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시집 『봄, 벼락치다』(2006 )에서 · 3

洪 海 里 2009. 10. 27.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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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洪海里 시인  

   시집  『봄, 벼락치다』 2006  에서

 

봄, 벼락치다 / 洪海里

  천길 낭떠러지다, 봄은.

  어디 불이라도 났는지
  흔들리는 산자락마다 연분홍 파르티잔들
  역병이 창궐하듯
  여북했으면 저리들일까.

  나무들은 소신공양을 하고 바위마다 향 피워 예불 드리

는데 겨우내 다독였던 몸뚱어리 문 열고 나오는게 춘향이

여부없다 아련한 봄날 산것들 분통 챙겨 이리저리 연을

엮고 햇빛이 너무 맑아 내가 날 부르는 소리,

  우주란 본시 한 채의 집이거늘 살피가 어디 있다고

새 날개 위에도 꽃가지에도 한자리 하지 못하고 잠행하는

바람처럼 마음의 삭도를 끼고 멍이 드는 윤이월 스무이틀

이마가 서늘한 북한산 기슭으로 도지는 화병,

  벼락치고 있다, 소소명명!

 

 

필삭筆削 / 홍해리

철새는 천리 먼 길 멀다 않고 날아간다
길 없는 길이 길이라 믿고

必死的이다.

더 쓸 것 쓰고 지울 것 지우며
막무가내 날아가는 시인의 길, 멀다!

 

 

목련꽃, 지다 / 홍해리

목련아파트 101동 1001호
창 밖만 바라보던 눈먼 소녀
목련꽃 하얗게 피었다
이울던 저녁
달빛을 타고 뛰어내렸습니다
면사포를 쓰고
결혼식을 기다리던 신부
소리 소문 없이 져 버렸습니다
하염없는 봄날은 자꾸 저물고
길 위에서 꿈꾸기 위하여
무작정 뛰어내렸다고
소문만, 하냥, 귀가 아픕니다.

 

~*Convallaria Majalis*~

 

처녀치마 / 홍해리

철쭉꽃 날개 달고 날아오르는 날
은빛 햇살은 오리나무 사이사이
나른, 하게 절로 풀어져 내리고,
은자나 된 듯 치마를 펼쳐 놓고
과거처럼 앉아 있는 처녀치마
네 속으로 한없이 걸어 들어가면
몸 안에 천의 강이 흐르고 있을까
그리움으로 꽃대 하나 세워 놓고
구름집의 별들과 교신하고 있는
너의 침묵과 천근 고요를 본다.

 

~*Viola Tricolor*~

 

그런 詩! / 홍해리

거문고가 쉴 때는
줄을 풀어
절간 같지만
노래할 때는 팽팽하듯이,

그런 詩!

말의 살진 엉덩이에
'默言'의 火印을 찍는다
言語
道斷이다.

 

~*Windflowers*~

 

시월 하순 - 瑞雨에게 / 홍해리

'상원사 골짜기
오대산장
곱게 미친 계집들이 물가에 앉아
오줌을 싸고 있다.'

어디서 연지 곤지 다 훔쳐다
덕지덕지 찍어바르고
바락바락 발악을 하고 있는
저 화냥년들.

* 첫연은 서우 이무원 시인의 글 

 

                                                                             ******* 이무원 시인

숫돌은 자신을 버려 칼을 벼린다 / 홍해리


제 몸을 바쳐
저보다 강한 칼을 먹는
숫돌,

영혼에 살이 찌면 무딘 칼이 된다.

날을 세워 살진 마음을 베려면
자신을 갈아
한 생을 빛내고,

살아 남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서로 맞붙어 울어야
비로소 이루는
相生,

칼과 숫돌 사이에는 시린 영혼의 눈물이 있다.

