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시집『황금감옥』(2008)에서 · 2

洪 海 里 2009. 11. 4. 04:38

 

洪海里 시인  

   시집『황금감옥』(2008)에서

 

흔적痕跡 / 홍해리

너에게 상처를 주고 만 일
후회란 져 버린 꽃잎이거니
유수 청산에 흠만 내네
입술 준 찔레꽃 하얀 한숨소리
여물지 않는 마음은 어쩌나
마음먹고
청정도량 돌고 돌아도
마음 한 자락 다스리지 못하니
복장만 터지네
누가 복장을 지른다고
삶의 먼지만 자꾸 쌓여서
차라리 아득하면 보일라나
들릴라나
여민 가슴은 풀리지 않고
흔적만 남아
모란꽃 치마폭처럼 눈부시고 슬픈, 

 

 

Winding path......

 

벌건 대낮 / 홍해리

어제는 대서大暑
내일은 중복中伏
길가의 돌도 절로 크고
염소뿔도 녹아내리는
대서와 중복 사이
천지에 부끄러울 것 없고
창피할 것 하나 없어
훌훌 다 벗어제친 대낮
무더위가 가랑이를 쩍 벌리고 누워버렸다
물집에서 금방 나온 붕어 떼
입을 딱딱 벌리고 파닥이고
불길을 걸어
축 늘어진 황소 불알
천근만근의 영원으로
대서와 중복 사이
덜렁덜렁

그림자도 무겁다

 

DONES

 

비익조比翼鳥, 날다 / 홍해리

물 나간 갯벌 같은 병실에서

끼룩 끼이룩 끼룩 끼이룩
날이 들기를 기다리며
거동 못하는 남편의 수발을 드는
'ㄱ'자가 다 된 낡은 버커리
장성한 자식들 삐끔빼꼼 들렀다 가고
바퀴의자에 거푸집처럼 달라붙어
온종일 종종대며 맴돌고 있는
결국엔 가시버시뿐이라고
굽은 등 펴지도 못하면서
통증은 차라리 즐겨야 한다며
몸뚱이야 푸석푸석하지만
성긴 머리 아침마다 곱게 빗겨주는
거친 손
돌아다보면 죄될 일만 떠오르는
지난 세월의 푸른 하늘로
부부간은 촌수도 없는 사이라고
뭐니뭐니 해도 둘밖에 없다고
세월에 염장된 물새 두 마리
그믐달을 떠메고 날아가고 있다

 

chating

 

복사꽃 그늘에서/ 홍해리


돌아서서
새실새실 웃기만 하던 계집애
여린 봄날을 후리러
언제 집을 뛰쳐나왔는지
바람도 그물에 와 걸리고 마는 대낮
연분홍 맨몸으로 팔락이고 있네.

신산한 적막강산
어지러운 꿈자리 노곤히 잠드는
꿈속에 길이 있다고
심란한 사내 달려가는 허공으로
언뜻 봄날은 지고
고 계집애 잠들었네.

 

Home sweet home..........

 

詩를 먹다 / 홍해리

시집『봄, 벼락치다』가 나온 날 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거기가 여기인 초월의 세상,
꿈속에서였다
아흔아홉 편의 시를 몽땅 먹어치웠다
그래도 전혀 배가 부르지 않았다
이밥을 아흔아홉 사발을 퍼먹었더라면
아니 아흔아홉 숟가락만 떠먹었어도
배가 남산만해서
숨 쉬기도 힘들어 식식댔을 텐데
옆에 있던 노 대통령이 무언가 암시하고 있었다
곧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임보 시인은 대대로 야당이었다며
새로 나올 시론집의 목차를 보여 주었다
작고 시인과 생존 시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가나다 순의 맨 끝에 나도 언뜻 보였다
당근을 심은 밭가였다
제주도 어디인 듯 척박한 땅이었다
이생진 시인이 겨자씨만큼이나 작은 씨앗이 든
콩알만한 열매를 한 줌 쥐어 주었다
구황 식물이라면서 밭에 뿌려 두라고 했다
옆에 있던 황금찬 시인께서
오랫만에 나온 시집을 웃으며 축하해 주었다
시골집이었다
어머니가 지붕에 이엉을 얹고
마지막 용마름을 올리고 단단히 잡아매고 있었다

새벽 두 시,
이제『봄, 벼락치다』의 아흔아홉 편의 시는 사라지고 없다
구황 작물의 작디작은 씨앗을 뿌리러 나가야겠다
저 거친 황야로
개 짖는 소리 들리는 꼭두새벽에!

Sheep Bazar

 

미루나무 / 홍해리

1
반짝이는 푸른 모자
팍팍한 둑길
홀로
휘적휘적 걸어가던 아버지.


2
새로 난 신작로
차 지날 때마다
뽀얀 먼지 뒤집어쓴 채
멍하니 서 있던 아버지.

