌 말아 먹통 속 먹물에 재면 선명한 줄 자국을 언제든지 얻을 수 있으니 요긴하게 쓰일 데가 많다. 먹줄 놓인 대로 자르거나 덧대면서 집 한 채 들어서기도 할 것이다.
시인은 이런 쓰임새 말고도 먹통의 어둠과 감겨 있는 모양새에 주목한다. 자궁을 닮은 어둠이 생명을 키운다는, 세상의 원형이 직선을 낳고 다시 안아서 보듬어 준다는 발상을 먹통으로부터 얻어낸 것이다. 세상에 때 묻고 건조해진 채 귀가한 먹줄에게 물기를 전해줄 먹물이고 싶어 하는 따뜻한 인간애도 보여준다.
먹통을 보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바보 먹통이라도 통하려는 마음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 이동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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