 

rose in pink minor

 

둥근잎나팔꽃 / 홍해리

아침에 피는 꽃은 누가 보고 싶어 피는가
홍자색 꽃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고, 한 번,
가는 허리에 매달려 한나절을 기어오르다
어슴새벽부터 푸른 심장 뛰는 소리---,
헐떡이며 몇 백 리를 가면
너의 첫입술에 온몸이 녹을 듯, 허나,
하릴없다 하릴없다 유성처럼 지는 꽃잎들
그림자만 밟아도 슬픔으로 무너질까
다가가기도 마음 겨워 눈물이 나서
너에게 가는 영혼마저 지워 버리노라면
억장 무너지는 일 어디 하나 둘이랴만
꽃 속 천리 해는 지고
타는 들길을 홀로 가는 사내
천년의 고독을 안고, 어둠 속으로,
뒷모습이 언뜻 하얗게 지워지고 있다.

 

   

 

비 그친 오후 - 嬋娟歌 / 홍해리

집을 비운 사이
초록빛 탱글탱글 빛나던 청매실 절로 다 떨어지고
그 자리
매미가 오셨다, 떼로 몰려 오셨다

조용하던 매화나무
가도 가도 끝없는 한낮의 넘쳐나는 소리,
소낙비 소리로,
나무 아래 다물다물 쌓이고 있다

눈물 젖은 손수건을 말리며
한평생을 노래로 재고 있는 매미들,
단가로 다듬어 완창을 뽑아대는데, 그만,
투명한 손수건이 하염없이 또 젖고 젖어,

세상모르고
제 세월을 만난 듯
쨍쨍하게 풀고 우려내면서
매미도 한철이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인가

비 그친 오후
일제히 뽑아내는 한줄기 매미소리가
문득
매화나무를 떠안고 가는 서녘 하늘 아래,

어디선가
심봉사 눈 뜨는 소리로 연꽃이 열리고 있다
얼씨구! 잘한다! 그렇지!
추임새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 선연嬋娟 :
매미를 이르는 말은 '蟬蜎'이나 매미의 자태가 예쁘다 하여

'嬋娟'이라고도 함.

 

Searching .....

 

中伏 / 홍해리

그 여자,

깜빡
정신을 놓았는지

매화나무
우듬지

바락바락
발악을 하고 있는

저 매미!

 

 

추억, 지다 / 홍해리

한여름 다 해질녘
봉숭아 꽃물을 들인다
꽃을 따 누이의 손톱마다
고운 물을 들인다
이쁜 반달 손톱 속에는 벌써
첫눈이 내린다
매미 소리 한철 같은 누이의
첫사랑이 내린다
추억이 짓는 아스라한 한숨소리
손톱 속으로 스며들고
손가락 꼭꼭 싸맨 그리움이
추억추억 쌓이고 있다
해 설핏한 저녁에 꽃물을 들이는
눈썹 마당에 이는 바람인 듯
슬슬슬 어스름이 내릴 때
가슴속에선 누가 북을 치고 있는지
다소곳 여민 적삼 안으로
그리움이 스멀스멀 스며들고
입술 촉촉 젖어 살짝 깨무는 소리
어스레한 누이의 젖은 눈가로
봉숭아꽃 하나 둘 지고 있었다

 

Perfume of storm

 

下山 - 閑居日誌 10 / 홍해리

 

까막산 求路庵에서
하산하다
이곳이 선계
사람 사는 곳
진흙구렁이라도 정답고
개똥밭이라도 좋다
구로암에서 길을 찾는 일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내 마음속으로 나 있을 뿐
불 없는 고행길은 끝이 없고
짐승들 울부짖는 소리만
산천에 가득하다
하루 종일 잠들지 못하고
암흑의 깊은 골짜기
나는 내려간다
내 마음속의 길을 따라
세상은 그래도 푸르고 환하다
아직은 따뜻하다.

