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시집『봄, 벼락치다』(2006)에서 · 2

洪 海 里 2009. 10. 27. 20:47

 

   洪海里 시인   

   시집 『봄, 벼락치다』 2006 에서  

 

 

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 홍해리


詩의 나라
牛耳桃源
찔레꽃 속에 사는
그대의 가슴속
해종일
까막딱따구리와 노는
바람과 물소리
새벽마다 꿈이 生生한
한 사내가 끝없이 가고 있는
行과 行 사이
눈 시린 푸른 매화,
대나무 까맣게 웃고 있는
솔밭 옆 마을
꽃술이 술꽃으로 피는
蘭丁의 누옥이 있는
말씀으로 서는 마을
그곳이 洪海里인가.

 

 

무화과無花果 / 홍해리

애 배는 것 부끄러운 일 아닌데
그녀는 왜 꼭꼭 숨기고 있는지
대체 누가 그녀를 범했을까
애비도 모르는 저 이쁜 것들, 주렁주렁,
스스로 익어 벙글어지다니
은밀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오늘밤 슬그머니 문지방 넘어가 보면
어둠이 어둡지 않고 빛나고 있을까
벙어리처녀 애 뱄다고 애 먹이지 말고
울지 않는 새 울리려고 안달 마라
숨어서 하는 짓거리 더욱 달콤하다고
열매 속에선 꽃들이 난리가 아니다
질펀한 소리 고래고래 질러대며
무진무진 애쓰는 혼뜬 사내 하나 있다.

 

 

폭설暴雪 · 1 / 홍해리

내 마음속 전나무길 눈은 쌓여서
밤새도록 날 새도록 내려 쌓여서

서늘한 이마 홀로 빛나라
빛나는 눈빛 홀로 밝아라

이승의 모든 인연 벗겨지도록
저승의 서룬 영혼 씻겨지도록.

 

 

暴雪 · 2 / 홍해리

붓질 한 번으로
먼 山이 지워지고
허공을 가로 날던
까만 새까지 사라지자
일순 눈이 먼 화가의 세상
민주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

바라건대
비소, 청산의 毒 같은
슬픔이 묻어나는,
일필휘지
외로움으로 그린
산수화
한 폭의 餘白이기를!

 

 

산적山賊 / 홍해리

가볍게 살고 싶어
겔리 게을리 게으르게
느릿느릿 느리게 살고 싶어
수염을 깎지 않아 텁수룩하다
얼굴에 나룻이 북슬북슬하다
밖에서는 산에서 내려왔느냐 묻고
안에서는 山賊 같으니 깎으라 한다
그러나 그리 살지 못하니
차라리 꼬챙이에 꿰인
산적散炙이 되어 네 앞에 눕고 싶다, 아니
산 敵이 되어 네 앞에 무릎 꿇고 싶다
이미 生이 만선이라
마음이 산적山積 같다
신고하노니,
이제 산으로 들어간다
산 속에 숨어 살리라
너의 그늘을 벗으리라, 나여
산적, 그래 나는 산적이다.

 

Krishna collection.

 

길 / 홍해리

백로가 되면 투명한 이슬 구르는소리
백로 깃털처럼 가볍다
나무 속에서 나왔던 나무들
적막 속 적막으로 침잠하기 위하여
우듬지는 하늘 가까이 묵언으로 흔들리고
뿌리는 지층 깊이 말라 있다
고요를 허물던 나무들의 노역
천근만근 무겁던 몸도 매미 허물이다
달뜨지 마라 달뜨지 마라
조화는 혼돈 속에서 빛나고
세상은 불평등으로 평등하다
우주의 경전을 설법하고 있는 나무들
죽비가 된 나뭇가지 등짝을 내리치고
가을가을 해탈의 문으로 들어서고 있는
새와 물고기와 짐승과 벌레들아
세상의 모든 길은 내 발바닥에 있다.

