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비밀』2010

<시> 킬리만자로

洪 海 里 2010. 2. 7. 16:00

킬리만자로

 

洪 海 里

 

  

사랑하는 킬리야, 그리고 만자로야!

오늘은 호텔 킬리만자로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고독한 표범의 우는 소리도 듣고

날밤날밤 지새우며 인생을 이야기 하자.

 

삶이란 '길이 만[尺]'이니

눈물로도 씻어지지 않는 슬픔이고 아픔인  거야 

뒤돌아보면 늘 하늘이 은유로 푸르게 펼쳐져 있고

위로와 화해의 말은 절망과 상처의 절벽이었다

결별을 위해 정상으로 오르고 있는 외로운 표범

오를수록 심장 박동의 고도는 높아지고

욕망과 희망의 눈 덮인 봉우리는 코앞에 있었지만

정상은 어두운 열대림의 길 없는 길을 찾아야 하고

먼지바람 이는 고뇌의 사막을 지나

빙하의 무서운 길을 별빛 아래 걸어야 했다

구름바다를 건너 얼음산에서는 어름사니가 돼야 했다

킬리만자로의 빛나는 이마처럼

사랑은 앞에서 환히 타오르고 있었지만

아지랑이 오로라의 환영 같은 풍경일 뿐이었다

작은 꽃들이 잡풀 속에 지천으로 피어

새소리 물소리를 그리움으로 불러오고 있었지만

번개 치고 천둥 울고 벼락 때리는 음모의 길이었다

신록은 금세 천신과 만고로 단풍 들고

사랑은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 청춘이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금방 동장군의 말발굽소리가 요란했다

영광의 봄인가 싶으면 적빈의 겨울이었고

비굴의 무더위를 지나는가 하면

서리 찬 하늘에 철새들이 열 지어 날며 울었다

한 발짝 오르면 늘 두 발짝씩 미끄러져 내리는

헐떡이는 삶이란, 사랑이란 그런 것이었다

자유를 찾기 위한 피나는 싸움이었지만

언제나 구속과 속박의 쾌감을 비겁하게 만끽해야 했다

길이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긴 꼬리를 끌며 사라지는 별똥별처럼

언젠가는 끝에 이르기 마련이어서

정상도, 절정도 없는 인생은 금방 노을이었다

'뽈레 뽈레!'를 '빨리 빨리'로 잘못 들어도

만년설처럼 빛나는 사랑은

아름다운 표범을 불러 올려

썩지 않는 미라를 가슴속에 안겨주었다.

 

킬리야, 그리고 만자로야,

겨울이 없으면 봄은 오지 않는 법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겨울이 있기 때문이란다

오늘 밤도 킬리만자로엔 고독한 표범이 울고 있다.

  

 * '뽈레 뽈레' : '천천히 천천히, 느긋하게'라는 뜻의 탄자니아 현지어임.

 

 

- 시집『비밀』(2010, 우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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