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시집 『황금감옥』(2008)에서 · 1

洪 海 里 2009. 11. 4. 04:49

 

洪海里 시인  

   시집 『황금감옥』(2008)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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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감옥黃金監獄 / 홍해리


 

나른한 봄날
코피 터진다

꺽정이 같은 놈
황금감옥에 갇혀 있다
금빛 도포를 입고
벙어리뻐꾸기 울듯, 후훗후훗

호박벌 파락파락 날개를 친다

꺽정이란 놈이 이 집 저 집 휘젓고 다녀야
풍년 든다
언제

눈감아도 환하고
신명나게 춤추던 세상 한 번 있었던가


호박꽃도 꽃이냐고
못생긴 여자라 욕하지 마라
티끌세상 무슨 한이 있다고
시집 못 간 처녀들
배꼽 물러 떨어지고 말면 어쩌라고


시비/柴扉 걸지 마라
꺽정이가 날아야
호박 같은 세상 둥글둥글 굴러간다

황금감옥은 네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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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을 찾아서 / 홍해리

꽃밭에서 온 바람은 흔들리고 있었다
얼마를 쉬임없이 흔들리다가
비누방울 속
금빛 고독의 황홀감으로
곤한 적막을 찾아서
바람은 비단길을 달리고 있었다
아름다움은 순간에 정지한다는 것을
찰나를 잡으려면
눈을 감아야 한다는 것을
심연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순간을 정지시켜야 한다는 것을
바람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왜 바람이 비누방울 속으로 들어가
무지개를 피워 올리는지
하늘에 뿌리내리는 작은 사랑도
아주 작은 사랑도
때로는 땅속 깊이 쉬고 싶어
달막달막하는 것을, 그리하여
다문다문 내려앉아
밤새 저린 팔로 가위눌려 허덕이면서
완전한 합일을 위하여
하늘 위 보물선을 찾아
다시 비누방울 속으로 떠나는 것을
무지개를 타는 바람이 되는 것을!

 

Guacamayas - The Art of Nature

 

벌초를 하며 / 홍해리

아버지 어머니는 풀벌레를 기르고 계셨다
두 분 누워 계신 풀집의 풀들을 베어내자
귀뚜라미 여치 메뚜기 방아깨비 베짱이
여기저기 펄쩍펄쩍 뛰며 항의하고 있었다
두 분 가실 때 나나 아우들의 모습이었다
기다려다오! 푸른 풀이 다시 돋아날 때를
달빛이 온 세상을 가득 채워줄 한가위면
온갖 열매 둥글게 영글어 향기로운 저녁녘
너희들을 다시 불러 모아 음악회를 열리니
기다려다오! 우주의 악사인 풀벌레들이여!

 

I don't expect any guests

 

우이도원牛耳桃源에 오르며 / 홍해리

누구에게나 한때는 있다
지나고 나서
그때가 좋았다는
그때가 한때다

우이도원 오르는 길
폭포를 세우고 있는
물소리 앞에 앉아
단소 가락에 젖는 한나절

하늘 푸르러 가락이 길고
물은 나즉나즉 노래를 감싸는데
구비구비 흐르다 보면 우리도
꺽꺽꺽 막히며 꺾이기도 하고

노래도 때로는 멎지 않더냐
햇발 통통통 튀어나오는 곳
오늘은 물로 집 한 채 지어 세우니
눈부시다, 눈부시다

늦매미들 늦게 나온
오리나무 우듬지
푸른 물소리 위에 앉아 떼로 울며
물칼을 갈고 있다.

 

Toucan

 

귀뚜라미 통신 / 홍해리

지상에 맺는 이슬 차게 내릴 때
가슴 저린 달빛 천리
올올이 엮어 비단, 비단 짜더니

추분 무렵
계절 깊어 하늘 높으면
울음도 투명하니 불꽃이 되나

떫은맛 비린내도 잦아드는
풀잎마다 울리는 피리 가락
지독한 서름으로 적막을 잣네

가슴속 갈피갈피 울어쌓던 바람소리
나무마다 불립문자 스스로 타는
머언 산 등성마루 짓찧는 산빛 엮어,

저무는 고향길, 가을 물길로
엽서 적어 띄워 보내네
그 엽서 채운彩雲 피워 하늘만 하네.