 

Shall we move?! :)

 

세란정사洗蘭精舍 / 홍해리

우이동 골짜기
새끼손톱만한 절 한 채 있네
절이 아니라 암자 하나 숨어 있네
난초 이파리나 씻으며 산다는
시를 쓴답시고 초싹이는 땡초
날 맑고 푸른 어느 날
마당에 나는 고추잠자리를 보고
시도 때도 없이 하늘 날고
집도 절도 없어도 내려앉는
자유자재의 길이여
그 무소유의 소유를 보고
시여 날아다오 날아다오 빌고 있네
'자네가 쓰는 시는 시도 아니다
자네가 쓰는 것도 아니다
자네가 어찌 시를 쓰겠는가
시는 어디 있는가
이미 쓰여져 있지 않은가' 하는 소리
첩년의 머리 위에 내리는 이슬비처럼
삽시간 그 사내를 적시고 있네
비에 젖은 그의 영혼의 밥그릇에
숟가락 하나 세워 삽시를 하고
잔 가득 매실주 넘치도록 첨작을 하며
울컥울컥 넘어오는 아픔 되삼키고 있네
눈앞에 널려 있는 詩를 보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돌아 홀로 가는 길
어지럽고 숨이 차 헐떡이고 있을 때
벌들의 공중누각을 잎새로 가리고 있는
마당가 오죽 몇 그루 바람소리로 웃고 있네.

 

Shepherd with Newborn Calf

 

소금쟁이 / 홍해리

북한산 골짜기
산을 씻고 내려온 맑은 물
잠시,
머물며 가는 물마당
소금쟁이 한 마리
물 위를 젖다
뛰어다니다,
물속에 잠긴 산 그림자
껴안고 있는 긴 다리
진경산수
한 폭,

적멸의 여백.

 

Owl Family

 

장미, 폭발하다 / 홍해리

가시철망
초록 대문 위
천하에
까발려진
저,
낭자한 음순들
낭창낭창
흔들리는
저, 저,
호사바치.

 

secrets from within

 

청보리밭 / 홍해리

보리밭 사이로 걸어
어디로 가나
초록빛 사태지는
꿈도 섧은 5월이면
정은 깊은 산,
그윽한 골짜기

뒷산에서는
간헐적으로 꿩이 울고
비는 내려도
하늘이 가벼운데
보리밭 사잇길 따라
어디로 가나.

 

 

가을 들녘에 서면 / 홍해리

다들 돌아간 자리
어머니 홀로 누워 계시네
줄줄이 여덟 자식 키워 보내고
다 꺼내 먹은 김칫독처럼
다 퍼내 먹은 쌀뒤주처럼
한 해의 고단한 노동을 마친
허허한 어머니의 生이 누워 계시네
알곡 하나하나 다 거두어 간
꾸불꾸불한 논길을 따라
겨울바람 매섭게 몰려오는
기러기 하늘
어둠만 어머니 가슴으로 내려앉고
멀리 보이는 길에는 막차도 끊겼는가
낮은 처마 밑 흐릿한 불빛
맛있는 한 끼의 밥상을 위하여
빈 몸 하나 허허로이 누워 계시네.

 

 

가을 산에서 - 우이시편 · 8 / 홍해리

혼백을 하늘로 땅으로 돌려보낸
텅 빈 자궁 같은, 또는
생과 사의 경계 같은
가을 산에 서 있었네
지난 봄 까막딱따구리가 파 놓은
오동나무 속 깊이
절 한 채 모셔 놓고
가지에 풍경 하나 달아 놓았네
감국 구절초 쑥부쟁이에게
안부를 남기고
물이 만들고 간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무장무장
먼 산에 이는 독약 같은 바람꽃
맑은 영혼의 나무들이 등불을 달고
여름내 쌓인 시름을 지우고 있었네
서리 내릴 때 서리 내리고
스러지는 파도가 다시 일어서는 것처럼
지나간 세월이 내일의 꿈이 될 수 있을까
먼 길이 다가서는 산에 혼자 서 있었네.

 

 

洪海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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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산 님의블로그(http://blog.daum.net/dongsan50)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