난타 / 홍해리


양철집을 짓자 장마가 오셨다
물방울 악단을 데리고 오셨다
난타 공연이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빗방울은 온몸으로 두드리는 하늘의 악기
관람하는 나무들의 박수소리가 파랗다
새들은 시끄럽다고 슬그머니 사라지고
물방울만 신이 나서 온몸으로 울었다
천둥과 번개의 추임새가 부서진 물방울로
귀명창 되라 귀와 눈을 씻어주자
소리의 절벽들이 귀가 틔여서
잠은 물 건너가고 밤은 호수처럼 깊다
날이 새면 저놈들은 산허리를 감고
세상은 속절없는 꿈에서 깨어나리라
깨어지면서 소리를 이룬 물방울들이
다시 모여 물의 집에 고기를 기르려니,

방송에선 어디엔가 물 난리가 났다고
긴급 속보를 전하고 있다
若水가 水魔가 되기도 하는 생의 변두리
나는 지금 비를 맞고 있는 양철북이다.

 

Rhino

 

매화나무 책 베고 눕다 / 홍해리

겨우내 성찰한 걸 수화로 던지던 성자 매화나무
초록의 새장이 되어 온몸을 내어 주었다
새벽 참새 떼가 재재거리며 수다를 떨다 가고
아침 까치 몇 마리 방문해 구화가 요란하더니
나무 속에 몸을 감춘 새 한 마리
끼역끼역, 찌익찌익, 찌릭찌릭! 신호를 보낸다
'다 소용없다, 하릴없다!'는 뜻인가
내 귀는 오독으로 멀리 트여 황홀하다
한 치 앞도 모르는게 인생이라는데
고요의 바다를 항해하는 한 잎의 배
죄 되지 않을까 문득 하늘을 본다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입술들, 혓바닥들
천의 방언으로 천지가 팽팽하다, 푸르다
나무의 심장은 은백색 영혼의 날개를 달아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언어의 자궁인 푸른 잎들
땡볕이 좋다고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파다하니 뱉는 언어가 금방 고갈되었는지
적막이 낭자하게 나무를 감싸안는다
아직까지 매달려 있는 탱탱한 열매 몇 알
적멸로 씻은 말 몇 마디 풀어내려는지
푸른 혓바닥을 열심히 날름대고 있다
바람의 말, 비의 말, 빛의 말들
호리고 감치는 품이 말끔하다 했는데
눈물에 젖었다 말랐는지 제법 가락이 붙었다
그때,
바로 뒷산에서 휘파람새가 화려하게 울고
우체부 아저씨가 다녀가셨다
전신마취를 한 듯한, 적요로운, 오후 3시.

 

Rhino

 

5월에 길을 잃다 / 홍해리

팍팍한 길 나 홀로 예까지 왔네
나 이제 막막한 길 가지 못하네
눈길 끄는 곳마다
찔레꽃 입술 너무 매워서
마음가는 곳마다
하늘 너무 푸르러 나는 못 가네.

발길 닿는 곳마다 길은 길이니
갈 수 없어도 가야 하나
길은 모두 물로 들어가고
산으로 들어가니
바닷길, 황톳길 따라 가야 하나
돌아설 수 없어 나는 가야 하나.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가나.

 

ant

 

꽃 진 봄 / 홍해리


花砲 터지는 소리, 일순, 뜨거웠다
번개 번쩍,
천둥 치고
날이 들자
유방을 들어낸 여자
젖 하나 드러낸 여자
밖에서 오소소 떨고 있었다
이제는 여자도 아니라고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자욱한 포연 같은
해방된 슬픔,
젖은 빈 가슴속에 묻으며
無花果 한 알 달고 있는
생과부 같은 저 女子!

 

 

隱者의 꿈 / 홍해리

산 채로 서서 적멸에 든
고산대의 朱木 한 그루,

타협을 거부하는 시인이
거문고 줄 팽팽히 조여 놓고
하늘棺을 이고
설한풍 속 추상으로 서 계시다.

현과 현 사이
바람처럼 들락이는
마른 울음
때로는
배경이 되고
깊은 풍경이 되기도 하면서,

듣는 이
보는 이 하나 없는
한밤에도 환하다
반듯하고 꼿꼿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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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리 시인

블로그/ http://blog.daum.net/hong1852

카페  / http:// cafe.daum.net/urisi 

 

* 최병무 시인의 블로그(http://blog.daum.net/dongsan50)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