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시> 계영배戒盈杯 외 5편

洪 海 里 2009. 12. 25. 10:24

 

계영배戒盈杯 / 홍해리 

 

속정 깊은 사람 가슴속

따르고 따루어도 가득 차지 않는

잔 하나 감춰 두고

한마悍馬 한 마리 잡아 타고

먼 길 같이 떠나고 싶네

마음 딴 데 두지 마라, 산들라

세상에 가장 따순 네 입술 같이나

한잔 술이 내 영혼을 데우는 것은,

불꽃으로 타오르는 그리움처럼

줄지도 넘치지도 않는 술잔 위로

별들이 내려 빙글빙글 도는 것은,

무위無爲도 자연自然도 아니어서

내 마음이 텅 비어 있기 때문인가

은자隱者의 눈빛이나 미소처럼

입안 가득 번지는 넉넉한 향을

눈물로 태울까 말씀으로 비울까

온몸으로 따루어도

채워지지 않고 비워지지 않는

잔,

깊고 따뜻한 너.

 

cuban break

  

황태의 꿈 / 홍해리

아가리를 꿰어 무지막지하게 매달린 채
외로운 꿈을 꾸는 명태다, 나는
눈을 맞고 얼어 밤을 지새고
낮이면 칼바람에 몸을 말리며
상덕 하덕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만선의 꿈
지나온 긴긴 세월의 바닷길
출렁이는 파도로 행복했었나니
부디 쫄태는 되지 말리라
피도 눈물도 씻어버렸다
갈 길은 꿈에서도 보이지 않는
오늘밤도 북풍은 거세게 불어쳐
몸뚱어리는 꽁꽁 얼어야 한다
해가 뜨면
눈을 뒤집어쓰고 밤을 지샌 나의 꿈
갈갈이 찢어져 날아가리라
말라가는 몸속에서
난바다 먼 파돗소리 한 켜 한 켜 사라지고
오늘도 찬 하늘 눈물 하나 반짝인다
바람 찰수록 정신 더욱 맑아지고
얼었다 녹았다 부드럽게 익어가리니
향기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
뜨거운 그대의 바다에서 내 몸을 해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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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어증失語症 / 홍해리 

 

얼마나 싫으면 말을 잊는가

싫다 싫어 나는 네가 싫다 구름이 말한다

그래 그래 나도 네가 싫다 바람이 말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

나와 우주 사이

꽃과 나무와 새가 말이었고

하늘과 바다와 산이 말이었다

밥과 사랑과 미움과 그리움이 말이었다

웃음과 울음과 아픔과 기쁨이 말이었다

실어증에 걸린 사람들의 눈에는

풍경은 흔들리기만 할 뿐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눈을 뜨고 자는 붕어가 말한다

세상이란 내 옆에 네가 있고

나 아니면 너라고, 아니 우리라고

무엇으로 입을 떼어 말문이 트이게 하나

모두가 절단났다고 절벽으로 뛰어내리고 있다

이제는 절망이라고 울음을 터뜨려도

말을 잊은 너는 듣지 못한다

한때는 침묵도 멋진 말이었지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을 얼떨결에 말해도 말이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잘못 말한 것도 말인데

싫다고 싫다고들 말을 하지 않는다

싫어! 싫어!가 실어失語를 실어 오는

적막한 세상.

the indifferents

 

빈집에는 그리움이 살고 있다 / 홍해리

 

발자국 소리 가까이 오고 있는지

찻소리 들리는지

귀마다 가득가득 이명이 울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앞산을 바라보나

첩첩하기 그지없고

하늘을 올려다봐도

막막하기 하릴없다.

 

여보세요, 계세요, 문을 두드려도

개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쥐 죽은 듯 하오의 햇살만 놀고 있는

텅 빈 마당 한 켠

살구나무가 주인을 기다리다

팔을 뻗어 바깥세상으로

살구 몇 알 떨어뜨렸다.

Jurassic

 

한 끼 식사 / 홍해리 

 

겨우내 이 나무 저 나무로

동가식서가숙하던

직박구리 한 쌍

매화꽃 피었다고 냉큼 찾아왔다

 

여름도 한겨울이던 50년대

물로 배를 채우던 시절

꿀꿀이죽은 꿀꿀대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맛이야 꿀맛이 아니었던가

 

가지마다 사푼사푼 옮겨앉아

꽃치마 속에 뾰족한 부리를 박고

쪽쪽, 쪽쪽! 빨고 있다

참 아름다운, 황홀한 식사다

 

놀란 꽃송이들 속치마까지 홀홀

벗어 던지니

이른 봄날 마른 하늘에 눈 내린다

금세 매화나무 배불러 오겠다.

 

 

  

하현下弦 / 홍해리

초겨울 호수 아래
깊은 잠 속
물고기 한 마리
반짝
얼음장 위로 뛰어올랐다.

머릿속에 밤새 반짝이던
시 한 편
번뜩
눈을 뜨는
시월 스무사흘 새벽,

날빛을 세운 채
또랑또랑 눈뜨고
떠 있는
하늘바다의 눈썹
냉염冷艶함이라니!

 

Jerusalem's street X.

 

* 洪海里 시인

블로그/ http://blog.daum.net/hong1852

카페  / http:// cafe.daum.net/urisi 

 * 동산 최병무 시인의 블로그(http://blog.daum.net/dongsan50)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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