 

Leading Actor in Assisi

 

점심 / 홍해리

그해 겨울
바다에 갔다
너를 보지 못하고 돌아와

혼자서 드는 늦은 매나니
사부랑삽작 건너뛰지 못하고
마음에 점 하나 찍는 일 버겁구나

사그랑이 다 된 생이라도
살 가운데 이우는 일
살가운데 어쩌겠느냐

우련 잦아질 흔적 하나
함지咸池 속으로 몸을 떨군다
하동하동 지는 해처럼

 

full moon

 

바다와 詩 / 홍해리

난바다 칠흑의 수평선은
차라리 절벽이어서
바다는 대승大乘의 시를 읊는데
나는 소승小乘일 수밖에야
죽어 본 적 있느냐는 듯 바다는
눈물 없는 이 아름다우랴고
슬픔 없는 이 그리워지랴고
얼굴을 물거울에 비춰보라 하네.

제 가슴속 맺힌 한
모두어 품고 아무 일도 없는 양
말 없는 말 파도로 지껄일 때
탐방탐방 걸어나오는 수평선
밤새껏 물 위에 타던 집어등
하나 둘 해를 안고 오는 어선들
소외도 궁핍도 화엄으로 피우는
눈 없는 시를 안고 귀항하고 있네.

 

before falling asleep

 

시수헌의 달빛 / 홍해리

소한小寒날 시수헌詩壽軒에 모인 소인騷人
술판이 거나해지자
어초漁樵 처사 시수헌이 아니라 시주헌詩酒軒이군 하니
임보林步 사백 시술헌으로 하자 하네
서우瑞雨 사백 '수' 밑에 ㄹ(乙)자를 그려 넣었다
오, 우리들의 시수헌이여
'수'자에 획 하나 더해 '주'가 되든
받침 하나 붙여 '술'이 되든
시 속에 술이 있고
술 속에 시가 있어
시쟁이들의 시수헌은 따뜻하고
술꾼들의 시수헌은 눈부시다
오오,
시수헌의 달빛은 오늘밤도 푸르고 차다.

 

* 시수헌 : 월간『우리詩』의 편집실 


Adhivasi village in the Mewar Hills near Udaipur, Rajasthan...

 

곡우穀雨, 소쩍새 울다 / 홍해리

곡우哭憂,

뜬눈의 밤을 하얗게 밝혀
가슴속에 슬픔의 궁전 하나 짓는,

칠흑 날밤 피로 찍어 쌓아올린 탑
하릴없이 헐어내리는---,

소쩍새 울다.

 

 

* 저저지난해 穀雨(4/20)에 처음으로 뒷산에서 소쩍새가 울었다.

새벽 세시 소쩍새 울음소리에 잠이 깨다. 소쩍, 소옷쩍!

2005년에도 곡우는 4월 20일, 지난해도 곡우에 소쩍새가 울었다.

 

 

흰 모란이 피었다기 / 홍해리


모란이 피었다는
운수재韻壽齋 주인의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갔더니
금방 구름처럼 지고 말
마당가득흰구름꽃나무숲
저 영화를 어쩌나
함박만한 웃음을 달고
서 있는 저 여인
한세상이 다 네게 있구나
5월은 환하게 깊어가고
은빛으로 빛나는 저 소멸도
덧없이 아름답다

 

* 운수재 : 임보 시인의 집

 

Standing at Attention

 

영자를 위하여 / 홍해리

영자의 소리는 살아 있는데 얼굴이 없어
어릴 적 고향에서
'영자야, 들어와 밥 먹어라' 할 때나
'가마 타고 장가가기는 영 글렀네' 라 노래할 때
'영자'의 영자나
'영 글렀네'의 영자나
'영'자는 '영'자가 아니었다
ㅏ 다음에 ㅑ, ㅗ 다음에 ㅛ이듯
ㅡ 다음에는 =가 돼야 하지
=의 위아래에 ㅇ을 붙이면
고향사람들이 영자를 불러들일 때든
노총각들 신세타령 노래 부를 때
영자의 얼굴을 만날 수 있지
이런 소리 귀뜨는 이도 있겠지만
영자의 얼굴이 없어서야 쓰겠는가
영자를 위하여.

