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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사랑에게

洪 海 里 2010. 2. 5. 05:16

<시가 있는 풍경> 사랑에게 / 홍해리

☞  서울일보 2010. 2. 5. (금요일)자

 

 

               詩가 있는 풍경

 

                  

      사랑에게

                                       洪海里 

 

 

써레질을 잘 해 놓은 무논처럼  

논둑 옆에 기고 있는 벌금자리처럼 

벌금자리 꽃이 품고 있는 이슬처럼  

이슬 속 천년의 그 자리 그냥 그대로

 

 

 

 

 

 

시 읽기

 '사랑에게' 짧은 네 줄의 시가 얼핏, 사랑에 대한 대비로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행간에 숨어 있는 주제가 생명과 삶의 존재감, 즉 자존에 대한 사랑의 근본과 궁극을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써레질은 논에 물을 대고 모를 심기 직전 쟁기로 흙을 잘게 부수고 논바닥을 고르는 일이다. 써레질이 잘된 무논에서 건강한 벼가 자라 듯 마음의 써레질이 잘되어 있으면 건강한 사랑을 가꿀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잘 것을 없는 벌금자리꽃은 물론, 그 조그만 꽃이 품고 있는 이슬에도 우주가 다 들어 있는 것처럼, 어떤 존재와 어떤 감정도 존재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하면 찰나적 순간일망정 천년이 지나도  그 자리 그대로일 수 있는 것이다.

 촌스럽고 쪼끄만 순수 토종들꽃인 벌금자리꽃, 새하얀 여린 꽃이 고요한 우주로 쭉쭉 벋어가고 있는 것은 생명의 본질이다. 벌금자리꽃 자체가 하나의 우주를 품고 있는 것이며, 또 하나의 우주가 되어 논둑을 기고 있는 것은 생명의 본질이다. 생명의 본질은 사랑이며, 살아 있음 자체가 사랑이다.

 시인은 지금 이 짧은 네 줄의 대비로 생명과 자존에 대한 사랑의 근본과 궁극인 우주적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生일지라도 태어남에서부터 존귀한 것이다. 하물며 사람으로 태어난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고, 함께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것이 사람의 근본이며 생명의 본질이 아닐까?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