 

Seller Kissan

 

물의 뼈 / 홍해리


물이 절벽을 뛰어내리는 것은
목숨 있는 것들을 세우기 위해서다


폭포의 흰 치맛자락 속에는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가 있다


길바닥에 던져진 바랭이나 달개비도
비가 오면 꼿꼿이 몸을 세우듯


빈 자리가 다 차면 주저없이 흘러내릴 뿐
물이 무리하는 법은 없다


생명을 세우는 것은 단단한 뼈가 아니라
물이 만드는 부드러운 뼈다


내 몸에 물이 가득 차야 너에게 웃음을 주고
영원으로 가는 길을 뚫는다


막지 마라
물은 갈 길을 갈 뿐이다

 

 

만월滿月 / 홍해리

널 바라보던 내 마음이나
네 작은 가슴이 저랬더랬지
달빛 실실 풀리어 하늘거리는
비단 옷자락
안개 속에서
너는 저고리 고름을 풀고
치마를 벗고 있었지
첫날밤 연지 곤지 다 지워지고
불 꺼진 환한 방안
열다섯에 속이 꽉 차서
보름사리 출렁이는 파돗소리 높았었지
가득한 절정이라니
너는 눈을 감고
우주는 팽팽하니 고요했었지
미끈 어둠 물러난 자리
물컹한 비린내

창 밖엔, 휘영청,

보름달만 푸르게 밝았더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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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 홍해리

한 자리에 앉아 폭삭 늙었다

한때는 푸른 기운으로 이리저리 손 흔들며 죽죽 벋어나갔지
얼마나 헤맸던가
방방한 엉덩이 숨겨놓고
활개를 쳤지
때로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기도 했지
사람이 눈멀고 반하는 것도 한때
꽃피던 시절 꺽정이 같은 떠돌이 사내 만나
천둥치고 벼락치는 날개짓 소리에 그만 혼이 나갔겠다
치맛자락 뒤집어쓰고 벌벌 떨었지
숱한 자식들 품고 살다 보니
한평생이 별것 아니더라고
구르는 돌멩이처럼 떠돌던 빈털털이 돌이 아범 돌아와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을 뱉고 있다

곱게 늙은 할머니 한 분 돌담 위에 앉아 계시다.

 

 

개화開花 / 홍해리

바람 한 점 없는데
매화나무 풍경이 운다

아득한 경계를 넘어
가도가도 사막길 같은 날
물고기가 눈을 뜬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꽃 피는 소리에 놀라
허공에서 몸뚱이를 가만가만 흔들고 있다
꽃그늘에 앉아
술잔마다 꽃배를 띄우던
소인묵객騷人墨客
마음 빼앗겨
잠시 주춤하는 사이
뼈만 남은 가지마다
폭발하는,

오오, 저 푸른 화약花藥 내!

 

 

박태기꽃 터지다 / 홍해리

누가 태기라도 쳤는가
가지마다
펑펑펑
박 터지는 소리

와글와글
바글바글
우르르우르르 모여드는
시뻘건 눈들

조팝나무도 하얀 수수꽃다리도
휘청거리는 봄날

"뻥이야!"

"펑!"

먼 산에 이는 이내.

 

P 273 Last rays in Tuscany

 

머나먼 슬픔 / 홍해리

나무들은 꼿꼿이 서서 꿈을 꾼다
꿈에 젖은 숲은 팽팽하다

숲이 지척인데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고
적막에 들지 못하고
지천인 나무들에 들지 못하고

눈을 들면
푸른 게릴라들이 국지전 아닌 전면전을 감행하고 있다

녹음 아래 노금노금 가고 있는
비구니의 바구니 안
소복히 쌓이는 그늘,

그늘 속으로 이엄이엄 질탕한 놀음이 노름인 줄 모르는
한낮의
머나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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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石榴 / 홍해리


줄 듯
줄 듯

입맛만 다시게 하고
주지 않는

겉멋만 들어
화려하고

가득한 듯
텅 빈

먹음직하나
침만 고이게 하는

얼굴이 동그란
그 여자

입술 뾰족 내밀고 있는.

 

 

 

 

옥쇄玉碎 / 홍해리

곡우穀雨와 입하立夏 사이
잔마다 꽃배 띄우고
소만小滿과 망종芒種 사이
청매실 다 땄는데,

소서小暑에 찬물로 목물하고
평상에 누으니
노랗게 익은 매실 한 알, 뚝,
이마에 청매실 하나 열렸다.

풍경風磬이 절로 울어
붕어가 온몸으로 웃고 있다
꽃 피고 열매 맺고 떨어지는
생生의 일장춘몽이라고,

뎅, 뎅,
뎅그렁, 뎅그렁!
우는 소리 움켜쥐다
반짝이는 비늘에 잠이 깨었다.

 

LOOKING FORWARD, LOOKING INWARD

 

귀북은 줄창 우네 / 홍해리

세상의 가장 큰 북 내 몸속에 있네
온갖 소리북채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 대는 귀북이네

한밤이나 새벽녘 북이 절로 울 때면
나는 지상에 없는 세월을 홀로 가네

봄이면 꽃이 와서 북을 깨우고
불같은 빗소리가 북채가 되어 난타공연을 하는 여름날
내 몸은 가뭇없는 황홀궁전
둥근 바람소리가 파문을 기르며 굴러가는 가을이 가면
눈이 내리면서 대숲을 귓속에 잠들게 하네

너무 작거나 큰 채는 북을 울리지 못해
북은 침묵의 늪에 달로 떠오르네

늘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북,
때로는 천 개의 섬이 되어 반짝이고 있네

 

 

해질 녘 / 홍해리

 

꽃들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팽팽하다

서늘한 그늘에서도

어쩌자고 몸뚱어리는 자꾸 달뜨는가


꽃 한 송이 피울 때마다

나무는 독배를 드는데

달거리하듯 내비치는 그리운 심사


사는 일이 밀물이고 썰물이 아니던가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세상

하늘과 땅 다를 것이 무엇인가


가만히 있어도

스스로 저물어 막막해지는

꽃그늘 흔드는 해질녘 풍경소리

 

 

Cherry Blossom

 

洪海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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