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비밀』2010

<시> 시가 죽이지요

洪 海 里 2010. 2. 8. 05:15

 

시가 죽이지요

  

洪 海 里

 

 

시가 정말 죽이네요

시가 죽인다구요

 

내 시가 죽이라니

영양가 높은 전복죽이란 말인가

시래기죽 아니면 피죽이란 말인가

무슨 죽이냐구

식은 죽 먹듯 읽어치울 만큼 하찮단 말인가

내 시가 뭘 죽인다는 말인가

닦달하지 마라

죽은 밍근한 불로 천천히 잘 저으면서 끓여야

제 맛을 낼 수 있지

벼락같이 쓴 시가 잘 쑨 죽맛을 내겠는가

죽은 서서히 끓여야 한다

뜸 들이는 동안

시나 읽을까

죽만 눈독들이고 있으면

죽이 밥이 될까

그렇다고 죽치고 앉아 있으면

죽이 되기는 할까

쓰는 일이나 쑤는 일이나 그게 그거일까

젓가락을 들고 죽을 먹으려 들다니

죽을 맛이지 죽 맛이 나겠는가

저 말의 엉덩이같은 죽사발

미끈 잘못 미끄러지면 파리 신세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사발이 되지

시를 쓴답시구 죽을 쑤고 있는 나

정말 시가 죽이 되어 나를 죽이는구나

쌀과 물이 살과 뼈처럼

조화를 이루어야 맛있는 죽이듯

네 시를 부드럽고 기름지게 끓이거라

 

시가 정말 죽이네요

시가 죽인다구요.


- 시집『비밀』(우리글, 2010)

* http://blog.daum.net/hong1852


'시집『비밀』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절창을 위하여  (0) 2010.02.08
<시> 검은등뻐꾸기  (0) 2010.02.08
<시> 수세미  (0) 2010.02.08
<시> 비수匕首  (0) 2010.02.08
<시> 8월  (0) 2010.02.08