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시화> 첫눈 外 4편

洪 海 里 2009. 12. 21. 21:58

 

첫눈 / 홍해리

 

하늘에서 누가 피리를 부는지

그 소리가락 따라

앞뒷산이 무너지고

푸른빛 하늘까지 흔들면서

처음으로 처녀를 처리하고 있느니

캄캄한 목소리에 눌린 자들아

민주주의 같은 처녀의 하얀 눈물

그 설레이는 꽃이파리들이 모여

뼛속까지 하얀 꽃이 피었다

울음소리도 다 잠든

제일 곱고 고운 꽃밭 한가운데

텅 비어 있는 자리의 사내들아

가슴속 헐고 병든 마음 다 버리고

눈뜨고 눈먼 자들아

눈썹 위에 풀풀풀 내리는 꽃비 속에

젖빛 하늘 한 자락을 차게 안아라

빈 가슴을 스쳐 지나는 맑은 바람결

살아 생전의 모든 죄란 죄

다 모두어 날려 보내고

머릿결 곱게 날리면서

처음으로 노래라도 한 자락 불러라

사랑이여 사랑이여

홀로 혼자서 빛나는 너

온 세상을 무너뜨려서

거대한 빛

그 無地한 손으로

언뜻

우리를 하늘 위에 와 있게 하느니.

                     - 시집『花史記』(1975)

 

 

첫눈은 신파조로 온다 / 홍해리

  

드디어

그대가 오고

신파조로

첫사랑 순정으로


처음 그대를 맞는

떨리는 눈빛

속살빛 바람


무슨 명사가 필요하랴

아니, 감탄사가 필요하랴

설레이는 부끄러움


촉촉한 입술 사이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어

천지가 향기롭구나


휘청대는 대지 위

목숨 걸고 내리는 너

언뜻 와 닿는

서늘한 손길


네 눈빛이 터져

허공에 뿌려지는

여기는

백옥의 궁전

그대는 초야의 왕비


눈을 감고 있어도

더욱 황홀한 영혼으로

그대는 온다

신파조로

첫사랑 순정으로.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겨울을 찾아서 / 홍해리

 - 小雪

 

다시 서른한 번의 가을이 가고

나의 곳간은 여전히 텅 비어 있다

귀밑머리 허옇게 날리는 억새밭

삽상한 바람소리 잔잔해지고

산에도 들에도 적막이 잦아들면

나 이제 돌아가리 고향 찾아서

하얗게 눈이 내린 휴식의 계절

고요가 울고 있는 암흑 속으로

부르르부르르 경련을 하던

내 오전의 미련, 미련없이 던지고

천의 바다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나 이제 돌아가리 영원을 찾아.

        -시집『푸른 느낌표!』(2006)

 

 

겨울 속에서 / 홍해리

 - 틈새

 

어린 나무 짚으로 감싸주고

김장 담그고

메주 쑤고

문마다 창호지 꽃잎 넣어 바르고,

 

잠들던 어린 시절

장작더미 쌓인 돌담 지나

찬바람 문풍지 울릴 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밤 지나면

창호지마다 배어오던,

 

햇볕의 따스함이여

내 마음의 틈새여!

 


 

보리밭 / 홍해리

 

1
大地母神의 품 안
土壤酸性의 이랑마다
늦가을 햇살만 기운 채 빗기고 있었다

가랑잎을 갉아 먹으며
산자락을 휘돌아 온
앙상한 뼈바람이
풋풋한 흙 속의 한 알 보리를 흔들어
잠을 깨우고 있었다

다섯 뿌리 하얀 종자근이
발을 뻗어내리는 속도따라
햇살은 점점 기울어져
조금씩 母神의 품으로 내리고 있었다.

 


2
두견새 목청 트이는
동지 섣달
칠흑빛 어둠을 뚫고
겨울을 털어내리는
하얀 눈은 내려 쌓이고,
깃털, 꽃머리, 비늘잎도 모두
밑둥마디에 묻어두고
한 치 땅 속에서 언 발을 호호 부는 소리

아직은 잠결,
유년 시절 고호의 손가락 같은
하얀 이파리들
골로만 모여 쌓여 있는
바람의 넋을 불러내어,
들뜨는 팔다리를 눌러 앉히며
미루나무 물 오를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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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손톱 같은 달이
모과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부황이 든 얼굴
부러진 팔과 다리가 규폭마다 일어서고 있었다

짝 잃은 신발 한 짝
지난 겨울 아이들이 놓치고 간
연줄을 잡고 있었다
잠깨어 목마른 아우성에
강도 마르고
불처럼 이는 함성

새벽새의 울음소리
신선한 벌판
3월은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4
어디선가
종달새 노래가 밝게 쌓이고 있었다

하늘의 시녀들이 부르는 노래 -----

몸뚱어리도 질박한 처녀처럼
뒹굴어도
껴안고 뒹굴어도
물들지 않을 바다
때깔 곱게 익고 있었다

밭 둑 미루나무
물이 올라
이파리마다 눈이 부신 정오
바람에 옆구릴 간질린
나비 한 마리
부산히 하늘을 털어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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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햇볕이 
땡땡땡 울고 있었다

대창을 든 병사들처럼
갈구리까락을 받쳐 들고
아이들이
그을음없이 타는 油畵,
황금 벌판을 파도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미친 듯한 반 고호의 自由
넓은 밭마다 가득 차고
한켠으론
黃土ㅅ빛 고개가 보였다
반만년 오른 고개가 보였다
찌르륵 찌륵,
여치가 한낮을 걸르고 있었다.

         - 시집『花史記』(1975)


洪海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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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산 최병무 시인의 블로그(http://blog.daum.net/dongsan50)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