 

Looking for a job

 

밥 / 홍해리

밥은 금방 지어 윤기 잘잘 흐를 때
푹푹 떠서 후후 불며 먹어야
밥맛 입맛 제대로 나는 법이지
전기밥솥으로 손쉽게 지어
며칠을 두고 먹는 지겨운 밥
색깔까지 변하고 맛도 떨어진
그건 밥이 아니다 밥이 아니야
네 귀 달린 무쇠솥에 햅쌀 씻어 안치고
오긋한 아구리에 소댕을 덮어
아궁이에 불 지펴 나무 때어 짓는
아아, 어머니의 손맛이여,
손때 묻어 반질반질한 검은 솥뚜껑
불길 고르다 닳아빠진 부지깽이
후둑후둑 타는 청솔가리
설설 기는 볏짚이나 탁탁 튀는 보릿짚
참깻단, 콩깍지, 수숫대
풍구 바람으로 때던 왕겨 냄새 그리운 날
냉장고 뒤져 반찬 꺼내기도 귀찮아
밥 한 공기 달랑 퍼 놓고
김치로 때우는 점심 홀로 서글퍼
석달 열흘 가도 배고프지 않을
눈앞에 자르르 어른거리는 이밥 한 그릇
모락모락 오르는 저녁 짓는 연기처럼
아아, 그리운 어머니의 손맛!
그러나 세상은 그게 전부가 아닐세
시장이 반찬이라 하지 않던가
새들은 나무 열매 몇 알이면 그만이고
백수의 제왕도 배가 차면 욕심내지 않네
썩은 것도 가리지 않는 청소부
껄떡대는 하이에나도 당당하다
배고픈 자에겐 찬밥도 꿀맛이요
밥 한 술 김치 한 쪽이면 임금님 밥상
그러니 지상은 늘 우리의 만찬장이 아닌가.

 

Musician in London Underground

 

단칼을 기리며 / 홍해리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돌아서지 마라
당장은 후련하겠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또 만나지 않겠느냐
해방은 없다 자유도 없다
목숨 있는 동안은 빗장을 걸지 마라
다 산 것처럼 하지 마라
내일도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절정에서 눈부시던 것들
소멸의 순간은 더욱 곱고 아름다워야 한다
말도 글도 살아 있어 씨를 맺느니
함부로 말하지 마라 쓰지도 마라
당장 내뱉으면 시원하겠지만
배설의 쾌감으로 황홀하겠지만
나이들면 경지에 이른다들 하는데
눈이 흐려지고 귀가 멀어지니
이건 무슨 조화인가
안 보고 안 들어도 보이고 들린다는 것인가
와락, 달려들어 안고 싶은 것
비단 너뿐이겠느냐마는
와락와락 솟구치는 급한 마음에
함부로 떠나보내는 나를 용서해 다오
詩여
 
Gypsy Musicians
 
찬바람 불면 네가 그립다 / 홍해리

늦가을 초겨울에 생각나는 사람
고작 짝사랑하던 여자냐
아직도 그 여자 네 가슴속 물바다에
차란차란 출렁이느냐
어둔 밤 일렁이는 호롱불 하나
네 가슴에 밝혀 놓고
그을음 없이 타는 불길 꺼지지 않아
홀로 밤을 밝히고 있느냐
배꼽 아래 집 한 채를 위하여.

옆구리 시리다고
차 버린 사내가 생각나느냐
그 사내 여태까지 남 주기 아까워
여짓여짓 말을 묻느냐
강물 속으로 흐르는 강물
소리없이 흐르듯
한평생 건너지 못하는 강을
저녁 노을 타는 불에 그리고 있느냐
배꼽 위의 집 한 채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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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표 소주 / 홍해리

봄이 오셨다
젖빛 옷을 입고 오셨다
온몸에서 젖비린내가 진동한다
젖물이 뚝뚝 듣는다
아기들은 지상에서 가장 맑은 물방울을
하나씩 머리에 이고 있다
부산스럽지만 고요하다
아직 탯줄도 자르지 않은 몸짓이 앙증맞다
밤새도록
자궁 출렁이는 소리
우주의 뜨거운 양수가 하늘로 솟구쳤다
가슴속 은밀한 골짜기
암자의 돌담을 안고 날아오르는
사미니 한 년
사내도 없이 겁도 없이 봄을 낳으셨다.

봄이 오셨다
아지랑이 타고 오셨다
안개처럼 는개처럼 사라지고 있다
'봄'표 소줏병이 뜨거운 날개를 달고
하늘로 하늘로 날아가고 있다
금방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바람처럼 가볍다
연한 물빛 같은 봄이 오셨다
천국처럼 봄날이 오시고
지옥처럼 봄밤이 오셨다
새가 되고 싶은 사내는
제비꽃 음순만한 외로움을 안고
나른나른 아린 눈물에 젖고 있다
비워도 마음은 무심無心으로 남아
세상은 천국이고 지옥일 수밖에야!
 
 
                                                                                   

洪海里 시인

블로그/ http://blog.daum.net/hong1852

카페  / http:// cafe.daum.net/urisi

* 최병무 시인의 블로그(http://blog.daum.net/dongsan50)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